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립합창단이 노조결성의 의지를 확고히 보이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지난 13일(목) 교섭에선 일정 성과를 거뒀다. 천안시 관계자는 “기본협약을 해줬다”고 말했다. 어차피 노조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기에 앞으로 어떻게 교섭을 벌여나갈 것인지 기본적인 방향설정만 합의해준 것이다.
기본협약에 따르면 격주 한번 교섭에 임할 것과 교섭인원은 5명까지를 인정했다. 다만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를 교섭시간으로 정했다. 천안시는 교섭 전문성을 위해 공인노무사를 쓰기로 했다. “시립합창단측도 민노총 전문가가 나오는데 이런 교섭에 문외한인 공무원이 상대하기로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 제대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다.
무엇이 문제인가
‘노조를 핍박하지 말라.’
시립합창단측은 ‘노조’라는 무기를 앞세우고 있지만, 천안시의 쟁점은 노조 자체가 아니다. 노조라는 허울 속에 감춰져 있는 그들의 ‘비상식적’인 요구안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그들이 처음부터 무얼 요구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왜 노조를 결성했는지, 시에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핵심을 말하고 있지 않다. 단지 그들의 단체협약 요구안을 보며 대략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인터넷신문에 기고한 그들의 기고를 보면 노조결성의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기고문에는 ‘천안시는 문화재단을 구성하여 법인화에 대한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시에서는 부정하고 있지만 이미 이사진도 구성하고, 상근자도 있다고 했다. 설령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중요한 변화가 생기면 당연히 노조를 결성하여 대응하는 게 상식인데도 안팎의 조건은 그렇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시립예술단을 문화재단으로 넘겨 민영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참으로 이상한 것은 나머지 4개 예술단(시립무용단·시립풍물단·시립교향악단·천안시충남국악관현악단)도 함께 뭉쳐야 하지 않을까.
본지는 노조결성과정에서 시립합창단측이 만났던 4개 예술단 대표자들을 만나봤다. 그들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당연히 옹호해야 할 시립합창단측에 대해 한목소리로 강한 비판을 내놓고 있었다.
A씨는 “천안시 담당국장이 향후 더 좋은 환경과 조건으로 문화재단에 갈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지만 당시 우리는 전혀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간다는 것도 아니었고, 만약 가게 된다면 오히려 좋은 조건을 달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B씨도 맞장구치며 거들었다. “시립예술단이 아니라도 어느 조직이나 단체든 시대변화에 따른 발전적 모색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때로 나쁠 수도 있는 것으로 국장은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한 것 뿐”이라고 했다. C씨나 D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즉 문화재단으로 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예술단 전체의 문제가 되는 것인데, 왜 시립합창단만 부정적으로 보는지 알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문화재단은 노조를 만드는 이유의 형식적 핑계일 뿐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때문에 4개 예술단은 ‘시립예술단노조’로 돼있는 명칭을 ‘시립합창단노조’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들어주지 않자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법으로라도 막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실제 그들이 주장하려는 것은 뭘까
시립합창단측이 대놓고 이야길 안해도 그들이 공개해놓은 ‘단체협약 요구안’을 보면 무얼 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핵심적인 내용만 정리한다면, 먼저 단원의 근무시간 조정과 관리를 단체장(지휘자)에게 줘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고용자인 천안시가 아닌 지휘자 통솔을 받겠다는 것이다.
시립합창단은 현재는 하루 8시간의 공무원과 준하는 근무시간을 갖되 예술의 특수성을 고려해 ‘하루 6시간’의 근무형태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실제 근무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에 끝냈고, 한때는 오후 1시에 끝나기도 했다. 시립합창단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더욱 가관이다. “근무시간도 A조와 B조로 나눠 하루 2시간도 채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연습공간이 없을시 개인이 원하는 시설과 장소에서 연습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개인연습의 경우 집에서든 공원에서든 자신들 맘대로 하겠다는 발상이다. 시민혈세로 평균연봉 3000~4000만원을 받아가면서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맘대로 하겠다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생각일까. 이에 대해 시립합창단을 제외한 4개 예술단 대표자들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또다른 주장은 자신들을 공무원들처럼 ‘철밥통’ 직장인으로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정년을 60세로 해주고, 지휘자가 담당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면 65세까지 근무연장이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초 2년에 한번 오디션을 보며 재계약을 하기로 한 규정은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그들 주장대로라면 예술인으로 봐야할지, 직장인으로 해석해야 할지 도통 분간이 안된다.
