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일찍 시작했을 뿐입니다.”
남보다 한발 빠른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까?
남들은 미련하다고도 했다. 아내조차 고개를 ‘갸웃’ 했다. 왜 나이도 창창한데 그 좋은 공무원직을 버리는지 이해가 안됐다. 그의 나이 52세, 계장급 공무원으로 남의 눈치 볼 위치도 아니다. 그렇게 공직을 떠난지 3년, 어떻게 살아왔을까.
잠깐외유 ‘막걸리카페’ 운영
윤석진(55)씨. 천안에서 생활한 지도 어언 30년이 넘었다. 3년 전 발령받은 보령근무를 마치고 다시 천안근무지로 돌아오게 된 시점에서 슬그머니 ‘사직서’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더 늦기 전에 꿈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자꾸 안락한 삶을 추구하다 보면 되돌아봤을때 무엇이 남을까요? 젊었을때 꾼 꿈이었는데 아직 시작도 못했잖아요. 늦었다 싶지만, 그래도 지금이나마 기회가 아닐까 생각했죠.”
그런 그의 꿈은 ‘양조장’을 운영하는 것. 민속주로 유명한 논산 가야곡 출신답게 그의 재능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종종 술을 담가먹었던 그. 좋아하는 음악을 하루종일 틀어놓고 술빚는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들…, 그보다 행복한 시간이 없었다.
공무원 세계를 떠나온 후 ‘술공부’에 빠져 살았다. 그 사이 외도도 했다. 두정동에서 ‘막걸리카페’를 처음으로 열어 전국의 온갖 막걸리들을 품평할 수 있는 마니아들의 사랑방 노릇을 했다. “딱 1년3개월 운영하다 문을 닫았죠.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을 했어요.”
윤석진씨가 산 좋고 물 맑은 북면 양곡리에 전통가양주 공장을 세우고 ‘광개토왕’과 ‘금강’을 출시하려 준비중이다.
가게를 접고 나자 심신이 자유로와졌다. 그의 꿈, 양조장 터를 찾아 관내를 빙글빙글 돌았다. 산을 배경으로 공기와 물이 좋아야 하는 명당터를 찾아헤맨 끝에 지금의 북면 양곡리 산 밑을 발견했다. 터를 정하자 공장(양조장)은 신속하게 지어졌다. 모양새는 가정집과 똑같으나, 내부에 들어서면 나름의 공장의 용도체계를 갖췄다.
“이제 준공검사만 남았습니다. 3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이후 본격적인 제조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늦어도 내년부터는 새로운 상표의 ‘전통 가양주’가 천안시민들에게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원하는 곳 ‘음주문화론’ 강의
원래부터 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터에, 7년째 본격적인 술공부를 해온 그. 술에 관한한 해박한 지식은 ‘술술’ 막힘이 없다. 또한 그와 같이 술에 대한 관심을 가진 6명과 정기적인 모임도 갖고 있다. “우리 모임은 만나면 술 이야기로 시작해 술 이야기로 끝나는 진짜배기 마니아들입니다. 1박2일로 떠난 자리에서도 술과 관련된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그런 그가 술공장을 통해 만들어낼 작품은 청주와 탁주. 이미 이름도 지어놨다. “청주는 ‘광개토왕’으로, 탁주는 ‘금강’으로 지었습니다.” 별 뜻은 없다. 원래부터 광개토대왕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
색다른 건 이름을 영어로 쓴다는 것, 그리고 담는 병을 와인병으로 쓰겠다는 것.
문제는 가격이다. 보통 한 말을 술으로 빚기 시작해 제맛이 날려면 3개월은 숙성시켜야 한다. 그는 쌀, 누룩, 물만 가지고 조절해도 그 정도에 따라 살구향도 나고 복숭아향도 난단다. 정성들여 빚은 끝에 쌀 한말은 와인병 10개쯤이나 나올려나. 그렇게 제대로 만들어 형성될 가격은 서민들이 성큼 다가서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공장은 가정집 같은 구조로, 각 방(공간)마다 온도를 다르게 유지해 숙성·저장시킬 계획이다.
그는 판매 외에도 체험학습 위주의 운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이 장비도 없이 직접 술을 빚기는 어려운 상황. 이에 술 빚는 것도 알려주고, 직접 자신이 빚을 수 있도록 일련의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몇년 동안의 공부로 ‘음주문화론’이란 강의주제를 갖고 필요한 기관·단체에도 나설 겁니다. 술은 먹고 취하는 것만이 아니며, 어떤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도 알고 접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것은 음주와 관련해서도 적용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