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대전 대덕특구’로 결정이 나면서 일단락지었지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비벨트)는 정부와 정치권의 표리부동한 행위로 표류해 왔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이 ‘키’를 잘못 돌려 과비벨트란 배가 길을 잃은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과비벨트의 충청권 설치 대선공약을 ‘표를 얻기 위한 정치행위’로 의미를 축소하며 공약폐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과비벨트와 관련, 정치권도 차기 총선 등 정권창출에 대한 ‘당파’싸움에 이용하면서 어떤 것이 객관화된 절차와 결정인지 판단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캡션/ 민주당의 대전시당·충남·충북도당이 지난 9일 합동으로 ‘과학벨트 분산배치 반대 및 세종시 입지 촉구’ 관련 기자회견을 가졌다.(양승조 천안국회의원이 단상에서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부터 ‘잘못 꿰어져’
단추는 처음부터 잘못 꿰어졌다. 세계 일류국가 창조의 비전을 갖고 추진해온 과비벨트가 정부에 의해 세종시 수정안에 정략적으로 끼워 넣어졌다. 우리나라 신성장동력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사업이 ‘최적합지’를 찾기도 전에 부수적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 그리고 세종시 수정안이 무산되자 없던 것으로 돌리니 누가 신뢰를 주겠는가.
과비벨트는 정부가 전국 어디라도 유치할 수 있는 전략적 산물로 왜곡시켜 놓았다. 혼란의 단초가 돼버린 정부가 일관된 자세로 어떤 논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과비벨트와 관련, 최근 정부는 입지선정위원회를 두고 비공개회의를 거쳐 전국 53곳 평가대상지 중 10곳으로 압축했고, 16일 다시 5곳으로 압축했다. ‘객관적’ 판단을 통해 최적합지를 선정하겠다는 것. 여기에는 정치적, 정략적 계산을 배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충청, 경남, 영남의 3개권역지가 선택에서 배제됐을시 강력 반발하겠다는 압력이 거세자 다시 한발 물러 ‘나눠주기’식의 타협점이 거론됐다. 그리고 결국 16일 발표에는 일부 연구원을 권역별 경쟁지에 배분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과학자는 ‘침묵’ 지역정치권은 ‘쨍쨍’
이런 상황에서 정당들은 ‘지역별 정파적 우위’를 선점하고자 매일같이 성명서다, 시위다, 기자회견이다 하며 ‘정치적 쇼’를 벌였다. 과비벨트 최적합지 선정에 관련 과학자들의 양심과 진정성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데도 이에 대한 관심은 없어 보인다. 선정절차에 신뢰가 없다면 인정하지 않아야 하지만 해당 지역사회와 지역정가는 ‘되면 좋고 안되면 불인정’이란 사고가 만연. 선정되지 못한 지역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 돼버렸다.
세종시 수정안(또는 세종시 원안)에 과비벨트가 언급되면서 세종시와 가까운 충청권은 ‘과비벨트 유치’를 당연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후보지가 전국으로 확대되며 ‘잘해도 본전’이라는 억울함과 다급함이 불만으로 표출됐다. 특히 주민들의 표를 먹고사는 정치권은 과비벨트의 공로자가 되기 위해 혈안, 매일같이 지역논리와 명분을 내세우며 투쟁자로 나섰다.
충청도를 터전으로 삼고있는 국민중심연합(대표 심대평)은 과비벨트 입지선정과 관련, 지난 4월29일 ‘과비벨트 세종시 제외는 오기정치이자 국민농락’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MB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무산에 따른 오기정치라며 ‘정부의 국정운영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고 내다봤다. ‘세종시에 이어 과비벨트까지, 충청인을 이렇게 무시하고 짓밟아도 되는 것인가’며 이같은 국정운영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감당할 수 없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했다. 민주당 충남도당(위원장 양승조)도 ‘이명박 정권은 막장드라마를 금지하라’며 거친 말을 내뱉었다. 2007년부터 대통령이 과비벨트의 충청권 설치에 수없이 많은 발언을 했고, 전문가와 과학자의 연구결과도 전국 유일무이한 최적합지인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충남도당·충북도당·대전시당은 5월9일 또다시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번 절차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10개 후보지역중 충청권 3개시를 포함한 것은 구색맞추기일 뿐이며 충청권을 분열시키려는 비열한 책동’으로 규정했다. 또한 ‘세종시 원안을 지켜낸 충청인에 대한 비열한 정치보복이고, 분산배치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에 불과할 뿐’으로 폄하했다. 충청권이 최종 낙점된다 해도 불순한 의도와 절차적 문제가 깔린 이상,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하지만 이번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모순된 의도를 내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이 대통령이 내건)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점, 과학자의 82%가 과비벨트의 최적지가 충청권임을 주장하고 있는 점, 지진에 강한 대한민국 유일의 화강암 단지가 충청권인 점, 그리고 사통팔달의 교통요지라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최적지 결과가 ‘충청권’이 안된다면 정권퇴진운동에 나설 것임을 강력 경고했다.
