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됐어요?”
“아니, 더 풀어야 해. 아직 뭉쳐있잖아.”
“날이 추워서 잘 안풀리나 봐요.”
김종암·김병윤 부자간의 대화에 아내이자 엄마인 최돈숙씨가 끼여든다.
“그나마 내가 시간 날때마다 손으로 찢어서 그만큼 풀어진 거야.”
고색한지공예가인 최돈숙씨와 부자의 손놀임이 한동안 바쁘다. 커피 한잔의 여유가 찾아오자 비로소 얼굴에도 미소가 어린다. “한지뜨기예요. 날이 푸근해야 잘 풀리는데…, 저것도 인내가 필요한 일이지요.”
1000년 한지 “원래 우리종이가 최고”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주원료로 한다. 우리나라에 언제 종이의 제조법이 전해졌는지 알 수 없으나 고구려 소수림왕(372년)때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세계최고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은 우리의 전통한지가 얼마나 우수한 종이인지를 알려준다.
우리의 전통한지는 친환경제품이다. 1년생 닥나무를 겨울철(12월~3월)에 채취한다. 이를 가마솥에 넣고 10시간여 삶고 건조시킨다. 이를 장시간 물속에 불린 후 칼로 표피를 제거하고 다시 6시간 정도 장작불을 지펴 삶고 3~4일간 햇볕을 쬐어 표백을 한다. 이를 닥섬유가 뭉개져 죽이 될 때까지 두들긴다.
돈숙씨는 그런 과정을 거친 ‘닥죽’을 보여준다. “이것들을 저 지통에 깨끗한 물과 함께 넣고 풀어주는 거예요.” 이제야 그들이 ‘얼마나 풀어졌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이해가 된다.
아들인 병윤씨가 닥죽이 얼마나 잘 풀어졌는지 ‘발’로 건진 종이를 압축해 물을 빼본다. “아직 덩어리가 져서 거칠어요.” 겨우 완성은 했지만 좀 더 풀어야 한다는데 한목소리를 낸다.
“직접만든 종이로 카드 보내봐요”
한지뜨기에 대해 세세히 설명하는 최돈숙 선생.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돈숙씨 얼굴에 행복이 비친다.
지난 10월 초순 흥타령춤축제때 삼거리공원에서 체험부스를 운영했다. “이뻐요”, “새로워요”, “꼭 양털 같아요”. 아이들의 반응이 즉석에서 나오면서 무척 재밌어하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간 어른들에게만 가르쳤던 것을 ‘후회’했다.
그가 생활하는 성정동 롯데마트 맞은편 골목 ‘토탈공예방’ 앞에는 순수어린이집이 있다. 아이들을 가르쳐봤더니 웬 걸,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이상으로 가르치는 보람도 생겨났다.
“그동안은 할머니로 불렀던 아이들이 교육 후에 만나면 ‘한지선생님이다’ 하고 불러줘요. 신분상승이 되니 기분도 더 좋아졌죠. 전 아직 손주도 안봤는데 왜 할머니가 돼야 합니까.”
순수어린이집 원장의 소개로 키즈어린이집도 하게 됐다.
“이러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지지 않을까요.”
돈숙씨의 목소리가 예전보다 밝게 들린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재밌어한다면 초등학교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학교욕심까지 내는 돈숙씨.
“일단 키즈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이번 크리스마스는 특별할 거예요. 자신들이 직접 만든 한지로 카드를 보낼 수 있게 되니까요. 손수 만든 한지는 편지지나 생일카드 등으로 자체가 훌륭한 선물이 될 거예요.”
친환경 천연재료를 가지고 만들어진 한지는 서예, 그림, 화선지, 창호지, 벽지, 바닥지, 포장지 등 쓰임이 다양하다.
먼지나 냄새를 빨아들이고, 공기를 맑게 하고, 유해자외선을 차단해 피부를 보호하는 등의 역할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손수 노력해 만든 종이(한지)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우리 아이가 직접 종이만드는 체험을 하곤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한 아이엄마가 카페에다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