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壬辰)년이 밝았다.
임진년은 용띠해로써, 용은 전설에서 기린·봉황·거북과 함께 사령(신령하다는 네가지 동물)에 속한다.
운정 김경희(천안) 민화작가가 그린 흑룡.
용의 생김새는 동서양이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머리는 사슴, 코는 돼지, 몸통과 목은 뱀, 눈은 토끼, 귀는 소, 발바닥은 뱀, 네다리 발톱은 매(독수리), 이빨은 호랑이, 털은 말갈기, 등은 잉어 등 여러 동물의 요소를 합성한 형태다.
제왕이나 위인과 같이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로 비유되는 용은 또한 비와 물을 관장하는 수신으로 숭배됐다. 동아시아 고대 농경사회에서 용을 숭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용에 얽힌 이야기는 너무도 많다. 뱀도 덕을 쌓고 천년을 기다리면 사룡(蛇龍)이 되고 잉어 등 물고기도 어룡(魚龍)이 됐다.
화룡점정(畵龍點睛-가장 중요한 일을 성취하는 것)이라든가 등용문(登龍門), 용두사미(龍頭蛇尾) 등의 사자성어가 있다.
유럽에서의 용은 재화를 비키고 땅 속에 살면서 인간을 위해 숨은 보물을 찾아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전투의 수호자로 여겨 깃발이나 방패 등에 용을 그려넣기도 했다.
그리스도교에서의 용은 강력하고 사악한 힘과 요사한 마법을 가진 악령의 존재로 사탄의 상징이라 거부하고 있다.
‘용띠해’의 의미
60년만에 한번 돌아온다는 ‘흑룡의 해’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2012년 임진년은 10간중 천간(天干)이 ‘임(任)’이며 9번째. 지지(地支)가 ‘진(辰)’인 해이며 12지중 5번째에 해당한다. 육십갑자로 보면 27번째. 하루중에는 오전 7시부터 9시까지를 진시로 보며, 방위로는 동남동, 계절로는 음력 3월이 된다. 오행으로는 절기의 속성상 목(木)에 해당한다.
매년 육십갑자가 돌아가며 상징하는 색과 동물이 달라진다. 육십갑자를 이루는 10천간은 다섯가지의 색으로 이뤄지며, 띠를 칭하는 12지지와 결합해 반복해서 돌아간다. 여기서 10천간의 색을 보면 갑·을은 청색, 병·정은 적색, 무·기는 황색, 경·신은 흰색, 임·계는 흑색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올해 임진년은 검은색을 뜻하는 '임(壬)'과 용을 의미하는 '진(辰)'이 합쳐져 60년 만에 오는 흑룡의 해가 된다. 또한 내년 계사년은 검은 뱀의 해, 자오년은 파란말의 해가 되는 것이다. 이같은 말들이 최근 화제가 되는 것은 업체들의 마케팅 상술에서 비롯되고 있다.
용띠생은 ‘기가 세고 후퇴할 줄 모르는 기질’이다.
일단 어떤 일에 매달리면 끝까지 일을 관철시키는 돌파력과 결단력이 강하다. 이 때문에 모험이나 낭만을 꿈꾸는 스케일이 큰 인물이 많고, 혼란과 파란 속에서 추세하는 운기로써 오만과 성급함, 독설을 조심해야 한다.
천안과 관련된 용들
국보 280호인 천흥사 동종은 용뉴가 여의주를 물고있는 용의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천안에 ‘용’이 많다?
천안사람이면 천안에 용이 많다는 것을 안다. 용은 전설상의 동물이니, 실제 용이 존재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용’이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는 것.
실제 구룡동, 오룡동, 삼룡동, 쌍용동, 청룡동 등 법정동만 해도 용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어떤 사람은 “구룡동이니 아홉 마리 용이 있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런 해석은 맞지 않다.
김성렬 천안역사문화연구실장은 최근 천안의 용 지명과 관련해 자료를 분석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삼용동은 ‘세 마리의 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삼거리와 용마산의 머릿글자를 따서 삼용동이 됐다. 구룡동도 구성동과,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샘이 합쳐진 것. 또한 1913년 전에 24개뿐인 용자 지명이 이후 동 13개, 읍면에 37개 등 모두 50개로 늘었다고 밝혔다.
