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조사위원이 화실에 찾아온다는 연락이 왔어요. 그는 화실에 아무도 있으면 안된다고 했어요. 혼자만 있으라고요. 그러더니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돈을 요구하는 듯한 말 뿐이었어요. 계좌번호도 적어주려 쓰다가 못받겠다 싶었는지 지우고 가버렸죠. 그리고 며칠 안있어 난 ‘충남도 무형문화재’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원성동에 화실을 둔 김경희(53·본명 김애숙) 민화작가는 최근 황당한 일을 당했다.
김씨는 지난해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도 무형문화재에 신청·접수하게 됐다. 관련서류를 남편과 직접 준비했고, 지정신청에 따른 현지조사도 받으며 기분좋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 조사위원 때문에 일이 틀어지게 될 줄은 몰랐다. 이들 부부는 금품요구에 응대하지 않자 벌어진 파렴치한 일로 규정했다. 이후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충남도를 상대로 ‘도 지정문화재 등록거부처분 최소청구’를 제기했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쉬잇 “혼자만 있어요. 아무도 없어야 해요”
김씨의 주장은 이러하다.
지난 5월 중순 충남도 문화재위원들이 이들을 찾았다. 해당 공무원들과 심사위원 A·B·C 3명이 찾아온 것이다. 화실에서는 전승계보, 실기심사, 재료분야로 나눠 심사를 벌였고 김씨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실력을 뽐냈다. 알아서 볼 테니까 빨리 하라고 채근받기도 했다. C위원은 “평생 남을거니 빨리 찍어” 하며 관계자에게 소리치기도 했다. 이날 분위기는 대체로 훈훈했다. “다 잘될 거다”라든가 “실력이 좋다”며 계속적인 칭찬을 늘어놨다. 당시 임모 도 문화재팀장의 말도 기대를 갖게 했다.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이후 좋은 소식이 언제쯤 올까 기다리리던 김씨에게 8월21일 A위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도 없어야 한다.… 약속 지켜야 한다” 등등 단둘이만 화실에서 만날 것을 거듭 요구하고 확인했다. 김씨는 하도 이상하다 해서 이쪽 계통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들이 그러더군요. 그놈새끼 분명 돈달라고 하는 거니, 목격자도 두고 사진도 찍으라고요.” 김씨는 일부러 안쪽작업실에 사람 하나를 두고, 바깥에도 차 안에서 몰래 사진을 찍게 했다.
문제의 A위원이 돈을 요구하며 적다 지웠다는 메모지.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황에서 문제의 A씨가 찾아왔다. A씨는 “그 사람(C 조사위원)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든가 “무형문화재가 되면 혜택이 많은데 날로(그냥) 혜택을 보려느냐”며 은근슬쩍 본색을 드러냈다. “그 위원이 원하는 액수가 수천만원으로 느껴졌어요.
인사치레로 기십만원 준비해서 될 일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내가 말했죠. 계좌번호를 적어달라고요. 그가 빈 종이에 농협 계좌번호를 적고 있는 중에 ‘선생님, 지금은 돈이 없습니다. 되고나면 준비해 입금해드리겠습니다’ 했죠. 그랬더니 적던 것을 지우고 그냥 가더라고요.” 김씨가 보여준 메모지에는 ‘농협’이라고 썼다가 지운 흔적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8월26일자로 또다른 C조사위원이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김씨는 “3명의 조사위원이 여기를 다녀갔는데 A위원은 여기를 다녀간 5월 바로 자격이 있다는 의견서를 낸 반면 B위원은 7월초순에 자격없다는 의견서를 낸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A위원이 8월 찾아와 금품요구를 한 후 거절당하자 며칠 후 C위원이 자격없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했다.
도 관계자에 따르면 충남도 문화재위원회는 2012년 8월31일 9명의 위원중 7명이 참석해 ‘전통민화’부문 무형문화재에 도전한 김애숙씨를 부결 처리했다. 그는 “무형문화재 가부심사는 다수결이 아닌 전원합의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조사위원들의 진술의견서가 중요한 평가자대가 되는 상황에서 무형문화재 민화부문의 심사가 제대로 됐을까는 의문이다. 김씨는 분명히 부정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이에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어떤 결정을 내려줄지 주목된다.
