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50)씨는 천안 바위솔야생화동우회 고문이자, 신방동 들녘에서 야생화식물원을 운영하고 있는 야생화 마니아다. 야생화의 대중화보급에 앞장선지 10여 년. 그의 식물원에는 야생화에 대해 알고싶어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문의: ☎011-9821-4293
언제부터인지 내 곁에는 늘 꽃이 있었다. 봄이 오면 노란 꽃들이 있고, 여름이면 푸른 옷에 하얀 미소들, 가을이면 울긋불긋 색동옷에 땡글땡글한 열매들, 겨울이면 봄을 기다리는 새싹의 눈들. 꽃들은 항상 날 즐겁게 만들었고 꿈과 사랑이란 이름도 꽃과 함께 품었다.
요즘 우리 집엔 때 아닌 쑥부쟁이꽃 파티가 벌어졌다.
눈개쑥부쟁이라고도 부르는 ‘누운쑥부쟁이’는 아마 높은 기압과 거센바람에 적응하느라 키를 낮추고 자라 붙은 이름 아닌가 생각된다. 참고로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쑥부쟁이는 까실·섬·개·참·갯·가는잎 등 그 종류가 15가지나 된다.
누운쑥부쟁이는 자채, 홍관약, 쑥부쟁이, 마란 등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가지마다 가득 피어나는 연보랏빛 모양은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닮았다. 때론 멋부리지 않는 산골처녀 같기도 하다.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누운쑥부쟁이는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해열제나 이뇨제로도 쓰인다.
내가 이 꽃을 좋아한 것은 수를 놓고부터다.
누런 광목천에 쑥부쟁이를 그려넣고, 꽃잎과 잎사귀 하나하나에 색실을 놓으면 멋진 쑥부쟁이다포도 되고 찻잔받침, 찻보 등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쑥부쟁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을 한다.
작년 12월쯤 밀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곳의 이름난 도예원을 찾았을때 찻잔속에 쑥부쟁이꽃을 띄워 차를 내주었다. 한겨울에 웬 쑥부쟁이냐고 묻는다면, 누운쑥부쟁이는 늦겨울에 피는 꽃이다. 보통7월에서 10월까지 피지만 갯쑥부쟁이는 11월에도 자주색 꽃송이가 피고 누운쑥부쟁이도 늦은 겨울에 많이 힌다. 실내에서 기르면 2월까지 꽃을 볼 수 있다.
이 꽃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다.
어느 곳에 대장장이가 있었는데 11남매나 되는 자식 때문에 아주 가난했다. 이 집의 큰딸은 쑥나물을 좋아하는 동생들을 위해 들이나 산을 다니며 쑥을 캤다.
그러던 어느날 몸에 상처를 입고 쫓기던 노루 한 마리를 숨겨두고 치료해 줬는데, 노루는 고마워서 언젠가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노루를 잡던 사냥꾼 역시 멧돼지를 잡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쑥부쟁이가 사냥꾼의 목숨을 구해줬다 이 청년 역시 다음해 가을이 되면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떠났다.
쑥부쟁이는 그 사냥꾼을 기다렸지만 가을은 몇번이나 지나고 사냥꾼은 끝내 나타지 않았다. 그 뒤 어머니는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고 쑥부쟁이의 근심과 그리움은 나날이 쌓여만 갔다. 어느날 몸을 곱게 단장하고 산으로 올라가 소원을 빌자 목숨을 구해준 노루가 나타나 노란구슬 세 개가 담긴 보랏빛 주머니를 건네주며 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 했다.
첫번째 소원은 어머니 병을 낮게 해달라 빌었다. 두번째 소원으로 기다리던 사냥꾼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자 이미 결혼을 하고 자신도 있는 사냥꾼이 나타났다. 사냥꾼은 자신의 잘못을 빌며 쑥부쟁이에게 같이 살자고 했지만 쑥부쟁이는 그를 가족품에 돌려보냈다. 그 후에도 청년을 잊지 못한 쑥부쟁이는 산에서 발을 헛디뎌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쑥부쟁이가 다녔던 자리에는 많은 나물들이 자랐고 죽어서도 동생들이 걱정되는지 긴 목 쭈욱 빼고 노란꽃술과 보랏빛 꽃잎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