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정치인들은 지금 어느 수준에 와있을까?’
천안 지역사회가 급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시·군통합 이후부터. 나날이 도시규모가 커지자 천안시의회 역할과 지역정당의 활동도 확대됐다. ‘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준높은 지역정치가 필요하다.’ 시민단체들은 한때 ‘의정평가단’을 운영하기도 했다.
정치인은 ‘공공의 영역’에 속한 공인이다. 매체영향력이 커진 현대사회에서 공인에게 주문하는 것은 공공의 영향력을 가진 만큼의 도덕적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 해서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천안시장 자리? ‘고시보듯 공부해야’
민선 제5대 성무용 천안시장 취임식.
시장선거에 있어 당면한 문제점은 무엇일까.
그건 ‘누구나’ 시장이 될 수 있는 현행 제도일 것이다. 천안의 경우 시장은 57만 시민과 한해 1조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하는 자리로, 그에 따른 능력과 도덕성을 갖췄느냐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검증시스템이 부재한 현 선거방식으로는 ‘뽑아놓고 후회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을 필요로 한다.
현 선거에서 시장이 되려면 정당공천을 받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모든 후보가 같은 법정선거비용 내에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 조직이 빈약할 수밖에 없는 무소속출마자에게 있어 당선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결국 당선하려면 공천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정당은 능력보다는 사회적 지위를, 도덕보다는 당선가능성이나 정당충성도 등을 앞세우는 경향이 많다. 일부 정당은 때로 정당의 핵심층에 의해 공천이 휘둘리기도 한다.
대부분 정당들이 선거일을 불과 두세달 앞두고 공천을 결정, 정작 후보들이 ‘시장업무’를 준비하는 기간은 너무 짧다. 그러다 보니 당선자의 부실한 공약들은 때로 공무원사회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지역에도 ‘정치 아카데미’를 개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안시장 선거를 준비한 바 있는 허용기씨는 “국회의원, 시장, 도·시의원이 되고자 하는 정치후보생들에게 일정기간 관련 교육을 이수하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같은 공부는 당선됐을때 좀 더 바른 정치를 펼 수 있는 자산이 돼줄 거라고 믿고 있다.
정치 아카데미는 정당구분 없이 통합운영할 수도 있고, 소극적이나마 정당간 자체교육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전자는 정부차원에서 제도적인 뒷받침을 하거나, 개인이 학원처럼 유료화해 운영할 수 있을 것이며, 후자는 각 정당에서 자체교육시스템을 갖춰 운영하는 방식이다.
천안시의회‥ 의원전문화 모색돼야
천안시의회 2010년 행정사무감사 전경
6대의회를 맞은 천안시의회. 1대의회부터 6대의회까지 배출한 의원수는 100명이 채 안된다.
그간 달라진 것이라면 5대의회 들어 ‘정당공천제’와 ‘유급제’, 그리고 소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로 바꿔 시행한 것이다.
의회는 줄곧 발전을 일궈왔는가. 제도적으로 정당공천제와 유급제라는 큰 틀을 전환했어도 그에 따른 변화는 아주 미세하다. 정당의 기치를 높게 세우고 들어온 의회초년병이 의회 내 정당정치가 없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채 세 달이 걸리지 않는다. 황천순 의원은 “정당공천을 받고 입성했지만, 실제는 현안문제를 다루는 데도 정당별로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박상돈(자유선진당·천안을) 전 국회의원은 “지역 시의원에게도 정당정치가 유익하다”는 주장을 폈지만 실상 의회운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있으며, 누구 하나 고치려 하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은 의원들을 정당 하부조직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작 의회주의와 의정활동의 발전상을 담보해내지 못한 실정이다.
한편 5대와 6대에 있어 한나라당이 다수 포진돼 있지만, 천안시의회를 이끌어가는 것이 ‘민주당 의원들’이란 점에서 특이할 만하다. 특히 한나라당 10명, 민주당 7명, 자유선진당 4명으로 구성된 현 6대의회의 경우 민주당의 성실성과 능력은 타 정당의원들을 압도한다. 의원들의 능력과 자질이 구분되는 행감장에서 시행정을 날카롭게 추궁하고 대안을 찾아내는 모습은 거의 민주당 의원들에게만 보여지는 독점적 현상. 물론 정당정치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애초부터 민주당에 인재가 많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나마 ‘유급제’는 소수 능력있는 서민의원에게나마 의정활동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어 다행이다.
천안시는 21명의 의원 인건비로 매년 8억원 안팎의 예산을 지출하고 있지만 이같은 유급제가 의원들의 출·퇴근을 의무화하거나 이중직업으로 인한 폐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서 아쉬움을 주고 있다. 의원들에게 딱히 동기부여되지 못하는 유급제. 부실한 의정활동과 게으르고 무비판적인 의회활동에 시민들의 지적이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의원들에게 필요한 자질은 대부분 갖춰져 있는 것일까?
