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문제 하나.
뱃살, 독설, 이석증, 상처, 통증…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금호(56)씨의 시 제목이다.
제목에서 엿보이듯 그의 시언어는 다분히 불안정하다.
<…햇빛 오다 말다/ 변덕을 부리더니/ 갑자기 날이 흐려 바람이 불고/ 마지막 남은 이파리 하나/ 툭 떨어뜨리고 날아가 버렸다…>라든가, <…바람이 엉킨다/ 휘어질 듯 말 듯 기우는 나무를/ 붙잡고 그가 운다…> 했다.
이렇듯 금호씨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뭘까.
시로써 사색하고 소통하다
천안문인협회(지부장 김용순)가 55번째 천안문학 ‘2013년 여름호’를 펴냈다. 시와 수필, 동화 등 다채로운 작품들이 실렸으나 이번 여름호의 정점에 선 작가는 첫머리 특집편으로 다뤄진 ‘이금호’씨였다.
한 문학평론가는 그의 ‘너덜너덜’한 시에 숨어있던 미적 본질을 날카롭게 끄집어내곤 멋진 찬사를 날리기도 했다. “문학다운 문학을 발견할때 곤두섰던 눈썹이 펴지고 눈이 크게 떠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금호씨의 시가 그렇다”는 것.
평론가 윤성희씨는 이금호씨를 “예사롭지 않은 은유체계를 만들어 내고 그 경계가 자연스럽고 유연하다”고 표현했다. 글쎄, 칭찬은 긍정적 관계를 동반하는 것인가. 이금호씨는 이미 전작에서 자신의 시를 통찰해 평론한 글을 보며 권태기같던 시기를 벗어나게 해준 터라 “그분에 대한 고마움이 항상 있다”고 귀띔한다.
화자의 시를 보면 타인들과 섞이지도 못하고 그런 자신을 보며 내면의 고통을 호소한다. 그런 상태가 무기력함으로 나타나고, 때론 관계폐쇄성으로까지 치닫는다. 사회에 대한 불통이고, 관계에 대한 단절이다.
그런데 간과한 부분이 있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것이다. ‘저물면 습관처럼 언어의 만찬속에’ 그가 있고 ‘모임에 가면’ 사람들을 관찰하는 그가 앉아있다. 항상 대상과 마주하면서도 그들로부터 만족하지 못하는 화자는 과연 누굴까.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김현승의 가을의기도 한부분)’같이 절대고독의 경지에 들어서려 하는 것은 아닌지, 또는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유치환의 깃발 한부분)’처럼 이상을 동경하는지 모를 일이다.
화자는 알고 있을까. 이금호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글쎄요…, 자기만족의 편협함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요” 하며 웃음으로 에두른다.
하기사, 답을 알면 굳이 지금까지 구도자로 남아있을까.
‘찾지 못한 그 무언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가 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혼자서도 여행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는 관계지향성 술을 좋아하는 이병석(시인) 작가나 소중애(동화) 작가와도 코드가 일치한다.
기자와 마주앉은 그녀, 대화가 무르익자 술이 생각나나 보다. “이럴때는 차보다 술이 있어야 하는데요” 한다. ‘술을 마신다’거나 ‘술잔 부딪히는 소리’ 등, 그러고보니 그의 시를 읽다보면 술이 생각나게 하는 마력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제 시가 좀 우울하고 그렇죠? 제가 어둠을 좋아하듯이….” 그러면서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우울, 어둠, 외로움, 비… 그런데 그런 단어에 낭만이 어울려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까. “그런데 당신은 바람도 좋아하시잖아요.” 처음 밝은 눈웃음으로 나타난 그가 ‘가식’이었다면, 모처럼 자신의 시를 놓고 공개품평당한 시간이 즐거웠던지 어느순간 입꼬리까지 올라간 그.
“시는 계속 써왔지만 느지감치라도 등단한 보람이 있네요” 한다.
뱃살
내 몸에 살고 있는 은유
술을 마신다
입은 술잔이 되고
말은 목젖을 타고 흘러 내린다
천천히 부서지는 말의 기호들
살과 살 사이에서 부풀어오른다
저물면 습관처럼
언어의 만찬 속에 넋두리가 쌓이고
자고 깨면 낙서뿐인 후회
말의 뼈가 녹아내린다
언어의 근육이 점점 물러진다
겹겹이 접힌 마블링 속에 숨어있는 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