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10시 KBS 1TV 역사스페셜은 천안 출신 홍대용의 생애를 조명했다. 입신양명을 꿈꾸던 18세기 조선시대에 태어난 그의 꿈은 ‘하늘’로 향했다. 10세때 과거시험과는 거리가 먼 공부를 택한 그.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하면서 제작한 ‘혼천의’는 그의 뛰어난 발명품 중 하나로, 역사스페셜은 그를 ‘조선의 코페르니쿠스’로 표현했다.
천안 수신면 장산리에서 출생해 일생을 과학자이자 사상가로 살다 간 홍대용 선생은 천안사람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분야를 불문하는 그의 뛰어난 사상과 과학자로서의 높은 가치가 새로이 부각되면서 천안시가 그가 살던 곳을 복원하고, 주변 산기슭에 홍대용과학관을 짓기로 한 것이 불과 수년 전.
홍대용은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당대의 학자들과 교제하며 새로운 사상인 북학바람을 몰고왔다. 중학교 교과서는 박지원`박제가를 북학파의 대표인물로 내세우고 있다. 홍대용은 ‘의산문답’이라는 저자로만 간단히 알려져 있지만 그는 당시의 사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 조선의 과학자이자 사상가였다.
그의 저서 ‘의산문답’은 가상의 실옹과 허자를 등장시켜 새로운 우주관을 정립했으며, 그것을 통해 만물에 귀천이 없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성리학적 유교질서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들로, 당시에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사상이었다.
서양의 선진과학에 심취했던 그는 중국 북경을 찾아 서양 과학문물을 접하고, 그들과 교류했다. 집에 천문 관측실인 ‘농수각’을 설치해 하늘의 별자리 등을 연구한 홍대용은 정교한 시계를 응용해 천체의 움직임을 표현한 역작 혼천의를 만든 장본이기도 하다. 홍대용의 북경 방문은 당시 여러 북학파 학자 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실학을 도입, 그 선구자적 업적이 크다.
일찍이 자전설을 설파했고 토지 등을 균등하게 분할하는 균전제, 부병제를 토대로 하는 경제정책을 내세웠으며 과거제가 아닌 공거제 도입을 통한 인재등용과 신분에 관계없이 8세 이상 모든 아동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거문고 연주에도 능통했던 그는 음악과 수학, 기하학,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당시 비주류 학문에 심취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그의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