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나니 스타가 돼있다?’
최근 양승조·장하나(민주당) 의원을 두고 한 말일게다. 이들의 말한마디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장하나 의원이야 ‘대선불복’이라는 이슈를 꺼내들고 있지만, 양승조 의원의 한 문장을 둘러싼 뜨거운 진위논란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 변호사는 트위터에 “야당의원이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여당의원이 관변단체를 동원해 규탄대회를 여는 나라는 아마도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아냥하기도 했다.
양 의원의 발언중 논란이 된 부분은 이렇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라는 무기로 공안통치와 유신통치를 했지만, 자신이 만든 무기에 의해 자신이 암살당하는 비극적 결말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텐데, 국정원이라는 무기로 신공안 통치와 신유신통치로 박정희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국민의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보기에는 딱 두 문장의 글이지만 그 파급력은 ‘1급태풍’에 버금갔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9일 “대통령에 대해 암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한 것은 언어살인이며 위해를 선동조장하는 무서운 테러”라고 강력비판했다. 같은 날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어떻게 최고위원이 저주섞인 발언을 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고, 김태흠 원내대변인도 “어느 국가든지 국가원수에 이렇게 막말하는 것을 본 적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대선불복’을 밝힌 장하나 의원과 함께 양 의원을 공식사과와 출당·제명조치하라고 민주당에 촉구했다.
하지만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양승조·장하나 의원의 발언을 ‘개인입장’으로 치부하며 오히려 “새누리당의 이번 처사는 독선과 과잉충성”이라고 문제삼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이들의 발언을 두고 전국 규탄집회까지 열며 강경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현재 다양한 계층이 대선불복을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자칫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는 어리석음을 염려하고 있다. 게다가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까지 더해지자 민주당의 기호지세(騎虎之勢)를 방관할 수 없다는 '국민전환용 타깃'이 필요했다.
새누리당은 ‘양승조·장하나’ 발언을 ‘꼬투리’삼았고 결국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이런 흐름을 우려해 당초 양승조·장하나 의원과 관련된 논란을 ‘개인입장’으로 강조하며 ‘국정원 문제’ 등을 유리한 입장에서 주도하려 했지만 새누리당의 기세에 눌려버렸다.
상처입은 양승조 ‘사과는 없다’
“사과요? 사과할 수 없습니다.” 양승조 의원은 이번 논란에 분명한 입장을 내놨다.
라디오의 한 대담에서 “듣는 사람 입장에서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질문에 “그런 면에서는 제가 좀 많이 생각하겠다”고 전했을 뿐, 그 이상의 문제제기는 왜곡·편파발언으로 규정했다.
양 의원은 이정현 홍보수석의 ‘대통령 암살’ 운운하는 발언을 “지나치고 과한 상상력”으로 돌렸다. “흉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전철을 밟으라는 말도, 그런 끔찍한 생각을 상상조차 한 적도 없다.” 양 의원은 양심을 걸고 펄쩍 뛰었다. 왜 본말이 전도됐을까.
양 의원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또박또박 밝혔다.
“제가 한 말은 박근혜 정부의 공안몰이, 종북몰이가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공안통치, 유신통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국민의 경고를 새겨들으라는 것이었다.”
양 의원은 잘못한 게 없으니 사죄할 것도 없다며 거듭 자기의 말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각계의 시각은? ‘찬반양립’
양승조 의원이 ‘그런 뜻으로 한 말이 결코 아니다’고 해명해도 여당측의 공세가 전국집회로까지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그 의도를 일각에서는 국정원사태 등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에게 불어닥친 위험스런 칼날을 피하기 위한 ‘국민전환용’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통합진보당 충남도당은 12일 논평을 내고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어떻게든 사소한 꼬투리라도 잡아 대화를 거부할 명분을 찾고 호시탐탐 부정선거의혹 국면에서 빠져나갈 기회만 노린다’고 비판하며 ‘신유신독재는 국민들로부터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새누리당이 양승조·장하나 발언을 거듭 비판하는 것에 “새누리당의 할리우드 오버액션은 오징어 먹물작전으로, 사소한 것을 턱없이 과장해 언론의 관심을 본질적 문제에서 다른 데로 유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요언론에서도 여실히 시각차를 보여주며 논란에 가세하고 있다. 보수신문들은 부정적으로 다루는 반면 진보신문측은 초점이 비껴간 청와대와 여당측을 문제삼고 있다.
비판도 정도가.. ‘지역구집회 막말총집합’
지난 12일 천안 야우리광장에서 양승조`장하나 규탄집회를 가진 새누리당.
새누리당은 양승조·장하나 의원의 발언을 문제삼아 12일 전국적으로 장외규탄집회를 열었다. 이를 위해 전국 당협위원회에 규탄홍보물과 현수막을 배포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양승조 의원의 지역구인 천안시 야우리광장에서 ‘민주당 대선불복 망언규탄대회’를 개최했다. 가장 번잡한 곳에서 규탄대회를 치르다 보니 행인과 참여자들이 섞여 번잡한 모습을 보였다. 현수막과 손에 든 푯말은 이들의 주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했다. ‘언어살인’, ‘대선불복’을 문제삼기도 하고, 민주당까지 도매급으로 넘겨 비판했다.
규탄사는 옮겨담기도 버거운 말들을 담아냈다. ‘태어나서는 안될 사람들’이라든가 ‘양승조 말대로 박근혜대통령 아버지는 비참하게 돌아가셨다’는 말로 군중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양승조가 충남망신 다 시킨다’는 말도 나왔다. 선거를 앞둔 이참에 천안에서 민주당의 득세를 깎아내리겠다는 속내가 보였다.
이날 새누리당 충북도당도 청주시 성안길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양승조·장하나 의원의 제명을 촉구했으며, 13일에는 새누리당 대전시당이 중구 으능정이 거리에서 같은 취지로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대선불복은 국민을 모독하는 행위’라거나 ‘양승조 호적을 충청도에서 파내야 한다’는 등의 거친 발언이 오갔다.
이들의 행태를 지켜본 양승조 의원은 “새누리당의 규탄대회는 여당으로써의 기본책무를 망각한 것”이라며 “특히 내 지역구에서 이같은 집회를 여는 것은 명백한 정치적 폭력·폭거로 국민들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