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칠십고래희.’
인생 70세는 드문 나이란 뜻으로, 두보의 곡강시(曲江詩)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현대에는 전혀 맞지 않다. 의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간 수명이 현저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안수환 시인은 1942년생이다. 고희를 맞은 나이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연암대교수로 정년퇴임한 후 오히려 왕성한 활동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
정년퇴임 후 1년 넘게 몸살을 앓았다. 갑작스런 환경변화는 심신이 견뎌내질 못했다. 퇴임 후를 생각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론과 실제가 달랐다. 무기력증에 우울증까지 겹쳐 생기를 잃었다. ‘이래선 사람 사는 꼴이 아니다.’
어느 화창한 날, 마음을 고쳐 새 삶을 시작했다.
먼저 무조건 할 일을 찾았다. 천안예총의 협조를 얻어 사무실 한켠에 주부 시 강좌를 개설했다. 예전 천안문화원에서 14년간 주부 대상으로 가르쳤던 시 강좌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돈은 생각하지 말랬다. 내가 살기 위해, 즐겁게 살기 위해 가르치는 거였다. 다행히 10명 정도가 꾸준히 나왔다. 그것만도 만족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시를 쓰는 건 사랑을 배우는 것
“왜 사람들은 시를 배우지 않을까요”
기자에게 물었다. “글쎄요, 어려워서가 아닐까요.”
“어렵다면, 인생만큼 어려운 게 어딨어. 그건 남을 위한 사랑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야.”
웬 사랑 타령일까?
궁금해 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다.
“거룩한 성자는 식물과 동물이에요. 식물은 동물에게 제 몸을 다 뜯깁니다. 동물도 사람을 위해 다 내줍니다. 사람은 어떻습니까. 언론, 역사, 예술, 이 모든 것들이 나누어먹이고 살아갑니다. 시는 이런 것을 예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감정으로 쓰는 시는 이기적이다. 그래선 시가 아니다. 이것이 안수환 시인의 지론. 남을 위한 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시라는 것이다.
“예로들어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봐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그럽니다. 나를 위한 게 아니에요. 바로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내가 희생하는 겁니다.”
천안박물관이 지어질때 눈물이 났다고 한다. 이렇게 훌륭한 건물이 드디어 천안에도 지어지는구나 했다. “하지만 이게 뭡니까.” 버럭 화를 냈다. “이게 박물관입니까!…, 외국은 박물관이 세워지면 자기집 가보를 들고 나옵니다. 보물은 개인소유가 아닌, 공유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자들도 그에게 수십번, 수백번 아가페 사랑을 듣고 배우고 깨우친다. 시를 가르치는데 있어 “내 개인감정을 알록달록 표현하려 하지 마. 개도 도둑을 지키고, 새도 울땐 온 산천을 울린다고… 자기를 위한 시는 쓰레기야.”
그는 또 시는 말로 쓰는 것이 아니란다. 넓은 생각으로 쓰는 것이란다.
“얼마전 꿈을 꾸었어요. 홍수가 나서 이 마을 저 마을 뒤덮어 쓸어버리더군요. 큰일났다 싶었죠. 꿈에서 깨고 ‘아, 내가 편견에 사로잡혔구나’ 생각했어요. 내 앞만 지키면 되겠거니 했는데 실상 더 큰 사랑이 필요했던 겁니다.”
명지대 문예창작과 10년, 대전대 문예창작과 10년, 그리고 연암대에서는 한문을 가르쳤던 그. 아주 오래 전 시를 쓸 때부터 ‘남을 위한 사랑’을 예찬해왔건만, 아직도 사랑에 때가 묻어있는 자신을 보며 인생이 그리고 시를 쓰는 것이 어렵구나 생각한다.
지난번 성거도서관에서 ‘주역 좀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고 무료로 1년 강의를 했다. 그것이 계기가 돼 충청남도 평생교육원에서 ‘명리학’을 가르친다.
그가 가르친 주부 제자들은 어느새 문단에 데뷔하며 ‘천안여류시동인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2009년과 2010년 두편의 시집을 발간했다. 어려운 형편임을 알고, 천안시가 100만원을 지원했다.
“시를 쓰려면 모두 다 사랑해야 해.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 있잖아. 변수는 변수가 아닌 것을 포함하는 것이야. 은인은 원수를 포함하는 것이고…, 시 쓰는 건 마음을 닦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