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춘’에 ‘꽃화’. 김춘화(62)씨는 자신의 이름처럼 인생을 ‘컬러풀’하다는 말로 정의한다.
그러고 보니 ‘컬러풀’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일본 산케이 아동출판문학상 수상자인 ‘에토 모리’의 작품으로, 컬러풀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윤회에서 벗어났기에 다시는 인간으로 태어날 수 없는 주인공이 우연히 자살한 소년의 육체로 환생한다는 다소 엉뚱한 발상의 전개다. 하지만 다시한번 주어진 기회를 통해 삶을 깨달아가고 교훈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진지함이 묻어난다. 같은 얘기는 아니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부분은 꽤 닮았다.
세 살 어린 남편과 찰떡궁합을 보이며 가죽원단사업을 했다. 가방공장과 하청공장 등 거래업체만도 300군데가 넘을 정도. “당시 검정가죽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어요. 덕분에 젊은 시절, 참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살았어요.” 돈은 많이 벌었으나, 10년의 세월이 지나가자 ‘더이상 하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얼마 후 그녀는 남편과 제주도에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파인애플 농장을 2년가량 했을까, 따분함이 몰려들자, 용인으로 훌쩍 날아가 젖소농장을 시작했다. “48마리까지 키웠는데, 힘들더군요.” 그래서 바꾼 것이 꽃사슴농장이었다. “사슴농장은 참 재밌었고, 경제사업도 괜찮았죠.” 그런데 3년쯤 했을 땐가, 남편나이 45세에 덜컥 심장마비가 찾아왔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나니, 갑자기 삶이 덧없어지더군요.” 의욕을 잃은 그녀에게 ‘실어증’이라는 불행이 찾아왔다. 그로부터 몇 년의 요양생활을 하고나서야 일상적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악착같이, 열정적으로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욕심을 놓으니 철학자가 다 되었다. 시도 쓰고, 바쁘다는 핑계로 못봤던 책을 꺼내들었다. 신간서적을 소개하는 정보를 다양하게 얻고, 책을 읽기 시작한지 10년여. “일주일에 4·5권씩 잃었다면 한달에 20권이고, 1년엔 240권, 그리고 10년 세월이라면 2500권쯤 될까요.” 참 많이도 읽었는데, 그게 뭐 많냐고, 부끄럽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책보다는 자신이 관심있어 하는 ‘노년의 삶’에 얘기해보잔다.
하나뿐인 딸(33세)이 자기보다 더 읽는다는 얘기며, 화장실이고 식탁이고간에 집안 구석구석에 읽을 책이 놓여있다는 얘기, 고시조부터 현대시에 이르는 시와 레이첼카슨의 침묵의 봄이라든가 뭉크·지오토·구스타프크림트 등의 그림도 무척 좋아한다는 얘기보따리는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그러나 “책은 사고의 폭을 넓혀 삶의 질을 높이고, 윤택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말로 책읽기를 권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난 아름다운 노년을 바래요.”
젊었을 적, 가죽원단사업 틈틈이 두 대의 트럭으로 전국을 누비며 좋아하는 꽃을 사들이고 도자기를 보고, 직접 만들기에도 ‘미친 듯’이 쏙 빠져든 적이 있었다. 또 차와 관련돼서도 깊은 조예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노년의 아름다움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죠.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아닐까 해요.”
그녀가 정의하는 노년의 아름다움은 ‘활기’, ‘생산’, ‘도전’ 등이다. 어찌보면 노년이 아닌 젊은 시절에 필요한 낱말이다. 하기사 노년이 아닌 ‘노년의 아름다움’이니 거기에 시간적 개념이 왜 들어가겠는가. “내년 밀양영화제가 벌써부터 기다려져요. ‘3월의 눈’이나 ‘(가제)꽃을 바치는 시간’을 보고 싶거든요.”
노인사회 전체에도 ‘계몽’적 차원에서 주문을 넣었다. 도심하천변에 야생화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도, 다랭이논에 배추며 상추나 가지 등을 심어 가꿀는 것도 노인의 힘으로 가능해요. 진정으로 노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노인의 지혜와 경륜이 필요한 일들을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해요.”
2011년에는 새로운 도전이 그녀를 기다린다. 딸의 결혼 5년만에 지난 12월 손녀를 본 것. 이제야 진정 ‘할머니’가 된 그녀는 손녀와 함께 하는 삶이 무척 기대된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