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동에 사는 조묘순(60·시인)씨. 그가 시 ‘숨겨놓은 그리움 하나’를 냈다.
생애 첫 시집이다. 가슴 뛰고 흥분된 설레임. 자신있게 내걸만도 하건만 차마 부끄러워 속살 드러내듯 시집을 내민다. 이름의 ‘묘’자 때문일까. ‘고양이 묘’를 생각했더니 ‘토끼 묘’란다.
가난한 진천 두메산골 소녀가 도심을 동경하다 천안으로 시집왔다. 농군의 아내로 살아온 세월. 순박한 토끼처럼, 때론 영악한 고양이처럼 살았다. “억척이가 따로 없었죠. 포도밭을 가꿨는데,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했어요.” 연년생인 아이를 고무함지에 넣고 밭 매던 일이 주마등같이 떠오른다.
삽자루 쥐고 밭으로 나서는/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땅주인' 중에서>
농사일을 하면서도 행복했던 일은 많았다. 그중에서도 ‘글쓰기’는 청량제같은 것. 밭을 매다가도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흙묻은 손으로 메모했다. ‘농민문학’에 인연이 닿아 수필가로서 글을 올리고 동료를 만나 교류하는 기쁨을 만끽했다.
그녀가 시를 알게 된 건 2000년.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인의 권유로 천안문화원에서 시 창작교실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농삿일이 그리 쉬운가요. 자주 빠졌죠. 제대로 공부하질 못했어요.”
그래서일까. 그녀의 시집에 평설을 써준 이병석 시인의 말을 빌면 ‘뛰어난 기교나 수사, 번뜩이는 재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은유도, 메타포도 생략했다. 하지만 그대로 속내를 밝히는 순수서정이 시심에 응축돼 있다는 건 그녀의 장점. 게다가 흙내나는 시어가 각박한 세상에 사람냄새를 물씬 풍긴다.
이제 농사일을 놓은 그들 부부에게 하루하루는 ‘꿀맛’이다. 이순(耳順)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유를 얻은 삶. 제 삶을 찾아나선 요즘이다.
단내 나도록 바쁜 세월을 보내고/ 내 몸 조금씩 무너진 후에야/ 초록빛 싱그러움을 본다. <'낮달2' 중에서>
하지만 가만 생각하면, 자아찾기는 늘상 있어왔던 삶이었나 보다. 새벽녘 잠을 깨서라도 어둠속을 더듬거려 기발한 생각 한자락 기어이 메모해 두고 다시 잠을 청했던 그녀. 그래서 그녀의 시는 기교 없이도 마음이 통하는, “가슴에 닿게 쓰고싶다”는 그녀의 바람을 조금은 마주하며 첫시집을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