조사위원들 ‘당락영향에 절대적?’
당시 도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한 조사위원들의 ‘무형문화재 지정신청 조사의견서’의 주요내용은 이렇다.
문제의 A위원은 ‘정규교육이 미흡하고 실습위주의 도제식 교육만 받다보니 일부 한계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본인이 우리나라 전통민화의 전승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매우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며, 그간 어려운 여건에서도 전통민화제작기법을 잘 갈고닦아온 점을 감안, 전승·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부결처리한 B위원은 계보가 불확실한 점, 전통채색의 제작·사용 등이 미진함, 다수 일본식호랑이 작품이 출품되었음, 채색·필선 등이 세련되지 못한 부분이 있음 등의 6가지를 지목하며 ‘지정불가’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애숙씨는 “일본호랑이가 어디 있냐”며 ‘일본식’ 자체가 어불성설이다고 말했다. 또한 “채색·필선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것은 당시 그 부분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며 빨리 하라고 재촉해놓곤 딴소리를 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C위원은 ‘대외적인 활동은 활발하나 작품의 역량, 안료를 비롯한 재료에 대한 지식, 민화에 대한 지식 등이 부족해보인다’며 충청남도를 대표하는 전통민화부문 무형문화재로는 부족한 면이 많다고 판단했다.
한편 A위원은 자신이 다시 화실을 방문한 이유에 대해 “현장조사(5월22일)로부터 상당기일이 지나 발표자로서 최선의 준비를 하기 위한 것으로, 도 관계자나 위원 등과는 사전협의가 없었음을 밝혔다.
그는 ‘심층자료수집이 필요함을 설명한 후 40여분간 조사와 설명을 들었다’고 해명했지만 김애숙씨는 ‘관련질문은 전혀 없었고, 두루뭉술하게 금전요구만이 있었다’고 주장했고, 당시 화실 안쪽에 있던 사람도 그들의 대화를 다 엿듣고, 돈을 요구하는 듯한 정황을 목격했다는 점은 간과될 수 없는 일이다.
충남도 ‘일단 먹칠논란자 퇴출’처리
이같은 논란속에 당시 충남도 임모 문화예술과 문화재팀장은 육아휴직중이며, 담당과장은 인사이동된 상황이다.
현재 1개월여 된 김돈곤 충남도 문화예술과장은 “당시 문제가 된 조사위원은 논란이후 일도 안맡기고 위원회 참여도 안시키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에 진위를 떠나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명예회복이 되지 않고는 관련 일을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다.
또다른 공모자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심증만으로 어떻게 처리할 수 없는 것이며, 직접 사안을 챙겨 당사자(김애숙씨)를 만나보고 파악해보겠다”고 전했다. 문제가 있다면 추가적인 조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C위원은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참을 해명하며, 때론 격분했다. 전통민화에 대한 열악함에 공감해왔다는 그는 “요즘 돈을 요구한다는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얘기겠냐”며 ‘배신감’도 느낀다고 토로했다. ‘농협’이라 쓴 메모에 대해 끈질기게 묻자 자신의 필체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지정이 안됐기 때문에 물고늘어진다’거나 ‘적반하장격’, ‘그분들이 끝까지 한 걸 물리친 거다’, ‘낯뜨거운 자료가 들어있다’는 등의 묘한 말들을 내뱉으며 “속된 말로 금품수수도 아니고…, 작품활동에 전념하시고 새로 좋은 기회를 가지시길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이번 논란이 문화예술계에 종종 있어왔던 관행적인 대가성 금품요구인지, 아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
충남도나 천안시 및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이 의지를 갖고 정확한 진위를 가려 바로잡을 수 있는지는 충남도내 문화예술계 전반에 중요한 기로점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