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김병윤(32)씨. 어린 나이에 복잡한 라디오를 조립할 정도의 뛰어난 실력은 지역대표로까지 주위의 인정을 받았다. 어느땐가 실시한 아이큐 검사에서 ‘공감각’에 뛰어난 능력이 있음을 알게됐다. 단순한 손재주가 아닌, 머리로부터 지원받는 전천후 재능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영향인지도 몰랐다. 전자계측기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덕에 그쪽방면의 관심과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들로 ‘수학’과목만큼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었다. 지속적인 영향을 받으며 대학도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이후 웹퍼블리셔가 됐다. 웹퍼블리셔는 디자이너가 만든 작업물을 웹에 잘 배치하는 퍼블리싱 작업을 통해 고객이 편하게 그 웹페이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지만, 제가 원하는 대로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을 즐겼어요. 한마디로 생활이 힘들지만 재밌었죠. 제 적성에도 잘 맞았고요.”
그러나 병윤씨가 천안을 내려온게 잘못이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천안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을 결정하면서 일이 뱅뱅 꼬였다. 천안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던 탓. 게다가 칼퇴근하는 직업도 아니다 보니 갈수록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천안 또는 근방에서 그같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찾다 포기했다.
그러던 그가 ‘한지공예’로 제자를 길러내고, 전시회도 갖고, 판매도 하는 부모님 밑에서 ‘틈새’를 찾았다. 한지공예에 다양한 조명을 접붙이면 어떨까에 생각이 미치자, 곧바로 그의 직업이 돼버렸다. 부모님을 도와 한지에 익숙해진 그의 앞길이 갑자기 환해졌다.
정식으로 한지공예를 배우고 거기에 등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연구에 들어갔다. 그의 손재주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매일 실험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며 하루 12시간의 작업에 몰두하길 여러달. 스스로 즐겁지 않으면 죽노동이었을 시간들이 앞으로의 찬란할 성공을 위해 투자되고 있다.
지난 4월 구보건소에 인접한 자그마한 공간을 얻어 ‘빛을 두른 한지’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냈다. 아직 무엇을 팔거나 자랑할 것이 없지만, 그의 열정과 재능으로 뭉쳐진 작품이 하나 둘 쌓이며 고객들 앞에 내보이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얼마전엔 어떤 분이 고장난 실내등을 리폼해달라 하기에 나름껏 해드렸더니 아주 좋아했어요.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 볼 수 있죠. 조명있는 명함집도 만들고 있고요, 퍼즐조명장식을 만들어 대회에 내보내기도 했죠. 산수화에 안개를 만들어 신비롭고 입체성을 가진 작품을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아직 ‘조명을 활용한’ 한지공예는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자가 없다. 누군가 걸어가면 길이 되는 미지의 세계다. 전국에 두세군데가 한지조명에 노하우가 있는 것으로 파악, 병윤씨는 그중 한곳인 서울 청계천에 다녀올 생각이다.
빛이 있는 한지공예품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아니 세계에서 최고가 되어보자는 병윤씨의 포부가 천안으로써는 ‘기특’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