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새끼들을 위해 아파트 주인은 돼지고기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황조롱이가 도심아파트에 둥지를 트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돼버렸나 보다.
최근 전국에서 매스컴을 탄 도심 황조롱이를 자주 볼 수 있다. 새들의 번식지 공간이 개발에 없어지다 보니 오히려 인간이 사는 ‘적지’에 둥지를 트는 대범함을 보이고 있다.
천연기념물 323호인 황조롱이는 매목 맷과에 속한 철새로 몸길이는 33~35센티미터 정도이며 주로 높은 산에 산다. 우리나라에는 4~10월에 머물며 두더지, 작은 새, 쥐 따위를 잡아먹는다.
야생의 새는 왜 도심으로 내려왔을까?
마땅한 둥지도 없이 아파트베란다 밖 실외기 틈에서 자라는 황조롱이 새끼들.
부성동 코아루아파트 3층에 사는 김기섭(44·부성동)씨가 황조롱이를 발견한 것은 지난 5월 중순경. 작은 방 베란다 창틀 너머 실외기에 털도 안난 새끼들이 모여있었다. 한놈, 두놈…. 모두 일곱마리나 되는 새끼들이 낯선 이방인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신기했죠.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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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마리의 새끼중 두번째로 희생당할 위기에 있는 새끼는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다른 새끼들에 비해 조금 왜소하고 힘이 없는 듯 눈이 살짝 감겨있다.(다음날 아침 집주인에게서 '그놈'이 죽었다고 연락이 왔다. 다른 새끼들의 집단법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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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에서도 새끼들끼리의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결국 왼쪽놈은 살아남고, 오른쪽 새끼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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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애완동물을 키우는 마음이 돼버린 그. 다음날부터 집에도 빨리 들어오고, 삼겹살도 사다 먹였다. 어미가 들쥐 같은 것을 물어다 주는 것도 보고, 점점 몸집과 털이 자라 황조롱이 티를 내는 변화를 관찰했다.
그러던 6월4일 아침에는 무심코 쳐다보다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했다. 새끼들이 가장 약한 새끼를 공격해 죽여버린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김씨의 눈은 가장 약한 새끼를 찾게 됐다. ‘다음 타깃은 저 녀석이 되겠지’ 하고. 다른 것들보다 덩치도 작아보이고, 눈꺼풀도 졸린 듯 작게 뜨는 새끼에게 동정이 갔다. “먹이가 부족해서일 거예요. 새끼는 많은데 어미가 먹이를 물어주는 것은 거의 못봤거든요. 새끼들이 먹을 것이 많다면 그런 일이 안 일어날 거라 생각해요.”
그는 자신의 냉장고에 삼겹살을 가득 사놔야 되겠다고 했다. 약한 놈 하나 따로 보살펴봤자 그 무리중에 또다시 약한 것이 공격받을 것이다. 모두가 배부르면 먹이문제는 사라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가장 약하게 보인 녀석이 형제들에 의해 또다시 죽은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우연인가. 다른 도심 아파트 베란다에 둥지를 튼 황조롱이 뉴스에서 일곱마리 새끼중에 다섯마리가 자라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야생 황조롱이의 습성인지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로 먹이 구하기가 어려운 환경변화 탓인지 모를 일이다.
이들 황조롱이 새끼는 일주일, 또는 길게 잡아 이주일이면 이곳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때까지는 더는 희생없이 다섯마리 모두 건강하게 커서 둥지를 박차고 날라가길 목표로 삼아본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