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항로
백제금동대항로는 1993년 부여 능산리(陵山里) 고분군 근처에 위치한 절터에서 발굴되었는데,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바닥 진흙 속에서 거의 녹도 슬지 않은 원형 그대로 발견되어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 학계를 흥분시켰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의 수도인 사비(부여)의 신궁 즉 왕실의 절에서 사용된 제기(祭器)로 높이가 61.8cm, 몸통이 최대지름 19cm, 무게가 11.85kg나 되어 규모면에서 다른 박산향로와 비교할 수 없는 대작이다. 뚜껑과 몸체, 다리를 각각 따로 구리합금으로 주조하여 하나의 향로 형태로 만들고 그 표면을 금으로 도금하여 아주 품격이 고급스럽다.
이 백제금동대향로는 원명이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百濟金銅龍鳳蓬萊山香爐)로 뚜껑 위 장식부분은 봉황이 여의주를 목에 끼고 날개를 활짝펴서 날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그 아래 뚜껑에는 5명이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 크고 작은 산, 사람들, 동물, 말을 탄 사람들 등 화려한 무늬가 양각으로 조각돼 있다. 몸통에도 연꽃, 물고기, 동물 등 여러 가지 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그 밑에는 용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몸통을 입으로 받들고 있고 구름과 풀잎무늬가 소용돌이치는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이처럼 백제금동대항로는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이 한층 돋보이는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는 것은 물론, 동북아시아에서 출토된 향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어, 1996년 5월 30일 국보 제287호로 지정되었으며 지금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재야 문화사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서정록씨가『월간중앙』 2001년 7월호에 기고한 논문인 "고대사 발굴 특종 150년만에 드러난 백제 대항로의 숨은 진실 하 : 백제 대항로는 중국계 신선, 불교사상 아닌 동북아인의 전통 샤머니즘(shamanism) 담았다."에 의하면, 백제금동대항로 산악도의 수렵도가 비록 사산조 폐르시아의 수렵도 양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에서는 북방 샤먼의 상징적 수렵행위를 표현했다고 한다. 실제로 백제금동대항로에 묘사된 수렵기마 인물들은 당연히 백제왕들을 상징한 것이다. 그들은 상징적 수렵행위를 통해 우주의 동물 신령들을 지배하고, 나아가 우주의 질서 자체를 장악하고자 했다. 특히 산악도의 수렵도에 나타난 사슴이나 말은 샤먼(shaman)의 ‘부라(말, bura 또는 pura)’로서 그 타계 여행을 인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동물들도 샤먼의 보조 신령들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향로의 노신에 장식된 날 짐승과 물고기 또한 샤먼이 수중계를 여행할 때 그를 돕거나 안내하는 보조신령들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나타난 인면수신(人面獸神)이나 인면조신(人面鳥神)은 모두 천상계의 신령들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백제금동대항로 산악도에 등장하는 신선풍(神仙風)의 인물들 즉 낚시를 하는 인물, 폭포에서 머리를 감는 인물, 코끼리를 탄 인물, 나뭇가지에서 과실(?)을 따는 인물, 나무 밑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명상을 하고 있는 인물, 씨 뿌리는 인물, 곡식의 낱알을 거두는 인물, 활을 든 인물,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인물 등 10명은 백제 조상들의 산에 거주하는 조상신들을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백제금동대항로의 산악도와 고구려 고분벽화의 인물들이 신선풍으로 묘사된 것은 어디까지나 기복 차원에서 당시 대륙풍의 유행을 쫒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서(周書)『백제전』을 보면 ‘승니와 사탑은 많으나 도사는 없다.(僧尼寺塔甚多, 而無道士)’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 사비시대(동성왕-무령왕대)에는 도교가 신앙의 차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알타이 샤먼의 북의 천상계에 묘사되어 있는 기마수렵인물과 동물들이 백제금동대항로와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상계에 표현된 수렵도의 내용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베리아 알타이 샤먼의 북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가로선을 경계로 천상계와 지하계로 나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천상계에 그려진 태양․ 달․ 별 등의 천체와 함께 샤먼의 나무로 알려진 자작나무․ 버드나무 가지, 그리고 활을 들고 말을 탄 기마수렵인들도 샤먼 자신을 나타내고, 사슴․ 순록․ 새 등은 그의 보조신령으로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백제금동대항로와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상계에 등장하는 수렵도가 기본적으로 북방계 샤먼의 ‘상징적 수렵행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샤먼의 상징적 수렵행위란 샤먼이 일련의 의례(굿)에서 행하는 수렵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주민들이 식량원이 되는 ‘사냥감’을 공동체에 공급하고, 사냥감이 계속 공급될 수 있도록 사냥감들의 왕성한 생명력 또는 생생력(生生力)을 고조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샤먼은 춤과 노래로서 발정기 때의 동물들의 행위를 묘사하는데, 로베르트 아마용(Roberte Hamayon)은 이러한 노래와 춤의 판토마임(무언극, pantomime)이 북방민족들의 공동체 성원들의 놀이로 발전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몽골의 나남축제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춤과 씨름 등의 경기라고 한다.
그런데 국사편찬위원회 1종도서연구개발위원회가 최근에 편찬한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백제금동대항로가 “불교와 도교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 매우 훌륭한 공예품”으로 묘사되어 있어, 앞으로 국사 교과서를 수정보완할 때 반드시 재고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