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준 대로 찾아가자 아파트의 맨 꼭대기층(20층)에 다다랐다. 문을 열고 반기는 김상문(81) 충남분재협회장. 그의 거실과 베란다는 온통 분재로 가득차 있었다.
생활이 안정된 35세부터 분재를 취미생활로 삼아 살아왔다는 그다. “성격이 식물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당시 열심을 내다보니 천안에 분재동호회를 창립하는데 함께 했고, 반세기가 흐른 지금은 충남분재협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분재에도 다양한 기교와 요령이 필요한데, 그는 “무엇보다 필요한 건 정성”이란다.
분재라는 관심거리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러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들으며 다채롭게 흘러갔다. 대화가 삼천포로 빠졌지만, 운좋게도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가 군대 두 번 다녀온 것 모르시죠.”
옛 회환이 서린 듯 얼굴 가득 찌푸린 얼굴에서 푸념할 대상이라도 찾은 듯한 기세다. 키가 작아서 ‘병종’을 받아 군입대 전 대기상태였는데 갑자기 ‘노무자’로 1년쯤 생활하게 됐다는 그. 그때가 스물한살때인가로 기억했다. 그런데 26살때쯤인가, 끌려가다시피 군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너무 억울했습니다. 지금도 내 노무자 군번을 외고 있고, 이후 군번도 갖고 있습니다. 얼마 전 다시 억울함을 느껴야 했죠. 어차피 지난 세월로 있다보니 당시 노무자 생활자는 유공자로 대우받는다 하더군요. 나도 신청했는데 입증할 수가 없다고 퇴짜맞았어요. 분명히 내 노무자 고유번호가 있는데도요.”
정확히는 군대를 두 번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노무자 경력으로 유공자 대접을 받지 못한 억울함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죠.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도 저처럼 억울한 사건을 갖고 있습니다” 한다.
말인 즉, 할아버지는 1919년 삼일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와 함께 만세운동을 외치다 천안주재소에 잡힌 바 있었는데, 그분을 유공자로 기록해주지 않은 것이다.
“내 어렸을 적 할아버지는 이야기해주셨죠. 류관순이 천안주재소에서 다시 만세를 불러 우리 모두 더 두들겨 맞았다고요.”
그의 작은아버지는 태평양에 있는 남양군도에 징용갔다 사망했는데, 어떤 사정으로 천안에서 사망처리를 하다보니 이후 유공자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됐다.
또한 김상문 협회장은 자신을 천안에서 ‘안경업의 대가’로 자처했다.
군대에 다녀와서 당시 큰잿빼기에서 친구가 하던 장사(안경도매)를 함께 하게 됐다. 10%의 마진을 둘이 반반 나누며 전국을 돌다가 어느순간 혼자 도·소매안경점 ‘국제안경원’을 차렸다. 30세에 시작한 안경업은 이후 70세때까지 그의 직업이 됐다.
이외에도 40대때 서울 마라톤대회에 10㎞ 출전해서 3위에 입상할 만큼 잘 뛰었다고 했다. “당시 손길용이 2등 하고 내가 3등했지” 할 정도로 기억이 좋다. 그런 실력으로 88올림픽 당시 천안에서 성화봉송주자로 뛰기도 했다.
테니스도 “천안에선 내가 왕”이라 할 정도로 자랑했다. “당시 천안에서 웬만한 선수들은 나를 당해내지 못했다”는 그는 “키는 작지만 무척 민첩했다”고 했다.
인생을 ‘자수성가’형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결코 아니다”고 손사레를 쳤다.
“나는 (재산을)까먹고 살아왔다”고 했다. 가만 들어봤다.
“할아버지가 신방동 이마트 인근 3000평을 갖고 있었어요. 지금 시가로는 400억원쯤 될까 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지금까지 다 쓰고 살아온 겁니다.”
그는 최근 마지막 건물마저 처분하고 은행빚을 갚고 하면서 깨끗이 정리해버렸다.
“이미 내 나이 여든두살(집나이)인데 신경쓰고 살 일이 뭐 있습니까. 건물 갖고 있어봐야 세든 사람들 임대료 받아내는 것도 힘들고, 건물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고 해서…, 그거 있잖습니까, 부자는 망해도 삼대가 간다고. 이제는 쉽게쉽게, 즐겁게, 편하게 살아야죠.”
얼마 전에는 쌍용도서관 갤러리 사진전시회에 작품을 냈다. 몇 년동안 사진을 배우고 익혀 나름대로의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대화를 마치고 협회장 댁을 나올때는 20페이지 가까운 분량의 자료를 건네준다.
“내가 건강음식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가 건네는 자료에는 마늘, 고추장, 민물고둥, 유황 등 다양한 건강칼럼이나 정보기사가 들어있었다.
“건강이 최곱니다. 나를 보면 알 거에요, 내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미나리도 베란다에서 직접 길러 먹습니다. 먹는 방법에도 비결이 있습니다. 잘 읽고 지금부터 건강을 챙겨보세요. 삶이 달라집니다.”
정말 그를 처음 만났을때 60대 초·중반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건강미가 넘쳤었다. 시쳇말로 “쌩쌩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