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 중앙동사무소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17통과 18통이 맞닿은 곳. 사람들은 ‘미나릿길’이라고 불렀다. 좁지만 차 한 대는 겨우 다닐 수 있는 길 사이사이로 더욱 작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엉켜있다. 한 사람이 다니기론 넉넉하지만 연인이 어깨동무라도 해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그야말로 좁디좁은 길이다.
최근에 그곳 골목길이 벽화사업으로 한창이다. ‘에이, 벽화사업이야 천안 곳곳에 널려있는데 뭐.’ 처음 반신반의해 가본 곳은 뭔가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 전장 800미터에 그려진 벽화는 여러 테마가 존재하고, 전문가의 손을 빌어 만든 8개의 트릭아트가 압권이다.
더욱이 과정상의 의도가 더욱 벽화사업을 돋보이게 했다. 그에 따른 몇몇 무대위의 주인공들의 역할이 빛났다.
김성래 동장 ‘이리뛰고, 저리뛰고’
▲벽화에 대해 주민과 대화를 나누는 김성래 동장(우).
먼저 김성래 신임동장이 17·18통의 형편을 살펴본 것이 시초다. 재개발 계획도 없는 전형적인 구도심이면서 울퉁불퉁한 바닥과 살짝 기대도 금방 넘어갈 듯한 담벼락이 위태롭게 보였다.
지난 2월, 지저분하고 좁은 골목이 악취와 침수까지 보이는 점을 고민하던 그에게 성무용 시장이 한마디 했다.
“한번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해보면 어때.”
돈이 많이 들어선 재생사업의 의미가 퇴색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알아보니 일본의 한 폐탄광촌은 꽃마을에 트릭아트로 꾸며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얻는 곳도 알게 됐다.
일단 담벼락과 바닥을 손보려면 돈이 필요했다. 인치견 시의원이 달려왔다.
“돈 줘도 할 게 없다더니…” 하며 기꺼이 의원재량비를 내놓고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서장근 자치행정국장도 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줬다. 풀사업비(소규모지역사업) 5000만원을 받았고 정도희·심상진 의원의 재량사업비까지 받아 전체 포장사업과 위험한 담벼락을 땜질(응급처방)했다.
“인치견 의원 아니었으면 처음 시작할 염두도 못냈어요. 이번 사업의 수훈갑이라면 인치견 의원과 서장근 국장님이죠.”
▲미로처럼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미나릿길.
인터넷검색을 통해 평상시는 닫혀있다가 비오면 열리는 기능성 멘홀뚜껑으로 교체했고, 물빠짐도 좋게 했다.
3월, 통영에 갔다가 산꼭대기에 위치한 벽화마을을 둘러봤다. 꼭 미나릿길과 같다고 생각한 순간 ‘벽화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성무용 시장은 “벽화사업도 도시재생사업중 하나”라고 독려했다.
대학전공알바 ‘벽화봉사에 구슬땀’
벽화사업을 위해서는 해당주민 동의가 있어야 했다. 김성래 동장은 단체장들을 불러모아놓고 파워포인트까지 준비해 벽화사업의 좋은 점을 설명했다.
곧바로 “해보자”는 말이 나왔다. 단체장들 17·18통 일대 117가구중 단 한 가구만 빼고 다 받았다.
벽화사업에 대한 예산이 없는 것은 또다른 난관. 여러 경로를 알아보니 1억원을 달라는 곳도 있었다.
고민하다 방학중 대학알바생들 활용도를 모색했다. 결국 미술학도 21명을 얻었다. 페인트와 붓 등은 기존에 사용하던 것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대학 미술생들도 벽화사업은 문외한. 좀 더 특색있는 벽화가 그려지기 위해선 일부나마 전문가를 써야 했다. 수소문한 끝에 서울의 한 트릭아트 전문업체를 찾았다.
“그 사람들도 돈을 많이 달라더라구요. 그래 말했죠. 가진 건 2000만원 뿐이다. 시범사업으로 해보면 다른 곳에서도 벤치마킹 하며 홍보되지 않겠냐 하고요.”
고심 끝에 그들은 8군데에 트릭아트를 그리기로 했다. 해당사업비는 6월 예산을 세웠다.
벽화사업은 모두 800미터에 걸쳐 106개 면에 해당되는 방대한 사업량. 전문업체의 지도하에 대학생들이 체계적인 벽화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주민자치위원들 74명도 나섰고 동사무소 직원들이 휴가도 미룬 채 벽화사업에 매달렸다. 각 단체들이 점심식사도 돌아가며 책임졌다. 모두가 한마음이 된 벽화사업은 기대보다 훨씬 나은 수준으로, 현재 마무리단계에 와있다.
“대학알바생 1달 기간에 맞춘 벽화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돼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구도심도 관광명소 가능성 열어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미로입니다.”
김성래 동장은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그렇게 표현했다. 구도심의 열악한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벽화골목길로 바뀌면서 미로는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에 매력적인 장소로 변모했다.
비좁은 골목길이라 주차된 차량도, 지나는 차도 없다는 것은 또다른 이점. 비록 골목길일망정 한적한 마음으로 그림감상을 할 수 있어 편안하다.
그런 장점을 갖고 있는 이곳 골목길은 800미터라는 긴 구간에 수십개의 그림들이 펼쳐져 있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골목길로 들어서는 입구길은 ‘천안의 옛모습과 현재’라는 이름으로 테마를 설정했다. 이곳만은 그림이 아닌, 유일한 사진구역이다. 사진들이 조악하지 않고, 제법 좋운 풍취를 전해준다.
첫 번째 골목길은 ‘겨울 빙하시대’라 이름지었다. 겨울풍경을 담고 있으며, 전체구간중 가장 중심되는 트릭아트가 자리잡고 있다. 무대주인공은 북극곰과 펭귄으로, 그곳을 지나다보면 싸늘한 냉기를 맛보는 착각이 인다.
‘추억의 옛거리’는 아이들이 등장하지만, 실제 어른들에게 옛 향수를 일으킨다. 요즘 아이들이야 낯설게 느낄 수도 있는 풍경들이 ‘짠’하게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이들은 장대로 감나무의 감도 따고, 말뚝박기 게임도 즐기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취객' 등의 용변장소로 이용되는 곳. 이곳은 장난스런 응가그림이 그려질 예정이다.
추억의 옛거리가 어른들의 것이라면 ‘어린이 테마거리’는 말 그대로 아이들의 세계를 담고 있다. 또다른 골목길은 ‘자연환경’을 주제로 현대사회 환경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벽화그림의 핵심인 트릭아트 8점은 곳곳에 안배돼 포토존의 기능을 성실히 수행할 전망이다.
한 주민은 벽화의 창의성에 내심 감탄하며 엄지손가락을 우뚝 세웠다.
큰 길에서 30미터쯤 들어간 골목길이 꺾이며 작은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사람들의 ‘용변’장소로 자주 이용되는 곳이란다. 그 옆에는 전봇대도 있어 소변보기도 딱 좋은 곳. 그 때문에 골칫거리로 고민되는 곳인데, 그곳에 용변그림을 그려놓고 ‘응가금지’라는 낙서말을 써놨다.
“설마 저런 그림에도 용변을 볼까” 하며 다시는 응가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