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0월 ‘홍범도’는 크즐 오르다산쩨쁘나야 거리 자신의 집에서 7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그처럼 초지일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이도 흔치 않았다. 말년에 이르러 소련에 의해 이역만리로 이주됐지만 한시도 조국해방의 염원을 접은 적이 없었다. 운명은 얄궂게도 그가 숨지고 한달여가 지난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회담이 열린 가운데 “현재 한국인이 노예상태에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한국을 자유독립 국가로 할 결의를 가진다”라는 역사적인 ‘카이로선언’을 채택했다.
우리에게 식민치하 일제36년은 아픔의 역사다. 광복 후에도 일본과 중국에서 삶을 영위해온 백의민족. 그곳에서 정착해 3·4세로 이어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 연변에 조선족이 있듯 러시아와 그 주변국에 ‘카레이스키’로 불리는 고려인이 살고 있다.
그들의 역사는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안도와 함경도에 살던 사람들은 ‘기회의 땅’ 러시아로 이주해 경작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러시아 연해주 남쪽지역에 위치한 ‘지신허(Tizinkhe)’는 1863년경 생겨나 1937년을 전후해 사라진 러시아 최초의 한인마을 이름으로, 구(舊)소련에 머물던 50만 고려인의 연원지이기도 하다.
일제침략 이후 연해주로 이주한 사람들이 부쩍 늘고, 그곳은 각종 탄압을 피해 넘어간 독립투사들의 독립운동 근거지이기도 했다.
200여년 발해가 다스렸던 땅, 연해주가 이들 까레이스키의 삶의 터전이 된 지도 50년이 지난 1937년, 소련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불모지의 땅, 중앙아시아로 내몰리며 상당수가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와중에도 특유의 부지런함과 끈질긴 생명력은 척박한 땅에서도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며 땅을 개간해 삶을 일구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등의 민족차별정책으로 까레이스키들의 현실은 더욱 고된 상황. 지금은 대략 러시아 20만여명, 카자흐스탄 10만여명, 우즈베키스탄 20만여명 등 모두 55만여명의 까레이스키들이 살고 있다.
신부동 휴먼터치센터는 ‘고려인 보금자리’
이들 고려인들이 천안에 ‘고려인마을협동조합’을 추진중이다.
몇 년 전부터 고국에 일자리를 찾아 들어오던 고려인 3·4세들이 어느덧 천안을 중심으로 ‘세’를 형성할 정도로 많아졌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외로워하던 고려인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숫자는 시나브로 불어나고 있다.
신부동 천안외국인교회 내 휴먼터치센터(센터장 석정림)는 고려인들의 유일한 ‘사랑방’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석정림 센터장은 “우리교회 이강헌 목사님의 애정과 헌신적인 봉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회상했다.
새벽녘 터미널부근을 서성이는 고려인들에게 외국인교회의 불빛은 거센 풍랑에 길을 잃고 백척간두에 서있는 배들에게 있어 ‘등대’와 같은 것이었다. 어려움과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을 한명두명 보듬어 안아주다 보니 어느덧 외국인교회는 이들에게 ‘양산박’이 돼버렸다.
급기야 지난 26일(일)에는 ‘고려인협동조합 창립총회’를 갖게 됐다.
이강헌 목사가 창립총회를 진행하고 있다.(옆은 러시아어로 통역하는 김올가)
고려인협동조합 창립총회 후 기념촬영.
오후 1시에 시작된 총회에는 조합원으로 가입한 고려인 125명이 대부분 참석했고, 소식을 듣고 찾아온 양승조(민주당 최고위원) 국회의원과 김미경·황천순 민주당 의원들이 함께 했다. 또한 이광형 시청 다문화가족팀장도 얼굴을 보였다.
창립총회를 연 이강헌 목사는 “고국에 찾아온 이들이 낯선 이방인 대접에 상처를 받고 한국인이라는 긍지까지 잃어버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고향을 찾은 사람들에게 다시 세계를 유량하는 집시로 만들면 안된다. 여러분은 더 이상 방랑자가 아니라 김씨, 이씨, 박씨 성을 가진 이 땅의 주인이다”고 강조했다.
김미경 시의원.