일단 정당에서 검증 안된 이들을 주먹구구식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한번 뽑은 의원은 4년 임기기간 짐이 되더라도 끝까지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의원이 되고난 후 실전에서 겪어본 다음에야 그의 능력과 도덕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건 지역사회 발전을 저해하기도 한다. 지역구 경쟁없이 무혈입성한 비례대표는 더더욱 그렇다. 정당이 어떤 생각으로 비례대표를 선정하고 의회에 내보내는지도 좀 더 심각한 검토가 필요하다.
지난 11월16일 전국 시·군·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는 포항시청에서 시·도 대표회의를 갖고 중선거구와 정당공천제 폐지, 예산편성 자율권 보장 등을 촉구하는 ‘포항선언문’을 채택했다.
협의회는 ‘기초의회 의원 중선거구제와 정당공천제는 선거비용 증가와 의정활동의 효율성 저하, 의원들의 중앙당 예속 등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는 만큼 즉각 폐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지방의회 사무직원의 인사권 독립문제, 지자체의 예산편성방침을 중앙정부에서 획일적으로 규정해 지자체의 예산편성권이 제한되는 문제도 정부와 국회에 관련 규정 개정을 건의하기로 했다.
천안아산 대통합 정책토론회에는 양도시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시의회와 의원이 사는 길은 지역현안 등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활성화하는 거다. 난상토론이든 세미나든 깊이 있는 사고를 통해 지역현안 문제를 냉철히 파악하고, 최적의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의회의 역할인 것. 전종한 의원은 시의회 발전구상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의회의 존재이유가 시민에 있다는 그는 “시민과의 소통이 최우선돼야 하며, 이를 위해 의회 방청 활성화나 온라인상의 실시간 또는 녹화 중계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전문화를 위해서는 “행감이나 예산안 심사시 인턴제를 활용하는 방법과, 현안에 대한 심층토론회 개최 등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발전적 전문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더불어 “의원들이 경쟁관계에서 출발했던 것처럼, 의정활동에 대해서도 선의의 경쟁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지역사회에 알려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회의원‥ 체계적인 소신활동 필요
국회의원의 활동성향을 보면 선거때 보여주는 모습과 대개 엇박자를 갖고 있다. 국회의원선거가 지역에서 치러지다 보니 각종 공약사항이 해당지역 위주로 내걸리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국비로 이뤄지는 국가정책은 의원 개인의 힘으로 유치하거나 따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시장이나 도·시의원들이 있는 상황에서 지역공약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
국회의원들은 국가정책을 다루면서도, 정작 다음 선거의 표를 얻기 위해 지역구 행사에 나타나고 지역구 사업에 혈안이다. 국비를 확보함에 있어서도 정당한 논리와 절차보다는 비상식적인 ‘의원의 힘’에 기대기도 한다. 지역을 위해서가 아닌, ‘국가발전을 위한다면 자연히 지역도 발전한다’는 논리를 앞세우는 의원은 보기 힘들다.
또다른 문제로, 지역정치인끼리 소통이 거의 없다는 거다. 지역의 정당간, 또는 같은 정당이라도 시장과 시·도의원들간 현안문제를 놓고 간담회를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 지역정치의 현주소다.
예로, 김호연 의원의 대표공약인 ‘국제과학비즈니스파크 천안유치’는 오히려 지역정치인들간 대립과 갈등을 낳고 있다. 그들간의 제대로 된 대화가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김 의원측은 ‘지역정치인에게 함께 노력하자는 뜻을 비쳤지만 콧방귀만 뀌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충청권 표시 없이 통과한 것을 놓고 설전중에 있다. “지역정치인들이 누구 편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김 의원측 사람들. 반면 민주당원들은 ‘충청권’을 넣어야 한다고 압박하며 김 의원을 성토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국가현안을 오로지 정략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은 결국 혼란한 정국을 만들고, 그로인해 잘못된 정치인이 선택되는 우를 낳는다. 일부 부화뇌동하는 것과 편들기식, 또는 자기주관적 판단으로 인한 여론몰이가 국책 또는 시책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기도 한다.
이같은 문제점을 언급하며 일각에서는 국회의원이라면 자리에 연연하기 보다 주어진 기회에 ‘진정한 공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이기에 편승하지 말고, 선구자적 심정으로 지역을 이끌고, 나라의 국정을 함께 책임져야 할 자리. 한 소시민은 천안정치계의 행태를 화두로 삼는 대화에서 “지역의 상가집을 전전하는 국회의원을 이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도의원‥ 지역의 이단자?
도의원들은 언제부터 지역사회의 이단자가 돼버렸다. 선거때 열심히 다니며 유권자의 표를 공략하고 공약을 내걸었어도 당선만 되면 지역사회에서 잊혀졌다. 활동영역이 충남도이다 보니 지역사회로부터 관심과 조명을 받지 못하는 처지다. 게다가 지역신문들이 열악하다 보니 도의원까지 취재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임기 4년 내내 다뤄지는 내용은 극히 적다.
