이 땅에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소명의식과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고 솔선하여 헌신 봉사 희생하여 우리의 선각자들이 계속 활동해 왔다. 역사의식과 더불어 향토사랑을 천안 정신으로 고양하고 거양하며 활동하는 단체들도 연연히 시대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나라와 민족이 근대화 계몽 개화되면서 천안 역시 서울의 영향을 빠르게 받아 변화하고 발전되어 간다.
1903년 윤치호박사가 천안군수로 부임하여 민족의식을 일깨우면서 새로운 문화를 배워야한다는 열망이 지도자들을 솔선하게 했다. 1905년 미국인 선교사들이 교회를 설립하고 교회를 통해 기독교문화를 전수하게 된다. 당시 천안군수로 부임한 윤치호박사가(1903)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천안일대 직산 양대 목천 병천 기독교 지도자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윤치호박사(장로)는 그 후 미국에서 유학중에 미국 남감리교회가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해 줄 것을 강력하게 부탁하면서 선교기금도 헌금한 개화 구국 애국지사였다.
윤치호 천안군수 재임기간 동안 천안읍내 기도처 설립을 추진하는 기도가 계속되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천안역과 직산역이 개업되면서 천안읍내는 교통 연락 모임의 중심처소가 되었다. 1915년부터 천안지방을 순회하던 공주제일감리교회 안창호목사가 천안읍내 서릿말에 교회터를 잡았다. 그리고 1917년 천안읍 감리교회 예배당을 마련하고 담임목사로 파송받았다. 천안 선교초기에 교회예배당 안에서 양반은 소수에 불과했다. 만약 하인과 예배당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양반체면은 여지없이 구겨지게 되었다. 교회는 신분차별이 없는 곳이지만 선교초기의 조선사회는 양반 상민 신분차별이 엄연히 존재했다. 예배당에 나가는 것도 문제지만 하인과 같은 자리에서앉아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용납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기독교는 양반 상민 남녀 빈부 구별 차별과 오랜 동안 묵은 관습 전통을 폐지하고 신분이나 남녀차별을 없애는 역할을 하는데 큰 영향력을 끼쳤다. 당시 천안의 시대정신이 투철한 지성인과 젊은이들은 친교를 하고 건전한 오락이나 노래 연극 체육등 새로운 문화를 배울수 있는 공간과 환경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나 단체들은 일제의 감시의 눈초리가 심해서 청년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청년들에게 천안읍 감리교회는 청년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자유로운 곳이었다. 드디어 1916년 서릿말 천안읍 교회 내에 영어학원이 개설되었다. 무엇보다 스웨러 케이블 아멘트 샤프부인 등 미국인 선교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새로운 문화와 지식 정신 등을 전수받기에 좋고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1921년 천안읍 교회에서 노익배, 이헌영, 오재경이 중심이 되어 천안기독청년회(YMCA)를 발기 창립하고 계몽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1923년에 이헌영 회장, 오재경 총무, 노익배 간사가 주동이 되어 천안청년회가 창립된다. 천안청년운동이 천안의 시대정신으로 승화되었다. 천안 청년운동은 천안 근대화의 불씨였다.
선교활동은 민중 개화 문화운동으로 실용적인 기술교육과 체육으로 축구 배구 탁구 운동경기 그리고 연극 음악을 보급하는 운동으로 오랫동안 유교정신으로 체면과 예의 계급사회에 묶여 육체적인 면 보다 형식과 정신을 숭상해 온 관습의 틀을 깨트리는 개화운동이었다. 체육과 예능교육을 통해서 정신의 건강을 실현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내었다. 기독교는 민족주의 자주독립정신 평등 자유의식 문맹을 개명 개화해 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교육강연회에서 일깨우고 선도해 나갔다. 천안기독청년회는 천안청년회 천안청년구락부를 발기하면서 토론회에서 인재양성 가정교육 사회교육 계몽과 야간학교 설립을 추구하였다. 1922년 천안에서 처음으로 천안유치원이 개원했다. 천안읍 교회 내에 설립된 천안유치원은 민족소설가 민촌 이기영선생이 발기 총무가 되었다. 천안읍 교회 청년회는 앞장선 시대정신으로 사명이 투철한 일꾼들을 수없이 많이 배출해낸다. 1919년 3.1독립만세 천안지역 운동의 중심에선 천안읍 교회는 독립만세 운동정신을 역동적 활동으로 확산·전승시켰다.
1928년 신간회 천안지회가 천안읍 교회 청년회장 이헌영 간사 노익배가 중심이 되어 창립되었다. 정치적 경제적 각성촉진 기회주의를 배격하고 단결을 공고히하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청년회 계몽활동은 천안에서 직산 목천으로 확산되어갔다. 직산은 1924년 입장 형평사 인권운동으로 이어지고 양대 광명학교는 여성교육운동, 병천은 진명학교 수신 장명학교 교육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34년 천안읍 교회 여성운동에 헌신한 미국인 처녀선교사 배의례(30세)양이 풍토병으로 순교하였다.
천안읍 감리교회 기독청년회설립 시대정신은 오늘까지 전승되어 천안 시대정신으로 앞으로 계속 흘러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