축사에 나선 김미경 시의원은 “우리나라의 슬픈역사로, 여러분들이 국내에 들어와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모습에 마음이 울컥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으며, 황천순 시의원 또한 “김미경 의원과 관련지원조례를 만드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광형 천안시청 다문화가족팀장.
이광형 천안시청 다문화가족팀장도 “물심양면 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양승조 국회의원.
양승조 국회의원은 “고려인들의 안정적 국내정착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책무가 있다 본다”며 “한명의 국회의원으로서 관련법과 제도 만드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의 진정성 있는 표정과 따스한 말을 들은 고려인 참석자들은 몇 번이고 힘찬 박수를 보내며 하루빨리 안정적 일터와 안락한 삶을 이룰 수 있길 희망했다.
한편 이들이 만든 정관을 살펴보면, 고려인마을협동조합은 자주적·자립적·자치적인 협동조합활동을 통해 구성원의 복리증진, 상부상조, 이주민발전에 기여하고 그들의 경영개선과 생활향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같은 권익증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들은 교육·훈련, 정보제공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상호협력, 이해증진을 바탕으로 공동사업개발 등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협동조합을 통해 벌릴 사업으로는 유치원, 보육, 방과후교실, 공동구매, 여행사, 커피숍, 청소, 시설관리, 재활용제품생산, 유통 등 다양하다.
양승조·김미경·황천순 의원 ‘고려인도우미 자처’
법과 제도 손질 통해 안정적 천안정착 힘쓸 터, 고려인과 한국인 동일의식 긍지
창립총회 후 내빈들의 좌담회(양승조 국회의원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창립총회 한켠에서 간단한 좌담회를 열었다. 내빈으로 소개된 양승조 국회의원, 김미경·황천순 시의원, 이광형 시청팀장, 박문환 순천향대교수 등이 참석했다.
고려인을 비롯해 외국인노동자들의 열악한 실태가 자연스럽게 주제로 올려졌다. 산재, 치료문제, 심지어 관까지 보낼 정도로 어려운 때가 있었지만, 그간 관련제도들이 정비돼 훨씬 나아졌다는 이야기가 흘렀다. 양승조 의원은 “아직도 미흡한 제도는 많을 거다. 언제든지 연구·검토하고, 관심있는 사람들에 의해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헌 천안외국인교회 목사는 특히 고려인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고려인 3·4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당신들은 한국인이 아니냐’는 소릴 듣는다. 나름 긍지를 갖고 한국에 오니 이쪽에서는 ‘러시아인’으로 취급받더라는 말이다. 이젠 우리도 우리동포(고려인)들을 위해 힘써야 될 때다”며 “고려인들로부터 한국사람이니까 자랑스럽다는 말을 듣고싶다”고 했다. 그는 또 말했다. “카자흐스탄에 갔을때 느낀거다. 축제장에 고려인 부스가 만들어져 있는데 그 여성분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 고려인이라고 한국을 소개하고 있었다. 한국인이라는 대단한 긍지가 엿보였다.”
양승조 의원은 “국가차원에서 그들의 조국은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카자흐스탄이지만 마음속의 조국은 한국일 거다. 그들 몸속에 흐르는 피가 그렇다”고 맞장구쳤다.
황천순 시의원은 “고려인은 다문화가족 범주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지만 오늘 보니 이들은 한국인이다. 어떻게 돕고 함께 해야 할지 연구해나가겠다”고 깨달은 바를 말했다.
이강헌 목사가 안타까운 사연을 밝혔다. “고려인들이 100명의 여비를 마련해 보낼테니 한달간 머무르면서 한글공부 등을 해주면 어떻겠냐고 부탁했지만, 형편이 안돼 거절한 바 있다”는 것이다. 이에 석정림 휴먼터치센터장은 “두번이나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석 센터장은 “고려인들 중에는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언어 등의 문제로 관련직장을 얻지 못한 채 용역회사를 통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러다 악덕업체를 만나면 월급도 못받고, 용역에 임금의 20%나 떼이기도 한다.
김미경 시의원은 “이제 협동조합이 생겼으니 그런 부분을 잘 지원·관리하고 좋은 사업들을 많이 추진하면 좋겠다”며 “우리도 열성으로 돕겠다”고 위로했다.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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