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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전문과학관 ‘BTL사업 실시협약 체결’

2014년 1월 준공목표, 주제관·체험관·관측실 등 과학문화체험시설로 조성

등록일 2012년06월13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8일 천안시는 사업시행자인 밝은별주식회사와 ‘홍대용 전문과학관’ BTL사업 실시 협약체결식을 가졌다. 협약체결식은 사업시행자 지정 및 자격, 권리, 의무 등을 담은 기본약정을 비롯해 총민간투자비 결정·변경·재원조달, 건설에 관한 사항, 유지관리·운영, 성과 점검·평가 등 모두 14장 95조의 전문으로 구성됐다. 준공목표는 2014년 1월. 이번 체결식을 통해 천안이 낳은 우리나라 근대 천문학의 선구자, 홍대용 선생의 업적을 기념하는 ‘홍대용 전문과학관’ 건립사업이 본격 추진될 전망이다.

한편 천안시는 지난 2011년 8월 활림건설(대표 전용갑)을 대표사로 한 6개업체로 구성된 (가칭)밝은별주식회사와 건설사업관리관사인 ㈜동일건축(대표 윤수현), ㈜에이플러스CM건축(대표 이택준)으로부터 과학관 건립 추진계획과 건설사업관리 추진계획 등을 보고받은 바 있다.

직경800㎜ 대형 천체망원경관 설치


홍대용 전문과학관 건립은 역사·문화도시로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천문과 역사, 과학을 소재로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과학문화체험시설로 탄생하게 된다.

임대형 민자사업(BTL)인 과학관은 부지매입, 건축, 천문시설 및 전시, 테마공원 조성 등에 193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되는 사업이다. 과학관이 들어설 자리는 수신면 장산리 홍대용 선생 생가지 터 뒤 야산으로, 1만4204㎡에 연면적 3251㎡로 조성되며 지상4층 규모로 전시관, 교육시설, 공용시설 등으로 구분·건립된다.

전시시설은 홍대용주제관, 과학체험관, 기획전시관으로 배치해 한국의 과학사와 홍대용 선생 관련시설, 기초과학에 대한 체험물 등을 전시한다. 또 천체(별자리) 투영장비와 투영시설하게 될 플라네타리움과 과학사 및 기초과학 관련 영상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영상강의실과 수장고가 조성된다.

교육시설로는 직경 800㎜ 크기의 대형 천체망원경관이 설치되는 주관측실과 다목적강당, 교육·세미나실이 조성되며, 공용시설로는 기념물 판매시설과 휴식시설도 배치할 계획이다. 특히 과학관은 홍대용 선생 생가지와 인접해 상징성이 뛰어나고 인근 관광자원과 연계가 쉬우며 천문관측에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시는 이날 협약에 따라 문화재 현상변경, 건축허가 등 각종 인·허가 절차를 진행하고, 실시계획 승인·신청 등 행정절차를 거쳐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홍대용, 그는 누구인가

천안 출신 홍대용은 18세기 조선시대에 태어났다. 10세때 이미 과거시험과는 거리가 먼 공부를 택한 그.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하면서 제작한 ‘혼천의’는 그의 뛰어난 발명품 중 하나로, ‘조선의 코페르니쿠스’로 불리기도 한다.

천안 수신면 장산리에서 출생해 일생을 과학자이자 사상가로 살다 간 홍대용 선생은 천안사람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분야를 불문하는 그의 뛰어난 사상과 과학자로서의 높은 가치가 새로이 부각되면서 천안시가 그가 살던 곳을 복원하고, 주변 산기슭에 홍대용과학관을 짓기로 한 것이 불과 수년 전.

홍대용은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당대의 학자들과 교제하며 새로운 사상인 북학바람을 몰고왔다. 중학교 교과서는 박지원`박제가를 북학파의 대표인물로 내세우고 있다. 홍대용은 ‘의산문답’이라는 저자로만 간단히 알려져 있지만 그는 당시의 사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 조선의 과학자이자 사상가였다.

그의 저서 ‘의산문답’은 가상의 실옹과 허자를 등장시켜 새로운 우주관을 정립했으며, 그것을 통해 만물에 귀천이 없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성리학적 유교질서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들로, 당시에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사상이었다.

서양의 선진과학에 심취했던 그는 중국 북경을 찾아 서양 과학문물을 접하고, 그들과 교류했다. 집에 천문 관측실인 ‘농수각’을 설치해 하늘의 별자리 등을 연구한 홍대용은 정교한 시계를 응용해 천체의 움직임을 표현한 역작 혼천의를 만든 장본이기도 하다. 홍대용의 북경 방문은 당시 여러 북학파 학자 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실학을 도입, 그 선구자적 업적이 크다.

일찍이 자전설을 설파했고 토지 등을 균등하게 분할하는 균전제, 부병제를 토대로 하는 경제정책을 내세웠으며 과거제가 아닌 공거제 도입을 통한 인재등용과 신분에 관계없이 8세 이상 모든 아동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거문고 연주에도 능통했던 그는 음악과 수학, 기하학,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당시 비주류 학문에 심취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그의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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