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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천안 시대정신

김성렬 천안시역사문화연구실장 기고칼럼

등록일 2013년03월0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신간회는 1927년 2월15일 종로 YMCA강당에서 창립 조직된 민족주의자 통합 항일민족운동단체이다. 일제 총독부가 1925년 6월에 치안유지법을 공포하면서 민족적 위기가 증폭되자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하여 1927년 2월12일 신간회 발기인 총회를 열었다.

신간회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 촉진, 기회주의 배격 단결을 공고히 함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1931년 해소될 때까지 항일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충남인으로 이상재 선생이 1927년 1월 신간회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2월 총회에서 초대 회장에 만장일치로 추대되었다. 천안인으로는 조병옥 선생이 연희전문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간회 중앙본부 재정 총무 간사 겸 경성지회의 책임을 맡았다.

1922년 이후 사회주의 사조가 침투되어 서울청년회, 화요회, 북풍회, 조선노동총연맹, 조선청년총동맹, 고려공산청년회, 엠엘(ML), 조선공산당 등이 조직되어 민족주의자들과 대립하였다. 민족주의자들은 이에 대비 민족단일전선(民族單一戰線)을 결성하기로 하고, 이상재(李商在)를 회장으로 추대하여 신간회를 조직하였다.

기존의 여러 항일 민족운동단체를 규합하여 민족협동전선을 통한 민족적 비타협주의 단일당을 구현한 단체이다. 모든 활동은 중앙위원과 간사회에서 이루어졌다. 그 자매단체의 성격으로 여성단체인 애국부인회, 근우회도 조직되었다.

신간회에서는 민족 자주독립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국내외에 지회를 설치하여 일본 동경지회, 서울지회 1928년 말에는 국내외에 143개의 지회와 3만명의 회원을 확보하였다. 충남에서도 홍성, 예산, 당진, 서산, 공주, 부여, 천안지회가 설립되었다. 신간회의 운영 자본은 주로 천도교측이 부담하였다. 1931년 5월에 사회주의 계 좌익분자들의 중상모략으로 자진 해체되었다.

천안은 중외일보 1928년 3월4일자 보도에 3일 천안신간회 설립 준비회 발기를 보도하였다. 설립준비위원회는 천안시사회단체협의회 회장 노서호(盧緖鎬), 정○모(鄭○謨), 천안읍교회 청년회 간사 노익배(盧益培), 전희○(全熙○), 배성달(裵聖達), 전시찬(全始燦), 김규호(金圭鎬) 위원이 추대되었다.

그리고, 1928년 4월15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천안신간회 창립총회에서 지회장은 천안기독청년회 회장(1923) 천안학교평의원(1929) 이헌영(李憲永), 부지회장 이헌석(李憲奭), 서무부 총간 전시찬(全始燦), 정치문화부 총간 노서호(창립준비위원), 조사연구부 총간 홍찬섭(洪讚燮), 조직선전부 총간 강영균(姜永均), 서무부 상간 김덕수(金德洙)ㆍ김낙호(金洛豪), 정치문화부 상간 김규호(金圭鎬), 준비위원 나철희(羅喆熙), 조직선전부 상간 배성달(裵聖達), 준비위원 정○기(鄭○琦) 임원을 선임하였다.

시대정신이 투철한 천안읍 서릿말 천안읍감리교회 천안기독청년회 이헌영 회장이 지회장에 선임되었고 천안읍교회 청년회 간사 노익배가 설립준비위원으로 참여했고, 천안시사회단체협의회 회장이 정치문화부 총간으로 선임되어 눈이 띤다.

천안지방도 시대정신이 투철한 지성인들이 기독교인들 중심으로 솔선하여 정치적, 경제적 각성 촉진 기회주의 배격단결을 공고회 하는 강령이 채택됐었다.

1928년 그 투철했던 선각자들의 민족주의 통합 항일 민족운동 시대정신을 전승해야 한다. 우리시대정신은 민족화합 통일 발전과 인류애의 봉사이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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