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박물관이 참 재미있는 기획을 생각해냈다.
우리에게 익히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과 광해군, 두 인물을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본 ‘하계특강’을 마련했다. 이른바 ‘역사인물을 보는 다른 시선- 연산군과 광해군’이라는 주제를 단 것이다.
지원구 학예사는 “그것을 서술하는 역사가의 시각과 해석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표출된다”며 “사극을 통해 친숙한 연산군과 광해군을 대상으로 당시 시대적 배경과 그들을 바라보는 역사적 시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배움으로써 역사적 이해력과 판단력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이미 지난 20일(화)과 22일(목) ‘문제적 군주 광해군(한명기 명지대교수)’과 ‘연산군을 위한 변명(신동준 21세기 정경연구소장)’으로 긍정적 시각에서 바라본 강의를 진행해 120명 정도가 수강했다.
27일(화)과 29일(목)에는 ‘연산군- 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김 범 국사편찬위 편사연구사)’과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오항녕 전주대교수)’이 긍정적 시각에서 다뤄진다.
긍정과 부정을 이야기하지만 강사는 저마다 다르다. 지 학예사는 “같은 강사에 의해 긍·부정을 논할 수도 있겠지만 각각의 논리와 주장이 더욱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달리 했다”고 설명했다.
문의: 041-521-2892
다양한 논리속에 광해군·연산군이 보인다
한명기 교수는 광해군의 외교에 높은 점수를 줬다. 왕에 즉위하면서 ‘대동법’을 실시한 것은 그의 치적 가운데 눈에 띈다. 대동법은 왜란 직후 집권층이 백성들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었다. 광해군이 서적을 편찬하고 복간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광해군은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인 폐주로 불리웠으나, 명청교체의 와중에서 조선을 구해낸 택민주의자로 평가받기도 했다. 명청교체라는 대전환을 맞아 조선을 이이제이를 위한 희생물로 삼으려 했던 명의 의도를 간파해 좌절시킨 것이라든가, 막강한 후금의 실체를 인정해 그들을 다독이면서도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군사적 실력을 쌓았던 것 등은 뛰어난 외교적 역량으로 평가했다.
‘연산군을 위한 변명’을 다룬 신동준 21세기 정경연구소장은 “실록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연산군은 황음무도하기 짝이 없는 미치광이 폭군이 될 수밖에 없다”라면서 “하지만 연산군을 쫓아낸 반정세력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주군을 극악무도한 폭군으로 몰아세웠을 개연성이 컸다고 봐야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그는 변원림 재독사학자의 말을 인용해 연산군 일기의 내용에 대한 오늘날 역사학자들의 무비판적인 학문연구 태도에 놀랍다거나, 연산군은 도덕군자였음에도 그를 색광으로 묘사해 놓은 것은 그가 알면 관 속에서도 돌아누울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예를 들어 연산군을 ‘변명’했다.
한편 27일과 29일 다뤄질 연산군과 광해군의 부정적 시각을 엿보면, 우선 김 범 국사편찬위 편찬연구사는 ‘연산군- 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을 다루면서 “연산군이 자신의 치세를 파탄시킨 일차적인 원인과 책임은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그에게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그가 보여준 심리와 행동은 분명히 기이하고 부당한 측면이 많았다”고 서술했다. 또한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너머북스)’을 집필한 오항녕 전주대 교수는 말한다. “광해군은 혼군, 즉 정신나간 임금으로 배웠다. 그러다 80년대 이후 역사벌전, 진보, 실학 등이 강조되면서 다시 광해군은 ‘중립외교’의 현군으로 등장했다. 기묘한 상황이다. 식민사관의 이나바와 민주주의를 선도한 진보사관이 광해군을 똑같이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은 그 숨은 이유가 있다”고.
필자는 근대 역사학계의 광해군에 대한 평가를 ‘역사왜곡의 종합선물세트’라며 “광해군이 부활한 토양은 근대 역사학의 근대주의”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같은 문제를 2시간의 강의시간동안 조목조목 설명할 예정이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