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처마 밑에 멧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새끼 두마리를 키우고 있다.
부산한 아침시간을 넘기며 한숨을 돌리려던 차에 한통의 전화가 울려왔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도심에 날아든 황조롱이가 다뤄지는 걸 봤어요.” 그는 자신도 그같은 비밀스런 새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지금은 동남구청 인근에 살고 있지만 동면의 아무도 살지않는 집 처마에 ‘멧비둘기’가 집을 짓고 살고있다는 것이었다. “내 지금 일흔여섯인데, 멧비둘기가 제비처럼 사람사는 집 처마밑에 둥지를 틀고 있어요. 멧비둘기가 사람사는 곳에 집을 짓고 산다는 이야기는 평생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실제 2012년 3월 멧비둘기가 음성군청 맞은편 향나무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은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된 바 있다. 천안조류협회 이동근 회장은 "멧비둘기가 도심공원 인근에 살거나 인가쪽 가까이에 둥지를 트는 등 사람친화적인 부분이 없지 않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다 해도 처마밑에 집을 지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제보자인 이백녕(76·전직교장) 재향경우회 충남천안부회장과 그의 시골집이 있는 동면으로 향했다.
멧비둘기 새끼들 "처마가 아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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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주 다큐멘터리 작가와 동행한 동면 시골집. 이백녕 선생이 그의 집 처마밑에 둥지를 튼 멧비둘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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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비둘기는 비둘기과에 속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사냥새로 알려져 있다. 보통 도시공원, 시골마을, 구릉, 산지 등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로, 여름에는 짝지어 번식하고 겨울에는 무리지어 생활하며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고 1~2개의 알을 낳는다.
천동초등학교 인근 들녘에 자리잡은 그의 집은 크고 넓어 당시 상당한 지주였음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집으로 들어가는 초입과 마당이며 주변이 온통 나무와 화초로 뒤덮여 있었다. 서너가구가 집 주변으로 포진해 살고 있었으며, 마당 한켠에는 커다란 연못이 연꽃을 머금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처마 끝에는 두 손을 편 크기의 둥지가 걸터있었다. 사다리를 옮겨 둥지 위까지 올라가서 보니 몸으로 둥지를 가득 채운 멧비둘기 새끼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지난 4월 초에도 두마리의 새끼가 둥지에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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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새끼들이 다 자라자 둥지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자연의 품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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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쯤 처마 밑에 둥지를 튼 것을 보게 됐어요. 당시 두 마리의 새끼를 키우고, 때가 되자 둥지를 허물고 날라가더라구요. 근데 4월 중순쯤엔가 해서 또다른 멧비둘기가 찾아와 똑같은 자리에 둥지를 틀지 뭡니까. 하두 신기해서 알리게 됐습니다."
그는 새끼를 낳아 날라갔으니, 한달여만에 찾아온 새가 또다시 새끼를 낳는 것을 보고 다른 새라 추청한 거였다. 그런데 같은 멧비둘기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멧비둘기는 한 배에 한두개의 알을 낳고 품은지 12일에서 17일 정도면 부화하며, 조건이 알맞으면 계속 번식하는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같은 멧비둘기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는 거듭 야생 멧비둘기가 사람이 사는 집으로 들어와 더부살이하고 있다는 것에 흐뭇해했다. 하지만 그의 집이 도심아파트도 아닌 시골집이며, 더불어 사람도 살지 않은데다 집 자체가 정글을 이루고 있는데서 '특별한 일'로 생각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을 듯.
그의 요즘 2~3개월은 멧비둘기를 보는 낙으로 자주 시골집을 찾게 되었다. 관찰자의 시점에서 살펴보다가도, 조심스럽게 새끼를 건드려보기도 하면서 애지중지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해왔다.
이백녕 선생은 한때 지주의 삶을 살았던 이 집의 내력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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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집안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산비둘기 고기를 먹으면 안된다고 가르쳤다. 그 이유가 당시만 해도 다산을 장려하던 시절이라서 만약에 아이들이 멧비둘기 고기를 먹는다면 나중에 결혼해 아이를 둘밖에 못낳는다는 속설이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류중에 멧비둘기 고기맛이 최고라는 말을 듣노라면 당시 어른들이 술안주를 하려고 속인 것은 아닌가 의심되기도 한다. 또한 멧비둘기가 알을 한두개만 낳아 부화한다는 말은 맞는 것 같지만 1년에 4~5회에 걸쳐 알을 낳고 부화하기 때문에 그같은 말은 맞지 않다.
"사람사는 집이 아닌 자연속에 둥지를 튼 것이라 해도 여하튼 참 신기합니다. 제 평생에 이런 장면을 언제 구경해보겠습니까. 커다란 야생 새가 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제 집처럼 살고 있는 것을요."
하기사 그 멧비둘기 새끼의 고향은 바로 이곳 처마가 아닌가. 그리고 그도 아내와 이곳을 수리해 살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멧비둘기 가족과 같은 집을 공유하게 되는 인연이 결코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