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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불다 인생 다 가버렸네, 허허”

우의정(76·광덕면)

등록일 2010년11월09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광덕사 2·3㎞ 못미쳐 오른쪽 산골짜기 중턱에 자리잡은 광덕4구. 70여 호가 사는 아담한 마을로, 주민들은 옛이름 ‘만복골’이라고만 부른다.

“저 빨간지붕 옆 집이라우, 기자양반.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는 거 같든디.”

우의정 선생댁을 묻자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짚던 막대기를 들어 가리킨다.

우의정(76) 선생은 호적을 참 잘 분다.

지역축제장에 마련된 풍물마당에 호적을 부는 모습을 흔히 본다. 풍물을 이끄는 건 꽹가린데, 호적도 그 못지 않다고 주장하는 우 선생.

신명이라도 나면 마이크에 호적을 대고 세상 떠나가라 불어제낀다. 말릴 틈도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각종 풍물소리들이 그의 호적소리를 따라온다.

“이래봬도 천안시립농악단에 12년 있었어. 이렇게 호적 부는 사람도 찾지 못혀.”

골방에서 뒤적뒤적 꺼내온 호적은 수십년 그의 내공이 켜켜이 쌓인, 손때묻은 것들 뿐. 주름이 깊이 패인 얼굴과 농삿일로 투박해지고 갈라진 손과 잘도 어울려 보인다.

어떻게 호적을 배우게 됐을까.

“어릴적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 악기를 배운 것은 홍성에 살 땐가 봐. 풍물하시는 분에게 어깨너머로 퉁소를 배웠는디 어느덧 피리와 대금도 불게 됐지. 이런 말 들어보셨나. ‘퉁소 9년 불어야 호적 분다’고. 그렇게 어려운 것이 호적이여.”

우 선생은 괜히 한 소리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태평소, 태평소 한단 말여. 그게 아녀, 호적이라 하는 거지.”

호적을 태평소라 부르는 것이 몹시 거슬리나 보다.

처음 만복골에 와서 호적이라도 불라 치면 “어떤 미친놈이 세상 시끄럽게 하냐”고 혼도 많이 났다.

그래도 듣기 좋았던지 한 둘 관심을 보이더니, 그것이 계기가 돼 지금은 풍물패가 둘이나 된다고 자랑이다.

호적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 선생의 눈에 옛 일들이 주마등같이 지나는가 보다.

“참, 많이도 돌아다니며 고생혔지. 작은할아버님이 자식이 없어 내가 모시러 들어왔다 이곳에 눌러살 줄 뉘 알았겠어. 7남매도 다 키우고… 하나는 대학도 나왔어. 그깟거, 쬐그마한 농사일로는 어림도 없었지. 광덕산 72종의 약초를 내가 죄 캐어판 것 아니여.”

우 선생에게 이제 더 바람은 없단다. 마음 내키는 대로 그저 사람들 앞에서 호적을 불고, 가르쳐도 주고, 그리 산단다.

“호적소리가 듣기라도 좋았거든, 택시값이라도 챙겨주면 더없이 좋구…. 이렇게 누추한 곳 찾아줘서 고맙구먼.”

내외가 알뜰살뜰 수확한 호두를 아깝다 생각 않고 봉지에 20여개도 더 되는 것을 담아준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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