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의회가 개원 20주년을 맞아 15일(금) ‘지방자치의 현실과 발전방향’이란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시(구)의회가 개원 20주년을 맞았다. 91년 첫 개원한 풀뿌리 지역의회가 올해로 6대 10개월째를 향하고 있다. 지역마다 기념행사 등을 갖는 가운데 15일(금) 천안시의회(의장 김동욱)도 ‘지방자치의 현실과 발전방향’이란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가졌다. 행사장으로 택한 시청 3층 중회의실에는 의원들과 관계자 등 80여명이 참석, 조촐한 분위기지만 진지한 의견을 나눴다.
김동욱 시의장은 “지방의회가 주민대표기관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좀 더 차원 높은 지방의회 발전을 모색해야 할 단계에 와있다”며 “오늘 세미나를 통해 지방자치의 현실을 진단하고 한층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홍근 천안시의정동우회장은 축사를 통해 “이제는 성년이 된 의회가 천안발전의 중심에 서서 시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품격높은 의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제발표는 권경득(선문대) 교수가 준비했고 박종관(백석대) 교수, 박성호 풀뿌리희망재단 상임이사, 김영수 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사회는 신용일 의원이 맡았다.
‘직업의원’을 두는 건 어떤가
지방자치제 이후 지역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지방분권이 미흡한 처지이며, 지방재정 구조도 정부의존적이다. 정부와 주민간 갈등해결역량이 부족하고, 지방행정에 대한 참여활성화도 낮다.
지방자치의 근간이 부실한 데서 발전적 한계가 드러난다. 권경득 교수는 “지방자치의 관련 규정이 매우 추상적이며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웃나라와 비교해보면 한국헌법은 지방자치 본질에 대한 규정이 없지만, 일본헌법은 보장돼 있으며 관련 규정이 좀 더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부러운 일이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중앙사무의 지방이양이 다각적으로 이뤄졌지만 아직도 7대 3 정도로 국가사무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난다.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도 지방이양과 관련한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또한 재정적인 면에서도 228개 지자체중 100곳이 넘는 지역이 열악한 재정으로 고민이 크다. 지방의 중앙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우리나라 자치단체장은 지방의회와의 관계에서 우월적 입장에 있다. 단적인 예로 의회 사무국 직원들의 인사권이 모두 자치단체장에게 있다. 시를 감시·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의회로서는 보조하는 직원들의 업무적 도움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의원수당을 유급화해 ‘직업’으로서의 지방의원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젊고 유능한 인재의 지방의회 유인을 가능하게 하고 시 정책에 대한 전문적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기관분립의 원칙에 따라 의회가 인사권을 갖는 방안이 검토돼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서로 견제·균형을 이루는 관계기반 정립이 필요하다.
2005년 이후 허용된 정당공천제는 대다수 지방의원들이 반발하고 있기도 하다. 기초의원 정당추천 배제에 대한 여론조사(2006년)에서 는 기초단체장(201명)의 77.6%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군구 의원들은 중앙당에 지나치게 예속될 가능성, 공천장사 등 비리발생 가능성 등을 지적하고 있다. 시군구 의원의 76.4%가 정당공천 폐지에 찬성했다.
권 교수는 지방자치의 발전방향을 6가지로 구분해 견해를 피력했다.
먼저 ‘자치DNA 강화’ 부문. 단체자치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지방자치로는 참여를 본질로 하는 지방자치 DNA가 강하지 못하다. 이에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역량을 제고시키고 책임감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번째는 ‘분권화의 가속화’로, 이는 세계적인 추세다. 지방과 관련된 사무나 권한을 합리적인 기준에 입각해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 세 번째는 ‘직업으로서의 지방의원’을 두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의원의 보수를 현실화해 인재의 진출확대를 도모하고 전문성과 생산성 증대를 통해 효과적인 지방정부를 구현할 수 있다.
권경득(선문대) 교수가 주제발표하고, 박종관(백석대) 교수·박성호 천안풀뿌리희망재단 상임이사·김영수 천안시의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일장일단을 갖고 있는 정당공천제에 대해 권 교수는 ‘정당참여제의 선별적 적용’을 제시했다. 광역지방선거에는 정당참여를 허용하되 기초지방선거는 정당참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
지방자치의 다양성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자치단체기관 구성의 다양성에 대해 심도있는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권 교수는 앞으로 지방정부의 자치권이 크게 신장될 것이며, 지방정부의 역할과 기능도 크게 증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참여자치를 중시하는 지방자치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자율과 경쟁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과감한 실험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방자치는 ‘지방분권에서 지방주권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면서 주제발표를 끝냈다.
전방위적 네트워크 ‘필수요건’
토론자로 나선 박종관(백석대) 교수는 “천안시에도 지역간 갈등이 있고, 의원들이 오히려 조장하는 문제가 있다”며 “이같은 문제가 생산적 가치로 변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도시규모가 확대되면서 공무원들만의 행정업무 한계를 탈피, 지역NGO·대학·기업체 등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며 ‘주민참여 없이 발전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밝혔다.
김영수 천안시의회 의원도 ‘참여’를 강조했다.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개방과 공유가 필요하고, 천안시를 지방자치단체로 보기보단 지방정부로 보는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회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선행적 의정활동’을 제시했다. 행정부에서 온 것만을 받는게 아니라 의회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방식. 이를 위해 의회 전문위원의 별정직화를 통해 인사권을 의회가 갖는 것과, 1년에 두 번으로 정해진 시정질문의 일상화, 직업적 지방의원 신분의 강화, 행정부 정책안에 대해 의회가 용역발주할 수 있는 여건 마련 등의 개선안을 검토안으로 내밀었다.
박성호 천안풀뿌리희망재단 상임이사는 ‘주민 관심저하와 참여부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그는 유급제가 시행된 5·6대에 들어 의원전문성이 향상됐지만, 일부 의원에 해당되는 점은 아쉽다고 밝혔다. 또한 의원입법발의의 증가가 바람직하긴 하나 너무 양적·성과에 집착해 과정상의 의견수렴과 간담회 등이 생략된 점은 개선이 필요하다며 ‘지역특색에 맞는 입법발의’를 주문했다. 의회 내에서 의원 연구모임이 활성화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의회와 시민단체간 공동토론회가 늘고 있는 점은 좋게 평가했다. 다만 의회가 먼저 의제를 고민하고 제안하는 방식을 요구하며, 일회적 간담회나 토론회보다는 보다 장기적인 공동연구를 원했다. 예로 들어 1년간 한두건의 공동연구를 하는 것도 좋고, 의원들의 5분발언을 확대해 주민직접발언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좋은 실천사례. 5·6대 의회활동에 긍정적 평가를 가지면서도 도덕적 측면에서 여러 사건이 있었던 점을 고려, 좀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토론자에 이어 방청객 질의가 없자, 주제발표자로 나섰던 권경득 교수가 “미국에서 23년간 주 의회하원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를 보며 얼마나 선량이 돼야 그렇게 하는가 생각한 적이 있다”며 “천안시의원들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말로 세미나를 끝맺었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