이렇듯 잊혀진 도의원은 아무 간섭도 받지 않는 반면 의정평가 또한 이뤄지지 않다가 다음 선거를 맞는다. 이런 이유로 4년간의 의정활동으로 재신임받는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오로지 후보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선거를 치르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제는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도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모니터링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역사회의 숙제로 남아있다. 국회의원은 중앙매스컴을 통해 국정활동이 전달되고, 시의원은 풀뿌리 지역신문을 통해서 일거수일투족이 다뤄지고 있는 상황. 도의원들만이 찬밥신세로 전락해 있는 처지다.
의정활동을 열심히 한 의원과, 그렇지 못한 의원이 선거구 유권자에게 평가되고, 그로인해 선거에서 재신임을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제가 시급하다. 또한 굵직한 현안을 비롯한 각종 사업에서 자치단체와 충남도가 연결돼 있음을 고려해, 시행정과 시의원들간 연계토론회도 활성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번 5기 민선 들어 천안시청의 한 공간에 조그맣게나마 도의원들의 연계사무공간을 마련하려는 취지도 그같은 맥락에서 출발하고 있어 기대되는 부분이다.
정치인들 ‘네트워크 활용도 높여야’
지역사회가 건전해지려면 항상 정치가 생기를 띠고 있어야 한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발된 느림운동 ‘슬로시티’가 세계적인 발전이슈가 된 것도, 생태적 미래도시의 구현이 남미의 구석진 곳 꾸리찌빠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도 모두 그 도시 시장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의 지역 현안문제를 놓고 시장과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이 한자리에서 해결책을 모색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각자가 가진 정보를 한자리에서 공유하고 분담해 일을 처리해나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더불어 시민단체를 비롯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연계한 사람들이 모니터링하고, 의견을 던져주는 형식이라면 더욱 바람직한 방식.
인터넷을 통해 언제든 지역주민들이 보고 아이템을 주고받는 자리, 또한 현안의 진행방향과 결정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운영한다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데 구심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같은 기대는 시민사회의 의식적 제고와 함께 시나브로 성장할 수 있다는데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정병인 천안·아산경실련 사무국장은 경기도 등 일부 지역에서 지역정치인을 대상으로 교육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며 “천안 시민단체간에도 아직 정책의 아젠다를 위한 네트워크가 체계화되지 못한 상태”라고 아쉬워했다. 지난 10월 지역의 15개 사회복지단체로 구성된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가 ‘민선5기 천안시 복지정책 점검 및 제안토론회’를 여는 등의 활동은 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미흡한 상황.
다행인 것은 올해 초부터 복지 예산네트워크가 활성화될 전망에 있다는 것. 정 사무국장은 “천안도 전체 재정구조를 분석하고, 낭비적 예산과 잘된 예산을 구분해 예산방향을 제시하는 등의 활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법에 둔감해진 천안정가?
5·6대, 이권개입과 선거법위반으로 시끄러운 정가 ‘새바람 필요해’
천안시의 정치계가 최근 흔들리고 있다.
현역정치인들은 한나라당이 다수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자유선진당 순으로 포석이 깔려있다. 하지만 민주당을 제외한 정당의 정치인들이 불법적인 행태로 지역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 특히 시의원 위주의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 대책이 요구된다.
5·6대 시의회를 살펴보면, 먼저 5대때 이정원(한나라당)과 박중현(자유선진당) 시의원이 국회의원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내놨다. 이로 인해 보궐선거를 다시 치러야 했다. 이어 송건섭 천안시의장이 이권문제로 연루돼 불구속기소됐으나 1년만에 무죄로 풀려났다. 그 과정에서 의원직을 떠났다. 다음으로 의장이 된 류평위 시의장도 알선수재 혐의로 5대 말, 법정을 오갔고 6대 의회 입성을 포기했다. 최근 그는 2심에서 유죄를 받았고, 같은 시기에 뇌물수수혐의로 구속기소된 서용석 시의원도 징역형을 언도받고, 2심에서 항소기각된 상태.
횡령·비리문제는 아니지만, 6대에 와서도 지난 6·2지방선거시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세명의 정치인이 위태로운 처지다.
성무용 천안시장과 류제국 시의원은 사전선거운동 등으로 1심에서 각각 ‘징역10월’과 ‘벌금20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중이다. 또 김동욱 시의장은 선거사무장이 1심에서 ‘징역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놓여있다. 선거사무장의 경우 벌금 300만원 이상의 형을 확정받으면 해당의원이 ‘당선무효’되기 때문이다.
시의장이 세 번 연속 법정을 들락이며 문제가 됐던 적도, 같은 시기에 시장과 시의장이 옷벗게 되는 위태한 상황도 천안정치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며, 전국에서도 그런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천안 정치계의 현주소를 우려하는 이가 많다. 지역사회는 모든 부문에서 날로 발전해가고 있는데, 정치계만 예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선 안될 터. 천안시 정치수준도 능력면에서, 또한 도덕적인 면에서 한층 성숙돼야 할 시기다.
<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