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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건국 溫祚王 廟宇(온조왕 묘우) 再現(재현)

<역사 칼럼/ 김성열 천안시 역사문화연구실장>

등록일 2013년09월17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해양대국 백제 건국시조 온조왕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묘우(廟宇)가 584년만에 직산에 재현(再現) 된다.

서기 1429년(세종11)에 조선 조정 예조에서 삼국 건국시조에게 제사지낼 것을 건의하였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신라·고구려·백제의 건국시조에 대해서는 이미 사당(廟)을 세웠으니 청하건데 사전(祀典)에 제사지내는 예전(禮典)에 기재(記載)하고 치제(致祭)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는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에 기록이다.

서기 1429년 7월에 직산읍 판정리 용안치(龍鞍峙) 산직촌(山直村)에 온조왕 묘(廟)를 건립하고 9월18일(음 8월9일) 임금이 제물의 제문을 내려 치제(致祭) 제향(祭享)하였다. 서기 1431년(세종13)에 호조에서 고구려·백제·신라 건국시조 제전(祭田)을 급여하였다. 제향등급은 중사(中祀)이고 사당의 위판(位版) 위패(位牌)는 백제시조(百濟始祖)라 썼다.

서기 1451년(문종1) 직산에 있는 백제 시조묘가 오래되어 무너져 허물어지기에 직산과 각 고을로 하여 협력해서 허술한 곳을 손질하게 하였다. 서기 1597년 정유재란 때 온조왕 묘가 소실되었다. 서기 1603년 충청감사 유 근(柳 根)이 직산 산직촌에 있던 온조왕 사당을 다시 세우자고 청하여 임금이 따랐다.

서기 1872년(고종9) 열읍지도(列邑地圖)에 용안치 중간 산직촌(판정리)에 온조왕 묘와 진왕정(進王井 )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1975년에 천안향토사학회는 용안치 산직촌을 답사하여 옛 터를 확인했고 위례문화원은 온조묘 제사에 사용했던 우물터 진왕정(進王井)을 발굴 확인했다. 1980년 천안향토사학회는 용안치 온조묘 터에 제단을 차리고 온조전을 조성하고 제향 치제일인 9월18일에 배향(配享)하였다.

2010년 9월17일 세계대백제전 때에 위례산성에서 온조대왕을 제향하고 백제 혼불을 채화하였다. 그리고 위례백제, 한성백제, 웅진백제, 부여백제에서 채화한 백제 혼불이 제전에서 합화하였다. 2010년에 천안시에서는 직산 산직촌에 온조묘 복원을 추진하는 기획에 들어갔다.

2011년에는 온조왕 숭모회가 주관하여 직산 산직촌에 온조왕 제향단을 차리고 배향하였고, 2012년에도 배향하고 백제건국 2030주년기념 온조대왕 제향을 준비하고 있다. 제향비문은 百濟始祖溫祚大王神位라고 했다. 제향(祭享)에는 백제 창업 공신들 중에서 天安 全氏 전섭(全聶) 공신 후예들과 稷山 趙氏 조성(趙成) 공신 후예들 그리고 木川 馬氏 마려(馬黎) 공신 후예들이 헌작하였다.

참고로 천안지명 봉작을 받은 가문중(家門中)은 전섭(全聶)은 환성군(歡城君), 전락(全樂)은 천안군(天安君), 전홍술(全洪述)은 영산군(寧山君), 조성(趙成)은 직산군(稷山君)·경양군(慶陽君), 마순응(馬順應)은 목천군(木川君), 마점중(馬占中)은 목주군(木州君), 장빈(張彬)은 목천군(木川君), 오자경(吳子慶)은 보산군(宝山君), 백문보(白文宝)는 직산군(稷山君) 봉작을 받았다.

바라기는 직산 산직촌 용안치 온조왕 묘 터와 온조대왕 제향을 충남기념문화재로 지정 등록해야 한다. 온조왕 묘전을 복원하는 기획이 가시화 되고 있다.

반가운 것은 백제건국 시조 온조왕의 어머니(국모(國母)) 소서노(召西奴)와 위례성 이야기가 이정훈작 류중렬 연출, 그리고 김재복 연출 위례성이 뮤지칼로 무대에 올려졌다. 백제건국 2030주년 맞이하여 2013년에는 위례백제전이 성대하게 봉행되어야 한다. 잃어버린 찬란한 700년 백제역사가 시작된 위례백제를 자리매김하는 역사적 사명이 우리시대정신이다.

위례성 지명을 부여하여 입장면에 위례성로와 위례교차로라는 도로명을 지명하였다. 그리고 북천안IC를 북천안위례성IC라는 지명을 추진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해 아쉽다. 서울 송파구에 역사적 근거 없이 위례성대로, 위례성신도시, 위례성역이라는 지명으로 천안위례성 지명이 차용당하고 있다.

백제의 첫 도읍지는 옛 직산위례성이다. 고문헌 고지도 어느 곳에도 천안에만 위례성이 표기 되어있다. 백제의 첫 수도 이름은 옛 이름 “울레골” 한문 발음표기를 몽고어 발음 울레 慰禮(위례)로 기록됐다.

백제가 멸망한 후 고구려 신라 때는 위례수도를 비하시켜 수도 울레 발음 비슷한 유라 한문 사성(蛇城)으로 표기했다. 고려 때는 울레골 위례와 같은 옛 터키어 발음 위래 한문 稷山으로 표기했다. 국도 발음인 울레골과 같은 발음 한문을 골라 기록되어 왔다. 발음이 같은 지명을 시대마다 사용되든 언어로 한문 표기되어 공존해 온 곳은 천안 직산 위례 사산뿐이다. 위례성은 천안의 역사 지명이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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