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어교사로 퇴임한지 벌써 13년이 된 조문구(72·서예가)씨.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에 어그러지지 않았다’는 공자의 70세를 언급하지 않아도, 일상은 다툴 일 없이 평화만 쌓여간다.
목천읍내 가까운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아내와 오붓한 생활을 즐기는 그. 한가로움의 금기를 깨는 건 가끔씩 제자들의 안부전화와 울어대는 때까치들이다. 오로지 ‘국어선생’으로 전념해온 세월 속에서 그의 남다른 취미가 있다면 ‘바둑’과 ‘서예’다. 대회에서 몇차례 우승할 정도의 바둑실력은 아마추어 ‘공인4단’, 그리고 서예는 충남미술대전 대상에 충남교원미전 8회연속 1등 경력을 소지하고 있다.
“이것 좀 보세요.” 지난 9월28일(토) 찾아간 기자에게 붓으로 쓴 한용운의 시 한 수를 펼쳐보인다. 내용인 즉 선을 배울수록 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는 것으로, 도통한 자의 심경을 헤아려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쌍용도서관이 추진하는 길위의 인문학중 ‘한옥문화’에 대해 2시간짜리 강의와 한나절의 탐방을 맡게 돼 분주하다. “막상 맡긴 맡았는데 한옥문화는 나도 문외한인 걸요”라며 강의자인 그도 수강생들과 함께 배운다는 자세로 짧은 준비기간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구렁이 담넘듯’ 자신이 좋아하는 김정희 선생의 예산 추사고택과 만해 한용운의 시세계를 끼어넣어 가르치겠다는 ‘꼼수’를 내보인다.
만약 제목처럼 ‘충청·전라 한옥마을의 생활문화(아산외암마을)’에 대한 깊은 배움을 기대하는 수강생이 있다면 이번 프로그램이 적합하진 않을 듯하다. “그냥 한옥마을이 뭔지 잠깐 듣고 보는 수준의 입문강좌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네요. 더불어 추사고택도 다녀오고, 한용운 선생의 깊은 철학이 담겨있는 시세계를 약간이나마 접해볼 수 있는 시간으로 만족하시길 바랍니다.”
‘겸손의 미덕’을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 그러기야 하겠는가. 평생을 고교 국어교사로 지낸 이력이 명예퇴임 13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출중한 실력을 뽐내 드러내지 않으랴. 그의 서재에는 이미 외암마을 서적이 ‘떡’ 하니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외암이 어떻게 붙여진 줄 아세요? 거기엔 깊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잠시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그는 한 글자라도 더 가르쳐주려는 열정어린 선생님으로 변해 또랑또랑하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