11일에는 자유선진당의 변웅전 대표가 야당 지도부를 찾아 충청권 현안인 과비벨트 유치에 대해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천안시의회도 13일 유영오(한나라당) 의원 외 20명의 이름으로 ‘과비벨트 입지결정에 대한 결의문’을 내놨다. 10곳으로 압축된 후보지중 충남도내는 세종시가 빠진 ‘천안시’가 유일. 정당별 주장이 다르지만 천안시의회는 대한민국 최적입지로 ‘천안직산남산지구(현재 천안인터테크노밸리)’를 선택, 최종입지로 결정돼야 한다고 강력 요구했다.
시의회는 ‘정치적 힘의 논리나 지역이기주의에 의해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의 분산배치를 우려하는 과학계의 불안을 불식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4가지 강점을 주장했다.
첫째 교통요충지란 점, 둘째 수도권과 충청권, 경기남부의 지식산업벨트와 충청북부의 첨단산업벨트가 만나는 십자형 과학벨트 거점지구로 최적합한 점, 셋째 추진중인 국제비즈니스파크와 13개 대학 등 기반여건이 구축된 점, 넷째 100년동안 단 한차례도 지진발생이 없는 지반안정성을 가진 점을 내세웠다.
<김학수 기자>
충청권·천안 모두 ‘다행스럽다’
양승조·김호연 천안국회의원‥ 절차상 아쉽지만 결과는 만족
“과학벨트는 지역의 이해관계보다 국가의 과학기술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를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전문가들이 엄정한 평가를 통해 선정했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16일 과비벨트 입지선정결과를 발표하면서 ‘정략적 타협’은 없었음을 밝혔다. 김 총리는 “아쉽지만, 최선의 결정”이었음을 거듭 강조하며 “국민여러분이 이같은 결정을 받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통령이 공약을 걸었다가 취하하고, 전국의 권역별 후보지경쟁이 잇따르며 한동안 국정혼란을 야기했던 과비벨트는 일단 이렇게 일단락됐다.
충청권은 대체로 만족하단 시각이다. 과비벨트의 핵심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가 들어설 거점지구로 대전이 선정됐고, 세종시와 천안이 기능지구로 선택됐기 때문이다. 이는 과비벨트의 ‘삼분지 이’ 이상을 얻은 충남도로 보면 과비벨트로 인한 발전기대치가 무척 높아진 결정으로, 굳이 불만을 표출해 권역별 다툼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것.
16일 결과발표 이후 곧바로 천안 국회의원들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양승조 의원은 ‘과비벨트의 충청권 유치는 당연한 결과’로, 김호연 의원은 ‘충청권이 거점지구와 기능지구로 선정된 것은 다행스럽고 당연한 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절차상의 문제와 일부 결정에 불만스런 견해도 밝혔다. 양 의원에 따르면 대통령이 과비벨트의 충청권 백지화 선언과 전국대상 후보지를 공모해 모든 지자체가 허망한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선·총선공약을 약속대로 이행했다면 오늘과 같은 갈등·분열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거점지구에서 탈락한 지역을 배려한 것으로 보이는 기초과학연구원 소속 연구단의 광주·경북권 분산배치는 과학계가 반대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가 옳은 판단을 할 것을 요구했다.
과비벨트의 천안유치를 대표공약으로 내세운 김호연 의원의 아쉬움은 더욱 크다. 그는 ‘정부사전평가에서 거점지구 1위를 차지한 천안이 최종 선정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며 이는 정부가 짧은 시간 안에 선정해야 하는 물리적 한계 때문으로 풀이했다. 그는 정부의 국책사업 혼란에도 아쉬움이 남는다며, 그러나 ‘과학벨트가 대전을 중심으로 천안, 청원(오송·오창), 연기(세종시)를 연계하는 실리콘밸리 규모의 과비벨트가 조성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향후 의지를 보였다.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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