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동 가구거리 모퉁이(봉정사거리)에 ‘베니엘찬양센터’라 둥지를 튼 건 지난해.
베니엘찬양센터 사람들은 매일 오전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문을 열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누구든지 오면 음악을 이야기하고 같이 배우고 연주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매월 음악공연을 열고, 가끔 그림이나 사진전시회를 갖기도 한다. ‘문화가 숨쉬는 작은 장소’가 되고픈게 이들의 꿈이다.
베니엘찬양센터의 ‘주인’은 김주현(50) 목사다. 젊어서는 썩 잘나가는 사업가로, 나이가 좀 든 후엔 기독교 목사로…, 그런데 그보다 훨씬 오래 숙련된 것이 ‘연주가’로서의 삶을 살아오고 있는 그.
지난해 서울에서 내려온 그는 교회의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없애고 싶었다. 울타리는 어떤 이들에게 100만볼트 고압선이 되기도 했다. 교인들의 교회뿐 아니라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해소하기 위한 수단은 뭘까? 고민중에 음악공연과 갤러리를 택했다.
그는 목사이기 이전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한때 의류(여성복)업계에서 100억을 바라보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사업체는 없어졌어도 음악은 더 크게 남았다. 그는 소위 잘 나갈때 사업을 그만 뒀다. 가끔씩 집에 들어오는 생활이 반복되며 아내는 물론 아이까지 낯설어하면서 어느날 ‘실존’의 문제가 머리를 강타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 철학자 데카르트처럼 깊은 깨달음이 온몸을 꿈쩍 못하게 했다. 한달간 골방에 틀어박힌 끝에 사업에 손을 뗐다. 잘 나갈때 그만 두니 떡고물은 커녕 오히려 있는 것까지 털어내는 아픔. 그렇게 ‘홀가분’해질 수 있었다.
40세의 나이. 어릴 때부터 교회는 다녔지만 사업가에서 멀어진 그를 채운 것은 종교였다. 결국 신학공부를 통해 목사가 됐다. 산전수전 겪어본 이력이 그를 ‘목사답지 않은’ 목사로 만들었다.
할아버지가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고 큰아버지가 문선대(군대) 1호였을 정도의 음악집안에서 그도 드럼, 기타, 색소폰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게 됐다. 사물놀이는 김덕수로부터 직접 사사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일명 ‘무료문화센터’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취지를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지금은 40여명의 ‘음악인’들이 함께 한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인사’도 있다.
지역의 마당발로 총무역을 자임하는 남상훈(60)씨는 “이곳은 음악과 순수 뿐”이라며 자신도 조심스레 문턱을 밟았지만 이젠 주인행세를 하며 지역문화를 선도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하는데 자원하고 있다고 했다.
김주현 목사는 말한다.
“누구든 오세요. 이곳 베니엘은 교회일도 보지만 별개로 일반인들과의 문화소통지역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가르칠 수 있는 모든 악기를 무료로 배울 수 있습니다. 맘 편히 오세요. 악기로 친구가 되고, 선·후배가 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