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 전문과학관 조감도.
몇 년을 기다린 끝에 결실을 맺나.
‘홍대용 전문과학관’이 2013년 12월 준공한다.
지난 12일 오후 3시 천안시청 중회의실에서 천안홍대용 전문과학관 건립 추진사업과 건설사업관리 보고회를 가졌다. 여기에는 성무용 시장을 비롯한 공무원, 건설사업관리사, 시공사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보고회는 활림건설(대표 전용갑)을 대표사로 한 6개업체로 구성된 (가칭)밝은별주식회사와 건설사업관리관사인 ㈜동일건축(대표 윤수현), ㈜에이플러스CM건축(대표 이택준)으로부터 과학관 건립 추진계획과 건설사업관리 추진계획 등을 보고받았다.
직경 1m 천체망원경 설치
홍대용은 천안이 낳은 우리나라 근대 천문학의 선구자다. 홍대용 전문과학관은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천문, 역사, 과학을 소재로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문화체험시설을 갖추게 된다.
200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되는 임대형 민자사업으로, 수신면 장산리 홍대용선생 생가지터 뒤 야산 1만4024㎡에 연면적 3248㎡로 조성된다. 지하1층, 지상3층 규모로 전시실, 교육시설, 공용시설 등으로 구분해 계획하고 있다.
전시시설은 홍대용주제관, 과학사전시관, 과학체험관 등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이 배치돼 한국의 과학사와 홍대용 선생 관련시설, 기초과학에 대한 체험물을 전시한다. 또 천체(별자리) 투영장비 및 투영시설을 설치하게 될 플라네타리움과 과학사, 기초과학 관련 영상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영상강의실과 수장고가 조성된다.
천안 수신면 장산리에 위치한 홍대용 생가지 터 전경.
교육시설로는 직경 1m 크기의 대형 천체망원경과 주 관측실, 다목적강당, 교육·세미나실이 조성되고 공용시설로 기념물 판매시설과 휴식시설도 배치할 계획이다. 특히 과학관은 홍대용 선생의 생가지와 인접해 건축함으로써 상징성이 뛰어나고 인근 관광자원과 연계가 용이하며 천문관측에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천안시는 이날 보고된 건설사업관리 내용을 바탕으로 예산절감과 품질확보를 통해 부실시공 방지와 완벽한 과학관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홍대용, 그는 누구인가
천안 출신 홍대용은 18세기 조선시대에 태어났다. 10세때 이미 과거시험과는 거리가 먼 공부를 택한 그.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하면서 제작한 ‘혼천의’는 그의 뛰어난 발명품 중 하나로, ‘조선의 코페르니쿠스’로 불리기도 한다.
천안 수신면 장산리에서 출생해 일생을 과학자이자 사상가로 살다 간 홍대용 선생은 천안사람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분야를 불문하는 그의 뛰어난 사상과 과학자로서의 높은 가치가 새로이 부각되면서 천안시가 그가 살던 곳을 복원하고, 주변 산기슭에 홍대용과학관을 짓기로 한 것이 불과 수년 전.
홍대용은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당대의 학자들과 교제하며 새로운 사상인 북학바람을 몰고왔다. 중학교 교과서는 박지원`박제가를 북학파의 대표인물로 내세우고 있다. 홍대용은 ‘의산문답’이라는 저자로만 간단히 알려져 있지만 그는 당시의 사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 조선의 과학자이자 사상가였다.
그의 저서 ‘의산문답’은 가상의 실옹과 허자를 등장시켜 새로운 우주관을 정립했으며, 그것을 통해 만물에 귀천이 없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성리학적 유교질서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들로, 당시에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사상이었다.
서양의 선진과학에 심취했던 그는 중국 북경을 찾아 서양 과학문물을 접하고, 그들과 교류했다. 집에 천문 관측실인 ‘농수각’을 설치해 하늘의 별자리 등을 연구한 홍대용은 정교한 시계를 응용해 천체의 움직임을 표현한 역작 혼천의를 만든 장본이기도 하다. 홍대용의 북경 방문은 당시 여러 북학파 학자 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실학을 도입, 그 선구자적 업적이 크다.
일찍이 자전설을 설파했고 토지 등을 균등하게 분할하는 균전제, 부병제를 토대로 하는 경제정책을 내세웠으며 과거제가 아닌 공거제 도입을 통한 인재등용과 신분에 관계없이 8세 이상 모든 아동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거문고 연주에도 능통했던 그는 음악과 수학, 기하학,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당시 비주류 학문에 심취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그의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