시 관계자는 “처음 인정에 이끌리다 보니 오디션의 취지를 살려 엄격히 하지 못한 불찰”이라고 했다. 지휘자가 바뀌면 예술의 색깔도 달라지는 것. 이에 따른 단원들의 물갈이도 이뤄지는 것인데,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지금은 실력이 안되도 그들의 밥그릇을 챙겨줘야 하는 꼴이 됐다고 푸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앞으로 오디션 제도를 정확히 밟아나가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시립합창단측이 불안해했던 문화재단으로의 소속이전도 제한장치를 해놨다. 예술단을 분할`합병하거나 타인에게 양도·법인화하고자 할 때는 조합의 합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조합이 싫다면 시는 정책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외에도 공연과 연습에 ‘현저한’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학교출강, 외부강습 등의 기회를 보장하라는 것이라든가 연장근무 또는 휴일근무를 시킬 경우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등의 요구안을 담아내고 있다. 심지어 지휘자나 부지휘자, 단무장, 사무행정 업무자 등에 대해 평단원의 평가를 50% 반영해 달라는 것까지 들어있다.
이런 요구안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시는 이같은 요구를 ‘대단히 무리한 요구’라고 내다보고 있으며, 시쪽의 입장을 대변할 공인노무사도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 뿐만 아니라 4개 예술단측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발상’이라는 말로 치부했으며, 하물며 시립합창단 비노조측조차도 ‘상식적이지 않다’고 했다.
오해도 생겼다
“노조? 결성을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정형교 시 복지문화국장과 윤경택 문화관광과장은 분명히 밝혔다. 다만 그들이 무슨 의도로 노조를 결성했고 어떤 요구안을 주장하는지 우려하는 것이다. 우려는 시간이 해결해준다. 교섭을 진행해나가다보면 법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행정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지가 가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쓰는 명칭은 현재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천안시립예술단지회’다. 하지만 나머지 4개 예술단이 ‘천안시립합창단지회’로 바꿔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왜 그들의 주장에 휩쓸려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한 풍물단원은 “우리는 최근에도 생계고 문제로 두명이 그만뒀다. 나이가 30세 안팎인데도 월급이 100만원 안팎이다. 모든 예술단들이 시립합창단같지 않다”는 말로 그들의 근무환경이 타 예술단보다 좋다는 점을 밝혔다. 그는 “얼마전 시립합창단원과 얘기를 나눴는데, 노조가입을 설득하는 자리였다. 그의 말이 우리와는 딴 세상 같았다”며 더 이상 진전하지 못했다고 했다.
차라리 시립예술단이 건전한 ‘시립예술단노조’를 만들고 시립합창단이 함께 하는 것은 어떤지가 화두로 던져지기도 했다.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발전적 가치를 담은 노조이고 요구안이라면 바람직하지 않겠냐는 것.
시립합창단측은 매체활용을 통해 ‘천안시는 최소한의 상식과 규칙도 없다’고 호도하든가, 그들에게 불리한 기사가 보도되자 시의 사주를 받은 악성기사라며 비아냥하고 있다. 4개 예술단 대표자측이 ‘객관적인 보도’라고 평가해도 그들에게만은 ‘편파적’으로 읽히는 것이다. 심지어 ‘노조결성 후 천안시가 합창단에 대해 10여개의 공연을 취소했다’며 노조탄압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시는 간단하게 해명했다. 시 관계자는 자료상의 근거를 제시하며 “노조결성 후 공연횟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회가 많다”고 했다.
지난해 해당기간 서왔던 반딧불음악회와 삼거리상설무대에서 빠진 이유도 설명했다.
“올해부터 문화재단이 주관이 된 반딧불음악회는 지역주민장기자랑과 영상홍보 등 새로운 구성으로 시립예술단이 서는 빈도가 거의 없다”며 실제 시립교향악단이나 천안시충남관현악단 등도 이 기간 1·2회 선 게 전부다.
토요상설무대는 올해 ‘웃다리풍물굿’으로 국비를 타왔다며 “최근 현장실사도 한다는 얘기들이 있는 상황에서 웃다리풍물굿이 아닌 시립합창단이 무대에 서는 것은 사업규정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지극히 정당한 해명인데, 시립합창단측은 왜 왜곡시켜 문제시할까.
이같은 시립합창단 노조문제는 곧 시의회로도 옮겨져 다뤄질 예정이다. 이번 임시회 시정질문에도 인치견 의원의 질문으로 들어가 있으며, 시립합창단측이 몇몇 의원들을 선택해 자신들의 주장을 밝힌 바 있다.
자칫 정치적으로 풀어갈 여지도 있어 시는 바짝 긴장하고 있으나, 한 시의원은 ‘사안을 바로보자는데 중점을 두겠다’는 말로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