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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왕사당 복원위치 ‘산직촌이 아니라구?’

천안시, 산직촌·직산초뒤 이어 향교… 자문위원회 결정 남겨둬

등록일 2013년07월23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윤종일씨가 온조묘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산직촌을 가리키고 있다.

백제시조 온조대왕사당 복원과 관련해 ‘위치’를 놓고 잡음이 있다. 직산 판정리 산직촌이 원래 온조묘가 있었던 곳이라는 주장과, 그렇다고 해도 터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직산관아 주변에 마련해도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 대립한 것이다.

처음엔 천안시도 산직촌을 1순위로 삼고 추진했다. 하지만 ‘군사보호구역’이라 안된다는 군부대 회신을 받았다. 군사보호구역 내에는 일체 시설물을 설치할 수 없다고 법은 규정하고 있다.

산직촌과 직산초 뒤편의 땅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천안시는 향교 담장과 인접한 곳을 사당터로 추진중에 있다. 자문위원들의 의견만 남겨두고 있다.

다시 후보지를 물색한 천안시가 직산초등학교 뒤편을 노렸지만 이마저 교육청과 직산초등학교 동문회로부터 ‘불가’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제3후보지로 선택한 곳이 향교와 인접한 곳이다.

이상오 시 문화관광과장은 “1·2차 주민설명회를 가졌고, 열대여섯명중 2명이 반대의견을 냈다”며 조만간 자문위원들의 의견이 한곳으로 모아지면 그곳으로 정해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부실한 논거 ‘세심한 보완 필요해’

산기슭에서 바라본 산직촌 마을.

‘산직촌’을 온조사당 건립지로 가장 좋다는 주장은 어떻게 나온 걸까.

1499년 발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온조왕의 사당이 ‘현청(직산 관아)에서 동북간 3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근거로 일부 지역향토사학자들이 ‘산직촌’을 유력한 옛 터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복원지의 가장 좋은 곳은 역사의 현장, 바로 그곳’이라는 점이다.

황서규(향토사학자)씨에 따르면 규장각에 보전돼 있는 ‘직산현지도’에서 온조전의 옛 터를 확인할 수 있다.

지도에 의하면 당시 관아의 규모와 위치, 각 마을과 인구, 농경에 필요한 저수지, 산, 도로 등의 위치가 명확하게 표시돼 있으며, 이를 근거로 지금의 직산읍 판정리(산직촌·용안치 중봉)로 유추했다.

또한 윤종일(향토사학자)씨도 “현재 향교쪽으로 추진하려는 것은 법궁의 왼쪽에 종묘를 세우고 법궁의 오른쪽에 사직단을 세운다는 ‘좌묘우사’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산직촌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터임을 주장했다.

이들은 ‘적극적이지 못한’ 시행정에 불만을 내비치기도 했다.

처음 시행정도 산직촌을 우선지역으로 택했지만 ‘군사보호구역’임을 들어 제2, 제3 후보지를 물색한 점을 잘 알고있다. 그들은 ‘시가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적합지임을 알면서도 단순한 불가회신 한 문구에 바로 포기하는 것은 ‘꼭 그곳이어야만 한다’는 확신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세 천안시는 당시의 온조묘와 온조사당을 찾는데 논거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미 오래 전 일로,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해명은 적어도 많은 노력을 한 후에야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관련 세미나조차 연 적이 없고, 500년 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현청에서 동북간 3리’라는 기록에서조차 제대로 연구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산관아 주변에 두면 옛 터와 가깝지 않겠냐는 무데뽀적 사고는 아쉬움을 던져주고 있다.
 

기록대로라면 ‘산직촌’인데…

일부 주민들은 이곳 샘터를 예전 온조사당 제례에 쓰던 물이라 해서 진왕정으로 불려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성열 천안시역사문화연구실장은 2009년 11월 본지기고를 통해 “무조건 직산 위례성을 백제초도로 몰고 가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참 모습을 찾아내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직산지방을 백제초도로 주장하는 학설과 관련해, 연차적인 조사연구와 더불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그는 그중 하나가 ‘백제국 시조 온조묘 복구 제례식 개최’라고 말했다.

2011년 5월과 6월 두차례 서정호 공주대 교수를 비롯해 황환경 천안시 문화재팀장, 이종택 학예사, 윤종일 역사문화연구실 직원, 황서규 천안향토사가 등이 직산읍 판정리 현장을 찾았다.

‘산직촌’이라 부르는 판정리 산24-19번지 일대가 ‘온조묘터’로 추정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위례산성(523m), 오른쪽으로는 성거산(579m)이 보였다. 현장조사결과 백제시대로 보이는 다수의 토기파편을 볼 수 있었고, 특히 지름이 22㎝에 달하는 항아리 파편은 3~4세기 백제시대로 추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온조묘터로 추정한 용안치 아래 약 15만여㎡ 주변은 일부 벌목과 개간 등으로 현재 밭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천안시역사문화연구실은 온조왕묘로 추정되는 곳이 이같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관계기관의 총체적인 대책수립’이 하루빨리 요구된다고 밝혔다.

온조왕 사당은 조선 세종11년(1429년)에 건립해 1597년 정유재란때 불타버린 것으로 전한다. 그러다 1603년 온조묘 건립제의가 있었지만 인조17년(1639년)에 남한산성으로 이전,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다.

1499년 발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온조왕의 사당이 ‘현청(직산 관아)에서 동북간 3리에 있는데 세조11년(1465년)에 처음 세웠고 춘추로 향축을 내려 치제했다’고 했다. 온조사당이 있는 건 밝혔지만 정확한 위치(지명)는 언급이 없었으며, 직산현지에는 온조묘의 유지가 ‘용안치 중봉’으로 기록돼 있다.

천안문화원의 고전문화연구회에서는 2001년 4월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직산관아에서 조촐하게 제사를 지냈고, 이후에도 온조제를 지내왔다. 황서규씨는 “지금이라도 온조전을 다시 세우고 백제창업의 정신을 기리는 온조대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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