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성남면 소재지에 사는 권영무(53)씨. 조용한 성품으로, 마을주민조차 그를 내력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고있다. 그는 활쏘기 명수다.
90년대 초에 ‘국궁8단’을 가졌으니, 대단한 솜씨. “활쏘기는 (경력이)43년쯤 됐나봐요. 어렸을 때부터 했으니까요.… 우리 집안이 그래요. 활제작쪽에는 11대조부터 시작해 지금 13대째 이어오고 있죠.” 한 세대를 30년으로 치면 40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다. ‘장인’의 계열이다.
전통활 하나 만드는 데는 수백·수천번 손질하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고된 작업으로, 충남에 활제작자는 권씨 외에 연기군에 한명 더 있다.(전통화살은 만드는 제작자가 따로 있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은 ‘경북 예천’으로, 씨족마을(집성촌)이기도 한 그곳 권씨마을은 활 제작자만 열집이 넘었다. 지금이야 좋은 개량종 활이 나오면서 좀 더 알려졌지만 그때만 해도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 40여호가 살던 마을에서 10여집이 활 제작에 나선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당시 집안 6촌형님(권영록)이 인간문화재 47호셨는데, 제자들인 우리에게 명하셨죠. ‘전국 각지로 흩어져 활 제작자의 삶을 살아라’ 하고요. 그때가 73년도인가…, 활 제작자인 형님네와 저도 천안에 와서 살게 됐습니다.”
형은 국궁제작자로, 그는 국궁사범으로 생활하던 평온함도 결국 13년 전 깨져버렸다.
“오손도손 함께 살던 형님이 돌아가신 거예요. 결국 제가 활 제작자의 가업을 이었죠. 어릴적부터 배워오던 활이고, 종류도 딱 한가지 뿐이라 제게는 크게 어렵지 않았죠.”
하지만 아무나 덤볐다간 한달도 못버티고 나가떨어지는 ‘전통활 제작’은 무지하게 힘든 작업중 하나다. 목천에서 살던 그는 활 제작 11년째 이곳 성남 면소재지로 이사와서 윗층은 살림집, 아래층은 작업실로 쓰고 있다.
“여름 7~8월때만 잠깐 쉴 수 있고, 나머지 10개월은 하루 15시간 안팎 일해야 하는 작업이에요. 그냥 나 죽었소 해야죠. 겨울철 등 작업과정상 새벽일도 해야 하고, 어느때는 잠자는 시간이 4시간밖에 없는 날도 많아요. 말 그대로 자신과의 싸움이고, 체력과의 싸움이예요.”
그렇게 만들어지는 전통활(전통궁)은 연간 150개에서 200개 정도다. 20만원 정도 하는 개량종에 비해 60만원이 나가는 전통활은 없어서 못팔 정도로 판로는 탄탄하다. 하지만 일본처럼 ‘고가’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전통활은 노동강도도 높고, 그에 비해 수입은 적어 배우려는 젊은이가 없어 큰일이다.
그의 꿈이 있다면 천안에도 ‘활 전수관’이나 ‘활 제작 체험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멀지 않은 곳에 ‘김시민장군 사서처’도 있는 만큼 뭐 어려울 게 있을까. 시행정이 조금만 관심가져 주고, 200명 가까운 천안국궁인이 힘을 합치면 되지 않을까.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하며, 오늘도 칼 제작에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