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로 주춤하고 있는 사이 두정동에 위치한 대전대학교 천안한방병원 2층 지산갤러리에는 봄꽃이 만개해 있다. 개나리, 진달래는 물론이고 벚꽃에서 산수유까지 꽃향기가 그윽하다.
동양화가 박순래(65)씨가 한방병원 2층로비에 27점의 그림을 전시중이다. 지난 3월22일 문을 연 전시여정은 오는 4월21일까지 한달간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4월11일 오전, 갤러리에서 만난 박 화가는 27점의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민들레, 기다림, 속삭임 등 작품명이 대체로 곱다. 소재 또한 아산의 맹씨행단이나 외암리마을을 비롯해 가까운 곳에서 찾아내는 그에게 ‘향토작가’라는 말은 잘 어울렸다. “요건 백석동 화실 앞에 핀 맨드라미를 그린 거예요.”
그의 작품은 여러 특색을 띄고 있었다. 주된 작품의 밑색에 황토를 바른 뒤 물감을 덧입히는 기법으로, 그림 곳곳에 얼핏 드러나는 황토(색)는 우리 고유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품에 따라서는 황토 외에 돌가루나 은모래, 금가루 등을 쓰기도 한다. 그림은 수묵담채지만 채색이 많이 들어가 수묵채색화에 가깝다. 더불어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동양화의 멋스러움이 그의 그림 속에도 뚜렷이 나타난다.
“전에는 몰랐어요.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연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됩니다. 저같은 사람이 그릴 것이 많다는 건 그만큼 아름다운 자연이 잘 보존되고 있다는 반증이겠죠. 모두가 노력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 50 안팎의 여성이 작가인줄 알아보고 구입문의를 한다. “요 앞에 있는 것이 제일 마음에 드는데, 가격은 얼마나 하나요? 나무 하며 풍경이 제 맘에 쏙 들어요.”
열정과 인고로 맺은 결실
박순래 화가가 그림을 시작한 건 30세쯤부터다.
“이미 천안에서는 제일 먼저 차를 보급한 차인이기도 하죠. 80년대 중반무렵부터 천안문화원 강사도 했었으니까요.” 87년 아카데미극장 맞은편에 전통찻집 ‘고려다원’을 운영하다 천안역 2층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느 시기, 동양화의 매력에 푹 빠져 ‘외도’를 시작했다. 당시 목포에 유명한 선생이 있다해서 다니기를 수년. 문인화나 산수화 등을 골고루 배웠다.
“한때 갈등도 있었지만 쉽게 정해졌죠. 당시 되도록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 조용히 생활하고 싶다는 열망은 차인보다는 화가쪽으로 기울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백번 잘한 일이에요.”
1993년 천안사군자회전을 시작으로 열심히 그리고 작품을 냈다. 그러다 2000년 천안시민문화회관에서 제1회 한국화개인전을 열고, 이후 2007년과 2010년에 개인전을 가졌다. 그간 전국시도우수작가순회전, 일본동경도미술관에서의 국제묵화전, 예연회 작품전, 서경갤러리초대전, 충남미협전 등에 얼굴을 내비치며 실력을 선보였다.
그런 노력으로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입선6회와 특선1회를 비롯해 숱한 미술대전에서 입선 이상의 성과를 거뒀고, 2006년엔 천안시장 공로패와 2007년 천안예총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충남미술대전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현재 예연회, 한국화구상회, 한국선면회,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거창한 계획이나 꿈은 없어요. 그저 지금처럼 수강생들 가르치고, 좋은 사람들 만나고, 즐겁게 그림작업에 몰두하면 좋겠어요. 덧붙인다면 ‘재능기부’라고, 좋은 일좀 했으면 좋겠어요.”
실제 2012년에는 관내 중증장애인 자립기금마련을 위해 ‘부채바람, 꿈을품다’는 이름의 전시회를 마련, 그가 그린 부채그림 450여점을 내걸기도 했다. “처음엔 열정으로 그렸지만, 팔목도 시큰거리고 눈도 침침해지고… 정말 힘든 작업이었죠”라며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