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찾는 통기타의 총무를 맡고 있는 최찬규(49)씨. 생계고를 위해 취미활동을 절제하는 일이 있지만, 그는 ‘용기있게’ 정반대의 삶을 택했다.
한때 학교급식과 관련된 자영업을 꾸리면서 괜찮은 수입을 확보하기도 했던 그. “그런데 기타가 너무 치고 싶고 노래가 너무 하고 싶은 겁니다.” 일상은 경기침체다 뭐다 해서 다들 생계고를 걱정하는데 마음은 괴리감만 키워내고 있었다.
처음엔 반대하던 아내는 그런 그를 이해하고 “당신이 원하던 대로 해라”고 승낙해줬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중학교때부터 기타를 배우고 고등학교때는 나팔을 배운 그. 대학때엔 그룹사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대학가요제에 도전하기도 했었다. 군대를 다녀와도 그 열기는 여전해 친구와 듀엣으로 통기타를 메고 대학가요제를 다시 노크했다.
결국 충북 대표로 본선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천상 그의 음악적 끼를 제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영업을 그만두고 기타를 어깨에 맨 그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가장으로써의 책임감을 버려두고 기타를 치고 노래만 부르는 배짱이는 되기 싫었다. 다행히 살 길은 열렸다.
주민자치센터의 활성화와 더불어 그는 노래교실 강사를 비롯해 드럼과 통기타를 가르치는 강사로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생활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진정으로 원한 연주활동도 탄력을 받게 됐다.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부르다 보면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는 다 날라가고 기분좋은 즐거움이 온 몸을 채웠다.
등산객들이 왜 높은 산을 ‘꾸역꾸역’ 기어오르는지, 연주공연을 통해 그같은 기분을 맛보고 알게 됐다.
하지만 매 주말 4시간씩 길거리 공연을 하기 위해선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이 모두 투자돼야 하는 상황. 더 가치있는 일을 찾기 위해 모금활동을 덧입혔다.
노래를 들어주고, 잘 들었다고 또는 좋은 일에 써달라고 한푼 두푼 모금통에 돈을 넣는 사람들을 보며 또다른 삶의 활력을 공급받았다.
“제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힘이 다하는 데까지는 열심히 할 겁니다.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고 어려운 이들에게 작은 격려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이같은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4년째로 이어지는 행복찾는 통기타의 공연무대, 광덕산 정상(또는 팔각정). 20년이 지나도 찬규씨의 멋진 공연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