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하나’만 아는 이들이 있다. 대부분 더 많이 알고 갖고자 하는데, 그네들은 하나만을 제대로 알고 싶어 한다. 넓이는 버리고 깊이만 파고드는 그들. 일찍이 평범하게 살기는 글렀다.
김경희(50·천안 구성동)씨가 그랬다. 남들은 ‘그림에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밥먹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도 아까운 그. 붓이 손에서 떠나지 않으니, 6번째 손가락이다.
한번 붓을 잡으면 놓지 못한 숯한 세월,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 밤이면 신음하며 주물러야 했다. 손가락에 쥐가 나길 수천·수만번. 그렇게 세월이 흘러 50이 되고 보니 ‘개인전’도 한번 열지 못한 자신이 의기소침해진다.
마땅한 스승도 없이 독학으로 이뤄낸 경지는 대단하다. 민화부문 무형문화재 조찬형 선생은 “여류작가이자 장인정신이 남다른 보기드문 명인”이라며 추켜세울 정도다.
“왜, 그림에 미쳤습니까. 그림의 무엇이 그렇게 좋길래요?” 누가 그에게 물어본다면 대답은 하나. “아니, 무엇을 해도 미쳤을 겁니다.” 태생적인지, 후천적 환경인지는 알지 못한다. 꿈많은 고교시절, 화가가 꿈인 그에게 그림선생님의 민화는 곧바로 ‘숙명’이 돼버렸다. 그의 성격과 소질이 ‘딱’ 그러하니….
“민화는 세필(細筆)이다. 선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그려내야 한다.” 작가는 민화를 그렇게 표현했다. 실제 그의 세필은 대단하다 못해 경이롭다. 7년 전에 그려낸 ‘궁궐도(6폭병풍)’는 꼬박 3년이 걸렸다. 그것도 매일 평균 5시간 이상 작업해서 완성된 것이다. 세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호랑이 가족(180×70㎝)’은 두달간을 작업해서 얻어낸 산물이다. 대부분은 그렇게 얻어진 ‘고진감래’의 작품들이다.
구성동에 위치한 그의 ‘운정화실’은 매일 오전 12시에 출근해 밤 12시가 돼야 집으로 들어가는 반복의 생활이다.
까치호랑이
백호도
“1년 전 시집보낸 딸아이 집에 가서도 잠자고 오는 것이 아까워 조바심을 내고요, 동창회 등 모임은 가본 적이 없어요. 이번 첫 개인전을 열고도 마음은 전시회장을 벗어나 작업실에 가있는 걸 보면….” 그는 자신을 가리켜 확실히 일(그림)에 미친 거란다.
33년간 작업에만 미쳐 보낸 세월. ‘뭐, 이런 민화를 누가 보겠어’ 하며 개인전에 대한 우려를 갖고 전시회를 열었지만 그의 전시회에는 생각지도 않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입소문’을 탄다는 게 이런 건가.
비단잉어도
십장생도
이번 전시회를 두고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은 “올바른 민화란 우선 그림이 시원해야 하고 털털해야 하고 잘 어울리며 부드러워야 하고 장난기가 서리되 늘 다소곳한 화풍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작가도 항상 그렇게 공부하는 마음으로 붓을 잡는 것 아닌가 싶다”고 칭찬했다.
남편의 권유와 밀어붙이는 힘에 어쩔 수 없이 개인전을 가졌다는 작가. 세차례의 대한민국 종합미술대전 금상을 비롯해 다수의 공모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부끄럽다’는 말로 자신의 작품에 겸손해했지만, 성무용 시장까지 대단하다고 감탄한 전시회로 끝이 났다.
“전 유명해지는 것이 싫어요. 그럼 그림 그리는데 방해가 되니까요. 그냥 그림 그리는게 좋고, 특히 세필로 오랜 시간 작업하는 것이 안정되고 좋아요.”
그림인생 33년만에 천안에서의 첫 개인전을 기념하기 위해 ‘일월오봉도’는 천안시에 기증하기로 했다.
일월오봉도
호랑이
화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