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는 창세기 3장19절에 나오는 문구다. 또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이 말은 영혼에 대해 한 말은 아니다… 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빨리 간다…>라는 롱펠로우의 인생찬가 한 구절이기도 하다.
도예가 김재민(44)씨는 그의 명함에 이 문구를 새겼다. 흙·도예·예술이 연관돼 잘 버무려져 있는, 게다가 그또한 크리스천이니 그를 나타내는데 얼마나 잘 어울리는 말인가.
토기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토기장이)이란 뜻의 준말을 따 ‘토장도예’란 간판을 달고 2006년 성정동에 자리잡은 그. 하지만 도심생활은 그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11년 보따리를 싸서 성환읍 매주리란 초야로 들어가버렸다. 어차피 가진 것도 없으니 잃을 것도, 또한 버릴 것도 없었다.
“어찌 시골생활 할 만 합니까.”
가끔 전화로만 안부를 묻던 차, 1년 반이 지난 5월 초순 어떻게 살고있나 찾아가보았다.
전형적인 시골풍경 속의 전원주택, 그리고 마당 한 켠에 설치한 컨테니어박스를 도예작업실로 쓰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내 방과후학교 10곳을 출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들어와서는 오히려 제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쉬움이 묻어나는 표정이다. 그는 작업실이 못내 협소하고 불편해 ‘방문교육’은 일절 엄두도 못내고 있음을 전하며, 집을 2층으로 올리고 1층을 공방으로 전환하면 그때서야 작업실을 오픈하겠노라는 구상을 밝힌다.
한때 아이들에게는 인격을 쌓고 꿈을 키우는 곳으로, 또한 온갖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어른에게는 위안거리가 되고 의욕을 북돋아주는 ‘도심속 토기장이’가 되는 계획을 세웠던 그가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들어온 것은 분명 일보 후퇴와 같다. 하지만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시골의 넓고 여유자적한 공간에서 나름의 공방환경을 조성한다면 20분 정도 걸리는 시내에서 찾아오는데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내가 좀 더 열심을 내야죠. 거리 프리마켓 같은 곳의 참여에는 관심 많으니 언제든 불러주시고요, 몇 년전 ‘1000개의 사발’ 작품전을 통해 ‘나’를 알렸던 것처럼 작품활동에도 더욱 분발해야죠. 성환에도 괜찮은 도예가(도예공방)가 있다는 것을 알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