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법원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으며 모든 공문서의 한·불공증을 담당하고 있는 공인 통·번역사는 얼마나 될까?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공인 통·번역사는 이안자, 장보윤, 최지안, 이정미, 박무영 등이 있다.
좀 더 기술이 필요한 동시통역사도 양혜경, 고은경, 백혜리, 최효선 등이 있다. 이들 모두 합해 10명 남짓. 회화 위주의 관광통역사는 수백명에 이르지만 이처럼 법적 효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프랑스는 법원이나 회사, 이혼, 행정, 입학 등 다방면에서 법적서류에 공인도장을 필요로 하고 있어 이들 번역사들을 찾고 있다. 이들중 천안사람, 이정미씨가 활동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프랑스 남부쪽은 저 하나에요”
이정미(38)씨도 프랑스 외무부에 고용된 ‘공인 통·번역사다.
프랑스에서도 남부에 위치한 ‘몽따디’에 산다는 그녀.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잘 몰라요. 몽펠리에에서 1시간 정도 더 들어가야 하는 곳이죠. 파리에서는 기차로 3시간 넘게 걸리지만 지중해는 무척 가까운 곳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남부쪽 통·번역사가 통틀어 그 하나뿐이라며, 그런 덕분으로 성무용 천안시장과의 인연도 맺게 됐다. 2007년경 천안시가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인구 1만8000명의 작은도시, 끌루세시에 교류협력차 방문했을 당시 끌루세시 시장비서실에서 그에게 통역을 바라는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신기했어요. 제 고향이 천안(목천)인데, 2박3일간 방문한 천안시장님의 통역을 하게 된 것이죠. 통역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렇게 만난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녀가 통역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이상수 노동부장관, 정동영 통일부장관, 유진영 문화부차관, 임종석 국회의원 등이다. 그가 통역일을 시작할 2003년 당시에는 이 분야에 오직 자신까지 3명밖에 없었다. 그중 한명이 그만 뒀으니, 현재 10명 남짓한 한국과 프랑스간 통·번역사 경력으로는 ‘넘버2’에 해당된다.
“전 이 일이 재밌어요. 남편이 기관사라 교통비는 공짜지요, 게다가 통역일이 자주 있지 않아 그렇지 고수입(하루 100만원)에 속하거든요. 통·번역사 일은 굳이 사무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재택근무라서 아이들 돌보며 일을 병행하니 안성맞춤이기도 해요.”
그가 결혼할 99년에만 해도 국제결혼은 흔치않은 일. 당연히 아버지의 반대는 절대적이었다. 게다가 유학까지 다녀온 딸과 대학도 안나온 프랑스인과 선뜻 ‘결혼해라’ 할 수 없는 일. ‘삼고초려’하듯 신랑이 세번이나 찾아와서야 겨우 허락된 결혼이었다. 그런 우여곡절 때문인지, 정미씨는 2녀1남을 두고 오순도순 중상류층의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한국사람들 과소비 “좀 심한 거 같아요”
6년만에 고향 천안을 찾은 프랑스 공인통·번역사, 이정미씨가 두 딸(이수정·이은혜)과 함께 천안박물관을 찾았다.
정미씨는 6년만에 천안 고향을 찾았다. 막내아들은 이제 집나이로 두 살배기. 부득이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두 딸(이수정·이은혜)만 데리고 어머니를 찾아왔다. 오빠들과 언니도 만났고, 친구들과 지인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통역으로 인연이 된 천안시청도 찾아 인사를 건넸고, 천안박물관 2층에 자리잡은 천안시역사문화연구실의 문을 두드려 예전부터 가깝게 알고 지낸 김성열 실장도 만났다.
그녀 나이 38세. 인생의 반을 한국인으로, 나머지 반을 프랑스인으로 살고 있는 그의 눈에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는 얼마나 클까.
“글쎄요. 다른 것을 떠나서 한국인들의 과소비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사실이에요.”
이 부분에서 그녀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예로 프랑스 명품브랜드 ‘루×××’을 가지고 설명했다. “어제 백화점 내에서 5분만에 몇사람이 들고 다니는 것을 봤어요. 그런데 정작 프랑스에선 그런 일이 없어요. 파리에서 하루종일 다녀도 그 명품을 들고다니는 사람은 한두명 볼까말까 해요.” 유독 한국사람들이 외제명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내 눈에는 그런 모습들이 무척 이상해요. 우리사회는 가방만 또는 지갑만, 아니면 옷만 명품인 사람들이 꽤 많은데요. 프랑스는 부자면 모든 게 부자티를 내고, 서민이면 서민적이어야 하는 거에요. 부자면 가방, 옷, 지갑, 신발, 심지어 귀고리나 머리띠까지 명품을 하고 다녀요. 그런 사람을 보면 프랑스인들도 눈이 휘둥그래져서 쳐다보곤 하죠. 부자티를 내고싶다면 왜 가방만 명품을 사용하나요? 그건 이상한 거예요.”
그녀는 다시한번 한국사람들의 소비가 심하다고 강조한다.
“여기 있으니깐 10만원을 들고 나가도 쓸 것이 없더군요. 그 정도면 (물가가 비싼)프랑스에선 꽤 많은 돈이거든요. 참고로 프랑스는 집에 많이 초대합니다. 시장봐온 것으로 같이 만들어 먹고, 함께 공원 같은데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하죠. 돈 들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밥을 먹고 이동해 커피를 마시고 하면서 불필요한 곳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고 돈도 많이 듭니다. 조금 불합리하죠.”
1분만 불켜놓고 나와도 ‘왜 안끄고 나오냐’는 핀잔을 듣는 프랑스문화, 요즘 한국가정과는 너무도 다른 차이가 느껴진다. “흔히 동양이 정적인 문화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높여 이야기하잖아요. 프랑스에서 살아보니 실상은 반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볼 일입니다.”
이야기를 마친 뒤 나오는 길에 정미씨는 큰 딸내미에게 속삭인다. “1유로, 아저씨에게 선물로 드리렴.” 1원짜리 동전처럼 생긴 유로의 화폐단위는 우리돈으로 1430원쯤 나간다. 아이는 흔쾌히 건네준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