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맨위로

“노년이지만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나신천(86·다가동)/ 목사로 정년퇴임 후 16년‥ 컴퓨터·서예·아코디언·사진공부 삼매경

등록일 2011년06월28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늙을 시간도 없으시겠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말들을 들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다. 1925년에 태어났으니, 십삼사년만 있으면 ‘한 세기’를 살게 된다. 게다가 ‘마눌님(84)’까지 정정하지 않은가 말이다.

50년을 목사로 살아온 나신천(86) 어르신. 나이 70이 되어 은퇴한 후 걱정도 했다. ‘이 나이에 이젠 무얼 하고 살까.’ 여행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성경공부를 하고 하는 것도 한 때. 매일의 남는 시간이 길고도 멀다.

그렇게 걱정했던 노년. 16년이 지난 지금 ‘한국 기독교장로회 원로목사회’ 총무(회장도 역임)를 맡고 있으면서도 컴퓨터, 서예(사군자), 아코디언, 사진을 배우며 노년(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내 이름이 두 개입니다. ‘나신천’ 하면 사람들이 몰라요. ‘나영수’라야 압니다. 어렸을 때나 신학공부를 할때, 또는 목회자로 있을때 모두 ‘영수’였어요. 이름이 두 개라서 두 인생을 허물없이 사나 봅니다.”

아버지가 십여년을 지병으로 살다 돌아가셨다. 그의 나이 여섯 살때 돌아가셨고, 나영수란 이름은 법에 등재하지 못한 채 쓰여졌다. 그러던 것이 동네 이장이 호적을 올려주면서 갑자기 ‘나신천’이 돼버렸다.

법적 이름과 실제 이름을 갖고 사는 것이 얼마나 번거롭고 힘든 일인가. 삶이 고단한 시절을 두 개의 이름으로 묵묵히 견뎌냈던 그. 황혼녘에 접어든 이제는 나영수도, 나신천도 모두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노년이 ‘늙을 시간’도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우연찮은 기회에서 비롯됐다.

서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47년간의 목회는 부여와 보령에서 했던 그. 퇴임 후 아산에서 3년 살다 천안 일봉산 자락의 아파트에 정착한 그는 마땅한 노후설계가 없었다.

그러던 중 아파트관리사무소 내 작은 공간에서 몇몇이 서예를 시작하자, 마침 무료해하던 그도 서예와 사군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15년간 배운 서예나 사군자 실력은 ‘대단’한 경지. 집 거실의 대나무 작품은 본 이들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전문 수준과는 다르겠지만, 그 나이에 그 정도 배운 사람 치고는 재능과 열정이 있어야 이뤄낼 수 있는 경지다. 전국노인서예대전에 입선 2회 경력과 함께 지금은 ‘천안시화회’ 소속으로, 올해도 정기회원전에 참여할 예정.

그의 거실벽에 걸려있는 사군자중 대나무 작품. 컴퓨터를 접한 것도 단순하다. 집안의 나이 든 사람들 모임에 연락책(총무)을 맡았던 그는 자신이 직접 ‘통지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타자 치는 정도에 그쳤던 그는 점점 욕심을 내면서 노인복지관에서 정식으로 배웠다. 2005년 충청체신청에서 어르신인터넷과거시험에 동상을 받고, 권역별로 상을 받은 전국의 고수들 50명이 겨뤄 다시 장려상을 받았다. ‘75세 이상’에서 그의 적수는 전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젠 내 나이 여든일곱이니, 전국 최고령자 컴퓨터 고수일지 모릅니다” 하는 말에 자신감이 가득 배였다.

아코디언을 배운 지는 3년밖에 안됐다.

“목회활동을 할 때는 이상하게 시간이 안났어요. 그래서 스스로 핑계를 댄 것이 나이 들면 배워야지 했던 겁니다.”

악기 다루는 것은 그에게 다른 일보다 훨씬 어렵다. 손놀림이 둔하고 눈이 침침한 가운데도 성경66권을 타자로 세 번을 쳐내기도 했던 ‘인내력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악기는 매번 헷갈리고 손이 저절로 다른 데를 누른다. 그래도 지난 2009년 ‘제1회 대한민국생활음악경연대회’에서 개인 실버부 ‘천안시장상’을 타기도 했다. 얼마 전에도 ‘제8회 은빛페스티벌’에 천안아코디언앙상블(30명으로 구성)로 우수상을 탔다. 요즘도 노인복지관과 여성회관에서 가르치는 아코디언 공부에 삼매경.

“처음에는 60만원짜리로 연습했는데, 배우다 보니 악기욕심이 나더라구요. 누구는 몇백만원짜리도 구입해 열성을 보이지만, 난 150여만원짜릴 쓰고 있죠.”

아직 제일 약한 것이 ‘사진공부’라지만, 그것도 배운지가 벌써 5년째다.

“배운다는 것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또 배운다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못배워요. 실제는 즐거운 겁니다. 사람을 만나고, 기술을 연마하고,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자랑도 하고…, 나이 때문에 발목이 잡힐 일은 없는 겁니다. 괜한 핑계고 변명이죠. 한번 해보세요. 나처럼 심신이 건강하고 매일매일이 재밌을 테니까요.”

<김학수 기자>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라이프 우리동네 향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