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정치텃밭인 영·호남에서 몇 석의 의석을 줄이느냐를 놓고 줄다리기가 치열하다.
새누리당은 ‘세종시 독립선거구를 신설하고 강원 원주와 경기 파주는 분구하는 대신 영·호남에서 각각 2곳씩 모두 4곳을 통합하고, 비례대표 1석을 늘리자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영남 3석, 호남 1석을 줄이는 4+4안을 주장했으나 영남 2석, 호남 1석을 줄이는 대신 세종시 독립선거구를 신설하고 경기도 파주, 강원도 원주를 분구하자는 3+3안으로 선회했다. 민주당은 정개특위에서 모바일 투표제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날 본회의 무산에 따라 선거구 획정논의는 2월 하순으로 넘어가게 됐다. 독립선거구 신설과 관련해선, 여야 모두 찬성 입장을 보여 2월 말이나 3월초 국회에서 신설·처리될 전망이다.
획정위의 원칙 철저히 무시… 오로지 제 지역·지역정치 이해득실만 따져
여·야가 ‘밥그룻 싸움’을 계속하면서 선거구 획정을 하지 못해 원주분구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선거구 획정안은 4월 총선부터 도입되는 재외선거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22일까지 확정돼야 한다. 선거법이 규정한 재외선거 선거인 명부 작성이 22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반면 천안시처럼 정개특위 분구논위에서 빠져있는 용인시 기흥구 선거구 분구와 관련 용인시의회는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 강력 건의하기도 했다.
국회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마련한 선거구획정안은 최소 선거구의 인구 하한선을 10만3469명으로, 최대 선거구의 인구상한선을 31만406명으로, 인구편차는 평균 인구를 기준으로 상하 50%를 적용해 3대 1의 비율로 결정한 바 있다. 이에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1년 10월25일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선거구 인구편차 문제는 현실을 도외시할 수 없으므로 상하 50%의 기준(3대 1)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로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헌재는 또한 “국회가 지역선거구를 획정함에 있어 인구 이외 행정구역 등 다른 요소를 고려해 배분할 수 있다 하더라도 헌법의 평등선거의 원칙에 비춰 원칙적으로 선거구간 인구편차는 2대 1이 넘지 않도록 조정해야 마땅하다”고 덧붙여 제시했다.
자유선진당 “양당의 패권·독식주의 깨야”
이인제(자유선진당) 최고위원이 국회 정개특위의 천안분구제외 논의와 관련 “살벌한 양당 나눠먹기”라고 비난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주도하는 정개특위가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가운데, 자유선진당은 이들을 맹비난하며 충청권의 총선정국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모습이 강하다.
20일(월) 오전 10시30분 천안 충남도당에서 열린 자유선진당 최고위원회 회의는 ‘천안분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심대평 대표는 정개특위의 분구논의를 “최악의 꼼수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제 밥그릇 지키기가 도를 넘어 파렴치에 이를 지경”이라며 “영·호남 의석을 최대한 보호하려고 충청권을 희생시키려 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류근찬 최고위원은 충남의 유일한 정개특위위원으로서 관련 논의내용을 자세히 보고했다. 그는 “자신들의 텃밭에서 얼마나 적게 줄이느냐의 문제를 갖고 씨름하고 있다”고 폄하했다. “지난주 잠정적 합의를 본 것은 원주·파주·세종시를 세로 두는 대신 비례대표 3석을 줄이는 것으로 대체로 이의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3석이 아닌 영·호남 1석씩, 비례대표 1석 줄이는 것도 검토되고 있으며, 영·호남 2석씩 줄이되 비례대표 1석을 오히려 늘리는 안을 제기하는 반면 민주통합당은 영남에서 2석을 줄이고 호남에서는 1석만 줄이자는 주장이다. 여하튼 천안은 거론조차 되지 않아 ‘물건너간 것’으로 봐야 한다는게 현실적인 입장이다. 덧붙여 “일각에서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자유선진당 각각 1석씩 공평하게 나눠먹은 것으로 얘기하는데, 세종시는 전국적 사항으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에 위반되지 않게 하기 위해 천안을구를 경계조정해 갑구로 일정인구를 이동시키려는 것과 관련해서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표현했다. 류 위원은 “그렇게 하다가는 갑구와 을구 모두 상한선을 넘겨야 분구가 가능한데, 그럴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 지 모르는 일”이라고 안타까와했다.
이인제 최고위원도 ‘살벌한 양당 나눠먹기’라며 “양당의 패권구도, 독식구도를 깨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충청도에서 반드시 자유선진당을 교섭단체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같은 문제는 천안시뿐만 아니라 획정위의 분구결정을 정개특위에서 되돌린 지역들과 자칫 통폐합돼 선거구가 줄어들 지역들의 반발이 거세다.
용인시의회는 이에 “기흥구는 2011년 말 기준 인구가 37만4079명으로 위원회가 제시한 최대 선거구의 인구상한선인 31만406명을 6만3673명 초과한 지역”이라고 선거구 분구 이유를 밝혔다.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경남 남해·하동과 전남 담양·곡성 주민들은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의 선거구 획정논의는 농촌을 죽이는 밀실야합’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한편 새누리당 주성영 정개특위 간사는 “인구수와 국회의원 정수를 비교했을 때 호남권이 영남권보다 과대평가돼 있는데도 영남권에서 더 많은 의석수를 줄이자고 제안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주승용(여수을) 의원은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농어촌선거구 축소 움직임에 대해 반대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전남의 경우 15대 국회까지 17개의 선거구였는데, 16대 국회에서 13개 선거구로 감소했고, 18대 국회인 지난 2008년에는 12개로 감소했다”며 “농어촌 선거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현실에서 단순히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하게 된다면 향후 농어촌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거의 남지 않게 될 것이고, 이는 농어촌을 더욱 피폐하고 황폐화시켜 국가균형발전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현재의 정개특위 논의에 대해 반박했다.
획정위를 무시한 정개특위의 무원칙적 밥그릇싸움이 많은 논란을 던져주는 상황에서 정치권이나 정당, 예비후보, 지역들은 저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논리를 펴며 편협적인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바쁘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