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명동거리에서 중앙시장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늘어선 구제가게들. 지난해부터 부쩍 늘면서 ‘구제골목’으로도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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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의류의 매력은 개성있는 나만의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가격도 획기적으로 저렴하다. 경기가 어려운 이런 때는 구제가 대세다. 아니 독일이나 미국처럼 이젠 경제적 여유가 있고 없고를 떠나 구제의 장점이 유행처럼 번져나고 있다.
일반구제에서 명품구제까지. 아주 저렴한 가격에 좋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구제가게가 천안 명동골목에도 즐비하다. 언제부터 생겼을까. 소문없이 시나브로 늘어난 구제몰(구제샵)은 어느덧 당당하게 ‘구제거리’로도 손색없다.
한 가게 점원은 “아무리 비싸도 10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귀띔한다. 경기가 어렵다 어렵다 푸념해도, 그럴수록 구제가게는 오히려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명동골목에서 가장 큰 구제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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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골목 입구에서 시작된 구제샵들이 중앙시장까지 주욱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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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골목에서 중앙시장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길목. 천안에 구제가게는 곳곳에 있겠지만 이곳은 20~30여개의 구제가게가 존재한다. 이 정도면 가구거리나 핸드폰거리처럼 ‘특화거리’로도 손색없다. 시민들이 알고는 있었을까. 근방에서 가장 큰 구제가게에서 일하는 한 점원이 ‘명동거리’이 아닌 ‘구제거리’로 소개하는 것을 들으며 부쩍 호기심이 생겼다.
개인취향 ‘마니아층 생겨나’
영화관과 작은 점포 한개만 운영되고 있는 명동골목의 대표적 건물인 오렌지 씨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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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30일(수) 오전 11시쯤, 구제가게를 찾아 나섰다. 양지문고 건너편 명동거리의 초입에 들어서자 한 가게가 ‘구제’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잠깐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렌지씨네스타를 지나면서부터는 심심찮게 구제가게란 간판을 볼 수 있었다. 십자로 모퉁이엔 일대에서 가장 큰 구제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가게가 큰 만큼 의류와 신발이 넓은 매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점원 말로는 이들 대부분이 서울 강남물건이었다. 부자들이 몰려사는 강남에서 나온 물건은 입찰을 통해 주인을 가린다. “우린 처음 골라 가져오는 쪽이고, 남은 물건에 대해 2차·3차로 가져가는 구제가게들이 있다”고 했다. 그런 때문인지 진열된 물건들 속에 낯익은 명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블록을 지나자 양달과 음달이 갈리듯 조금은 화려한 거리가 음침한 골목으로 변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도 뚝 끊겼다.
거기서 우회해 중앙시장으로 가는 길과 수십미터를 직선으로 진행했다 우회해 중앙시장으로 이어진 길이 나타났다. 좀더 직선으로 가는 골목은 간간히 구제가게가 있었지만 처음 우회한 길은 구제가게가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2년여 운영했다는 한 구제가게 주인(남)에게 형편을 묻자 “그저 그렇다”는 다소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또다른 가게의 주인(여)은 손님도 아닌 낯선 이방인에게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처음 우회한 길을 따라 중앙시장을 앞에둔 작은 구제가게 여주인은 시작한지 3개월 됐다며 “잘 모른다”고 했다. 그렇지만 “듣기로는 10년 전부터 점차 늘어났지만, 작년부터 늘어난 구제가게가 많다”고 했다. 그의 벌이에 대해선 “부업으로 시작했는데 그럭저럭 (운영)된다”고 말했다. 빈티지 패션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고있는 구제샵.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과 예쁜 디지인은 ‘마니아’층을 두텁게 하고 있다.
한 점원은 “손님중엔 더러 마니아를 넘어 폐인에 가까운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들은 물건이 들어오는 날을 기다려 쇼핑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저럼한 가격으로도 취향에 맞는 좋은 물건을 찾을 때면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뻐한다는 것이다. 일반가게는 ‘가격대비 물건’을 고르게 되지만 이곳은 운이 좋으면 의외의 물건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구제, 명동구도심의 활성화 대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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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골목 이곳저곳에 지난해부터 부쩍 늘어난 구제샵들. |
천안명동거리의 대표건물을 찾는다면 단일건물로는 가장큰 ‘오렌지 씨네스타’를 들 수 있다. 씨네스타가 들어섰을때 명동거리는 환호했다. 멀티영화관(CGV멀티플렉스·8개관)을 필두로 다양한 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신부동의 아라리오나 갤러리아 백화점처럼 상징적인 건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얼마 안있어 실체가 드러났다. 이미 구도심의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렌지 씨네스타(지하5층·지상11층)만으로 상권형성을 이루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빠져나가면서 지금은 씨네스타 건물 통틀어 영화관을 제외하곤 1층에 닭강정 가게 하나만 근근히 운영해나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곳의 처한 상황을 잘 알고있는 한 청소부(여)는 단도직입적으로 “상권이 바닥난 상태”라고 표현했다. “다들 문을 닫거나 닫을 예정으로 알고있다. 임대기간만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며 앞쪽을 가리키며 “저 두 가게는 최근 외지에서 멋모르고 들어온 사람들로, 이곳 형편을 알고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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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집돼 있는 명동골목 구제샵들에 대해 천안시는 특화거리로 지정하는 것을 고민해볼만 하다. |
이런 상황에서 구제가게의 난립은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경기침체에 따른 구제몰 자체의 경쟁력이 높을 뿐만 아니라 천안시 행정에서도 ‘특화거리’로의 모색이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도심 활성화 고민속에 공설시장, 천안역, 지하상가, 명동거리, 동남구청, 중앙시장 등 일대 권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구제몰로 인한 자발적 변화 가능성이 기대를 불러오고 있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