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눈 비비고 어슴프레한 길을 나선다. 여름의 새벽은 몸을 움직이기에 상쾌하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들, 몸의 세포가 신선한 공기를 맘껏 섭취한다. 이제 가을을 맞고 겨울이 오면 새벽은 좀 쌀쌀해질 터.
길을 가면서 ‘여긴 화단에 꽃이 없네’ 하고, ‘저긴 음식물쓰레기가 지저분하구나’ 한다. 교차로마다 8절지만한 광고판을 끈으로 부착하고 다니는 사람도 만난다. 수많은 문제가 거리에 산적해 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 이야말로 구청장이 해야 할 기본적인 임무다. 문제점을 발견했으면, 최선의 답을 찾아내야 한다. 누군가는 그같은 문제로부터 피해를 당하기 때문이다.
동남구청이 충남도 정기종합감사에서 수범사례에 올랐다. 몇몇 정책이 ‘창의성’을 띠며 충남도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다. 동남구청이 이렇듯 칭찬받기는 그 뒤에 김갑길(58) 동남구청장의 지휘가 있었다. 그가 구청장으로 발령받은 지 9개월. 독립구가 아니기에 그가 앉은 자리는 ‘결단’의 자리라기보다는 ‘관리책임’의 몫이 크다. 남들은 8시간 근무한다지만,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그의 업무는 25시간 풀가동한다.
조직사회에 있어 지도자의 중요성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지도자의 사고방식이 조직의 활동반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김 구청장의 강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 긍정적이면서도 센스있는 사고는 동남구청에 조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우리 공무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것들이죠. 제가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즐거운 손사레다.
변화의 중심은 공무원들의 근무환경에 있었다. 사무실 전등을 선별적으로 소등할 수 있도록 해 20%에 가까운 전기요금을 절약했고, 넝쿨성 녹색식물인 작두콩을 청사 벽면에 심어 조금이나마 태양열을 차단했다.
“작두콩을 청사 벽면에 심은 것은 제가 오기 전부터 시작한 거예요. 태양열도 막고…, 녹색이 사람눈에 좋다잖아요.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벽면을 다 뒤덮지는 못했어요.”
그래선가. 2층 구청장실에서 창문을 통해 내다보이기는 작두콩 잎이 삼분지 일을 가릴 정도에서 멈췄다.
동남구청 건물을 타고 자라는 덩쿨 작두콩.
김 구청장의 관리 노하우의 첫번째는 ‘자율성’에 있다. 시켜서 될 일이 아니다. 요즘은 어린 아이들도 맹목적인 지시에는 반발한다. 이해와 공감을 통해 스스로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주는 것. 그것이 리더고, 상사다.
‘대화의 날’도 그런 방식에 의해 만들었다. 윗사람이 대화의 자리에 나서면 아랫사람들은 침묵하게 된다. 이견을 내세워서 득될 게 없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자리면 대화도 활발하겠지.’ 같은 또래, 같은 직급의 직원들을 불러세우니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주제에 따라 시책발굴이나 현안의 해결책이 모색되기도 했다.
얼마 전엔 사 내의 처녀총각들 7쌍을 대화의 날에 ‘초대’했다. 당연 결혼문제가 등장했고, 더불어 저출산문제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 ‘다음에는 한발 더 진전시켜 소개팅까지 성사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구청장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해야 하는 그. 더 이상 욕심도 없지만, 마지막 주어진 일은 똑바로 해놓자는 것은 또다른 형태의 욕심이다.
동남구의 심장인 도심하천, 원성천이 물 맑고 사람들 산책로로 거듭나고 있다. 거기에 문화적 요소까지 겸비하면 어떨까. 동남구에 몰려있는 재래시장을 좀 더 획기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신부동 터미널 맞은편 노점상을 마찰 없이 정비하는 것도 동남구의 현안중 하나. 하나하나 생각하면 아직도 풀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택하라면 ‘기초질서’에 대한 의식제고다. “작다고 보면 안됩니다. 기초질서는 생활의 가장 근본적인 것. 불법주·정차, 무단횡단, 양보운전, 불법투기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많은 폐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중 한가지만이라도 잘 지켜내게 된다면 다른 의식도 자연히 고양될 수 있습니다. 기초질서를 작다고 보지 말고, 한번 지켜보면 어떨까요.”
한사람이 지키면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모두가 지킨다면 지역사회의 대부분 문제가 확 달라질 것이고, 개선될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