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블라디미르(47)는 고려인이다. 신학공부를 위해 천안 목천에 소재한 고려신학대학원을 다니던 중 신부동 휴먼터치센터를 알게됐다. 이후 편안하게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됐다.
이름은 러시아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같지만 그가 쓰는 ‘푸틴’은 다른 의미를 갖고있다. 러시아말 ‘푸틴’은 우리나라 ‘김’씨와 같다. 즉 우리식 이름은 김블라디미르인 것이다.
지난 1월 초순 휴먼터치센터를 방문한 그에게 놀랄만한 말을 들었다. “나의 고모가 김알렉산드리아입니다. 꽤 유명한 분이시죠.”
‘혹시나’ 했더니 책으로도 발간된 독립투사 김알렉산드리아가 맞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김알렉산드리아는 연해주에서 한인2세로 태어났다. 함북 경흥사람인 그의 아버지는 1869년에 러시아로 이주했다. 이후 부모를 모두 여읜 그녀는 니콜라스크사범학교에 진학하면서 러시아 혁명가들의 저작에 심취했다. 1914년 볼셰비키(러시아사회민주당) 예카체린부르크 위원회에 가담한 그녀가 유명해진 것은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의 소송대리인 때였다. 당시 소송에서 그녀는 노동자들의 밀린 임금은 물론 수만원의 손해배상까지 받아냈다. 이 일로 그녀는 조선인, 중국인, 러시아인 노동자들 사이에 널리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러시아 극동지방에서의 볼셰비키 조직, 선전활동에 종사하면서 극동인민위원회 외교부장에까지 올랐고, 이동휘와 함께 한인사회당을 조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백위군이 극동러시아를 장악하게 되면서 체포돼 우수리강변의 죽음의 골짜기에서 총살당했다. 1967년 11월 하바로프스크에 그녀의 기념관이, 처형장에는 추모탑이 건립됐다.
김블라디미르는 “그것뿐만 아니라 하바로프스크에 ‘김알렉산드리아 거리’도 생겨났다”며 고모를 소개했다.
그의 입에서는 ‘고모’라 했지만 러시아로 돌아간 이후 휴먼터치센터 이강헌 목사는 “한국말이 어설퍼서 할머니를 착각했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김알렉산드리아’를 책으로 읽은 한 네티즌은 ‘한 생을 불꽃처럼 살다 간 선배열사 동지들,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와 비슷한 혁명적 삶을 살다간 조선의 여자, 러시아 혁명의 한복판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수라’로 소감을 전하고 있었다.
김블라디미르는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고려인이 ‘고려인답게’ 살아갈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데 자신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러시아 등 중앙아시아에 퍼져사는 고려인은 그 땅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100년, 15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죠. 그렇다고 한국에 와서 동포 소리를 듣지도 못합니다. 우리의 삶에 관심가져주시고, 따듯하게 보듬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