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화단에 새로운 기풍(氣風)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화 해정 전영화 화백의 작품활동 60년을 회고하는 회고전을 5월9일부터 천안박물관에서 그동안 준비해온 작품을 전시한다. 그리고 해정 전영화 화백은 출품작품(70점) 모두를 천안미술발전을 위해 천안박물관에 기증하는 기증서를 전수한다.
천안 미술 예향(藝鄕)을 지향(志向) 한다. 천안 예원(藝苑)의 시조로 표암(豹菴) 조선후기 인물 강세황(姜世晃) 선생과 선생의 증손 대산(對山) 강진(姜溍) 선생을 꼽으려 한다. 진주(晋州) 姜氏 천안 문중에서는 천안 풍세 관음작골에서 옛부터 시제를 모셔오고 있다.
표암 선생(1713/1791)은 묘소가 진천군 문백면 도화리에 있어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진천인으로 자랑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안산에서 살았다고 해서 경기도의 인물로 자랑하고 있다.
진주 강씨 천안 문중에서는 후대에 물려서 천안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전승해야 한다고 한다. 표암 선생은 당대에 시(詩), 서(書), 화(畵) 삼절(三絶)로 일컬어 졌고 남달리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춘 사대부 화가로서 스스로 그림 제작과 화평(畵評) 활동을 통해 당시 화단에서 예원의 총수로 중추적인 구실을 하였다.
제자로는 김홍도와 신유가 있다. 증손자 강진(姜溍 1807/1858) 선생도 표암의 서화기법을 본받아 산수화(山水畵)에 일가를 이루었으며 시문과 초서, 예서 등 글씨에도 뛰어났다.
당대에 삼절(三絶) 2대로 이어지는 문중의 자랑일 뿐 아니라 천안의 자랑스러운 예원의 시조로 추앙되어야 한다. 표암 선생과 대산 선생의 저술 및 작품들이 많이 전수 되고 있다.
현대에 접어들어 천안 예원 중시조 인물들은 한국화 김화경(金華慶), 서양화 김성재(金星在), 광복 제일세대의 한국화 전영화(全榮華) 선생등이다. 이어 민속화 이동식 화백도 오랫동안 서울, 일본, 미국 등지에서 작품활동을 갈무리하고 귀향보고 작품전을 준비하며 출품할 작품(80점)모두 고향인 천안에 기증한다고 밝혔다.
김화경 선생과 김성재 선생은 일본미술학교를 졸업했고, 전영화 선생은 서울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했다. 김화경(1923/1979) 선생은 일찍이 일본 미술대전에서 입상, 대한민국 미술국전 초대작가를 했고, 천안에서 중학교 후학을 길렀다.
그리고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겨 비국전작가전시회를 이끌며 한국화 예원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초가집을 주제로 사실적 풍경화 전통농가와 산천을 그려 고향에 향수를 표현했다.
김성재(金星在 1923/1969) 선생은 일본 미술대전에서 입상을 했고, 천안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후배 양성에 힘을 드렸다. 정물화와 인물화, 기록화로 자신의 감성을 표현했다. 충남도문화상(1966)도 수상했다.
전영화(全榮華 1929) 선생은 서울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후학을 기르며 변화된 한국화 새로운 필법으로 창작활동을 했다.
김화경, 김성재, 전영화 화백들은 천안 미술계 선배 중시조로 역할을 했다. 뒤를 이어 제일 먼저 천안에 기대를 준 인물은 경희대학교 미술교수 이종각(李鍾珏) 선배이다.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3회로 철로(鐵路 Rail)를 소재로 한 창작 조각품이 돋보였다. 유량동에 리각조각박물관을 설립하고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자랑스러운 천안의 인물 세계적 조각가이다. 그리고 스승 없이 고향을 지키며 자습하여 이묵서회(以墨書會) 일가를 이룬 서예가 취묵헌(醉墨軒) 印永宣(인영선), 서양화 강관옥(姜寬鈺 1946/1988), 신양섭(申養燮), 박인희(朴仁熙), 김재선(金在善), 김영천(金永天 1949/2012), 한국민속화 이동식(李東拭)이 고향에서 또는 고향을 오가며 천안예원을 가꾸고 자기 작품세계를 창작하였다.
1975년 천안화단이 조직적 단체생활을 위한 천안미협을 발기하기에 이른다.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장 김성열(金聖烈), 신양섭(申養燮) 화백이 앞장서 이끌었다.
1976년 6월1일 한국미술인협회 천안지부를 창립하고 12월24일에 천안미협회원 창립전을 개최하였다. 천안미협지부 지부장(신양섭)가 주관하고 김성열(동방서림)이 후원하여 뜻 깊은 미술계 출발을 발동했다. 천안예원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활력이 되었다.
1978년 10월 한국서예 대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이 취묵헌 인영선 서예 개인전에 초대 받아 흔쾌히 참석하였다. 일중 선생은 취묵헌 인영선의 작품을 칭찬하고 추천작가로 인정해 주었다. 천안서예가에 활력과 감흥을 일으켜 주는 아름다운 기록이 되었다.
1980년 12월 이어서 천안 화단에 경사가 생겼다. 신양섭 화백이 제30회 대한민국미술전에서 최우수 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천안예원에 다시없는 기념할 만한 쾌거였다. 1988년 華丁 김무호(金武鎬) 서화가는 목우회 공모전 문인화 부문 특선, 1990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 특선을 했다. 천안의 문인화계의 중시조로 인정 되었다.
1990년 서양화 강관옥 화백이 대한민국종합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강관옥 화백은 1965년 사진 개인전 개최 1967년 대한민국미전에서 특선을 하기도 했다. 서양화 박인희(朴仁熙) 화백은 목우회 공모전 추천작가로 목우회 충남회장이 됐다. 그리고 충남미술대전 특선, 우수상 수상하기도 했다. 박인희 화백의 애향심이 깃든 천안시화 개나리꽃 작품이 천안시내, 직장, 식당 곳곳에 걸렸다.
서양화 정세훈 화백이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을 민성동 화백이 대한민국종합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1999). 민속화가 청사(靑史) 이동식 화백이 한국현대미술대상전 추천작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컬렉터 작가 김창일선생이 오늘날 우리시대에 돋보인다.
천안 예원(藝苑)을 예향(藝鄕)으로 발흥하는 사명이 우리 시대 정신이다. 전영화화백 회고전에 이어 민속화 이동식화백도 국내외 등지에서의 활동을 갈무리하고 귀향보고 작품전을 준비하며 출품작품(80점)모두 고향인 천안에 기증한다고 한다.
예향(藝鄕) 천안은 천안의 품격을 높여 창조한다.
천안의 예원(藝苑)이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천하대안(天下大安), 천안의 기상 같이 천안시민 모두가 자랑할 예향(藝鄕)으로 발원(發源)하는 시대정신을 지향(志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