오룡쟁주지세-다섯마리 용이 여의주를얻기 위해 다투는 형세
좌청룡(동쪽)/ 태조봉~마점산~취암산~도리치~수조산
우백룡(서쪽)/ 노태산~봉서산~월봉산
남적룡(남쪽)/ 노태산~봉서산~일봉산
북흑룡(북쪽)/ 영인지맥~문암산~노태산~입암산
황룡(중앙)/ 왕자산~구름다리~팔각정~오룡경기장~천안중~동남구청~중앙초등학교
여의주/ 천안 남산
김 실장은 “용자 지명에 나타난 용의 머리수는 더 많다”고 했다. 천안시내 용자 지명에 나타난 용의 머리수는 28개, 읍면지역의 용머리수는 49개나 되는 것으로 조사했다.
성거읍과 수신면처럼 용과 관련한 지명이 없는 곳도 있지만 북면처럼 10곳이 연관된 곳도 있다. 이름을 보면 용안치, 용굴, 용두리, 용문골, 용소, 용연, 용우물, 용수봉 등 다양하다.
그는 “천안에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려 태조 왕건때 예방이 ‘천안은 오룡쟁주 지세’라고 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용과 관련한 천안전설
삼국유사에는 ‘직산 위례성’이 백제의 첫 도읍지라 기록하고 있다. 이곳 위례성 정상에 용샘이라 불리우는 샘이 있는데, 백제 멸망과 관련한 전설이 있다.
용샘은 부여 백마강과 닿아있다. 온조왕의 화신인 용은 새벽이 되면 이곳 용샘에 들어가 부여 백마강으로 가서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배를 뒤엎고 밤이면 다시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소정방은 백마고기를 미끼로 꿰어 용을 낚았다. 용을 낚을때 발자국이 난 바위를 부여에선 ‘조룡대’라 부른다. 이 전설은 위례성쪽 전설로, 부여쪽 전설에서 용은 그저 백제왕의 화신으로 표현된다. 백제사람들이 망국한을 달래기 위해 만든 전설로 보고 있다.
‘오룡쟁주지세’로 불리는 천안
예언적 힘 직시한 ‘천하대안’… 볼품없는 전장이 평안한 곳으로
천안 삼거리공원에 설치된 오룡쟁주 조형물.
김성열 천안역사문화연구실장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은 천안부를 세운 인물이다. ‘천안’은 고려국 시조 왕건왕의 건국 건도(나라의 도읍을 세움)의지를 표현한 지명이다.
후삼국통일 성업을 이루려는 왕건의 염원은 신앙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민심을 파악하고 방향을 정하게 됐다. 왕건은 대중불교 미륵신앙과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사상을 국시로 정했다. 백성들에게 깊고 넓게 전파돼 있는 대중신앙인 미륵부처 도솔천 세상 도래와 산천의 비보설인 풍수지리를 정책기조로 삼았다.
신라 말 도선국사의 풍수지리학은 산천비보설(산천의 쇠한 기운을 보익해 국가의 기업을 튼튼하게 하는 것)에 근거한 학문이다. 특정한 형국의 이름을 갖는 땅은 모습 또한 실제와 비슷해서 그 이름을 갖기도 하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안의 풍수지형인 ‘오룡쟁주’ 형상을 상념으로 삼아 기원하면 그대로 이뤄진다고 믿었다.
왕자산 위에 올라 동서남북을 둘러보니 술사의 말대로 여의주를 앞에 놓고 동서남북 중앙 오방용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희롱하는 오룡쟁주 지형이었다.
동은 청룡, 서는 백룡, 남은 적룡, 북은 흑룡, 중앙은 황룡 등 다섯용들이 서로 여의주를 차지하고 하늘로 오르려는 형승으로 봤다. 이는 곧 도솔땅을 차지해 건도하고 천군을 훈련하는 군주가 천하를 장악할 수 있다 했다.
왕건은 삼한을 통일해 성업할 수 있는 형승으로 보고, 도솔땅이라 전해오는 목천(대목악), 직산(사산), 탕정(아산)을 떼어 천안부를 건도하고 후백제를 제압할 천군을 양병했다. 그 결과 왕건은 연산 근처의 전투에서 차례로 후백제군을 격퇴하고 후백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 왕건은 항복받은 곳을 하늘이 도와주어 승리했다는 뜻의 ‘천호산’이라 이름짓고, 하늘의 뜻으로 소명을 받았다고 믿었다.
오랫동안 맹주없는 국경 접경지였던 천안은 전란과 시국이 불안정해 희망없는 불모지땅으로 봤으나, 이곳에서 왕건은 ‘천하대안(天下大安)’의 뜻을 이뤘다. 천안의 ‘천’자는 하늘만큼 높은 최고의 뜻이 있고, 천안은 제일 평안한 곳의 지명이다.
김 실장은 “천안지명은 이렇듯 역사적 소명의 지명이고 시대적 사명을 받은 거룩한 지명”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