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화숙(48·지도강사), 이호종(76·회장), 김종윤(62·총무)
화로는 예부터 소통에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 옛날사람들은 화로에 모여앉아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고구마나 감자, 밤 같은 것도 구워먹었다. 그런 화롯불은 서로를 이어주는 소통의 창구이자 화목의 도구이다
이호종(76)씨는 천안 성정2동 주민자치센터에서 ‘화롯불’을 이끈다. 나이 드신 분들로 이뤄진 풍물수강생들이지만, 12살짜리 꼬마도 회원. 무려 65세의 나이차에도 서로간 스스럼이 없다.
그들의 열정이 화롯불만큼 뜨거워서일까. 5월31일 천안삼거리공원에서 열린 단오난장 풍물경연대회에 참가했다. 대부분 풍물을 배운지 1~2년, 제일 오래된 이가 3년밖에 안된다. 게다가 지난해까지 이들이 배웠던 풍물은 ‘영남사물놀이’. 하지만 올해 1월 김화숙(48·민족굿패얼)씨가 지도선생이 되면서 ‘웃다리사물놀이’로 전격 교체됐다.
김화숙 선생에 따르면 웃다리사물놀이를 배우는데 5개월이 걸린다. “세월호참사로 애도기간 한달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경연대회에 나왔습니다. 분명 준비는 미흡했지만 열정까지 부족하진 않았습니다.” 이호종씨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두번째로 나서 어떻게 하고 무대를 내려왔는지 모르겠지만 사춘기 앳된 소년·소녀처럼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어림도 없는 실력과 연습시간을 가졌지만 자신있게 상까지 기대하는 이호종 회장. “그렇습니다. 바로 장려상이죠. 꼬마와 노인이 함께 하고, 조선나이 겨우 세살인 우리들을 ‘장려’해주지 않으면 누가 적임자일까요.” ‘농담반 진담반’이지만 눈빛은 정말 기대하는 눈치다.
“연습공간 좀 제공해주세요”
단오난장 경연대회장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화롯불 회원들.
회원 16명이 똘똘 뭉친 화롯불. 내년엔 일취월장, 실력도 쌓고 연습도 많이 해서 강릉단오제에 출전해 상을 노려볼까 한다. 기백이 젊은 팀들 못지않고, 무엇보다 풍물가락을 사랑한다는데 있다.
그런 이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무얼까. “우리는 가난합니다. 성정2동은 가난해요. 너무 가난합니다.” ‘가난하다’는 말이 회장의 입에서 나오자 이곳저곳에서 너도나도 “우린 가난합니다” 하는 목소리가 도미노처럼 들린다.
“연습공간이 없어요. 다른 곳은 주민자치센터를 멋있게 지어 공간이 널널한데, 우린 그렇지 못하죠. 협소해서 회원을 더 늘리지도 못해요.” 그 낡고 허름한 공간마저 방음이 안돼있다보니 주변으로부터 종종 민원이 들어온다.
“자, 우린 이렇게 연습하기도 합니다.” 회장은 케이스를 풀지 않은 북을 조그맣게 채로 두드려대는 포즈를 취한다. 과장된 몸짓에 속웃음도 나지만, 정말 ‘커다란’ 독지가라도 나와서 맘껏 연습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키다리아저씨같은 독지가가 있었다는 거 아세요!”
처음에는 전 지도선생이 국악학원을 운영하는 덕분에 그곳에서 연습도 하고, 악기도 빌려썼다. 악기라고 해야 ‘꼬맹이’들이 치는 북이나 장구였다. 이들의 형편을 보고 어느 익명의 독지가가 악기는 물론이고 단체의복과 신발까지 세트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해줬다. 이들은 가격으로 치면 수천만원에 이를 것이라 내다봤다.
“아닙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우리끼리 재미있게 생활합니다. 풍물을 배우니까 너무 재밌습니다. 혼자들 적적해 하다 함께 만나고 취미를 갖게 되니까 자신감도 부쩍 늘었습니다. 인생이 무척 즐거워요.”
성정동에서 아랫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하릿벌’을 충청도 사투리발음으로 돌려 ‘화롯불’이라 이름을 붙였다는 이들. 열정과 화목, 딱 화롯불과 어울리는 팀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