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나 예술은 삶의 옷과 같은 존재다.
배고프던 시절에는 누더기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먹고 살만 하니까 좋은 옷을 입고 싶어 한다. 디자인도 고르게 되고 옷감도 더 고급의 것을 찾게 된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문화예술도 경제사회적 여건이 나아지면서 그에 걸맞은 격을 갖추고 싶어한다. 삶의 질을 따지는 척도로 문화예술을 내세우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발시대에는 물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했다. 빵의 양을 따지던 시대에서는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빵의 질을 생각한다. 그것이 사치가 아닌 것은 삶의 질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제는 문화예술을 투자의 우선순위에 올려놓아도 좋은 시대다.
천안의 문화예술계에도 좀 더 높은 수준의 투자가 필요하다.
문화예술의 소비층이 늘어가고 있고 생산자 또한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생산하는 소비자인 프로슈머(prosumer)가 대세다. 천안만 해도 색소폰이나 트럼펫을 배우는 그룹이 부지기수다. 그림이나 글씨를 배우겠다고 화실을 찾는 사람도 적은 숫자가 아니다. 예술로 먹고 살려고 하기보다 이것을 즐기려는 경향이 농후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연주하고 연습할 마땅한 공간이 없다. 전시공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연극 연습을 하고도 이를 관객에게 보여줄 무대를 마련하기가 힘들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없을까.
‘문화예술동아리 지원센터’의 설립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삼거리공원에 400평 규모의 사무실, 연습실, 소공연장을 갖춘 문화공간을 갖추어 프로슈머나 예술단체에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천안보다는 한 수 아래인 춘천을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춘천예총은 약 250석 규모의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건물 2개 동을 예술마당과 창작관으로 무상 위탁·운영하고 있다. 문화예술 관련 단체 및 개인의 사무실은 물론 갤러리, 마임 전용극장, 지역예술인들의 창작, 공연, 전시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 지역도 이게 필요하다.
2안으로 구도심의 빈 건물을 구입 혹은 임대하여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명동거리에는 빈 상가건물이 즐비하다. 비어있는 교회 건물도 있다. 이런 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일차적으로는 지역예술계의 갈증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곳 거리를 예술의 거리로 특화해 시민의 발길을 유인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인사동이나 삼청동 골목과 같은 거리의 특화가 천안이라고 해서 불가능할 리 없다.
특히 이 지역은 천안역과 인접하여 접근성이 뛰어나다. 이미 문화산업특구로도 지정돼 있다. 문화예술활동을 위해 이곳 상가를 임대하는 작가에게는 임대료의 일정 부분을 지원해줄 근거도 있다. 광주의 대인동시장프로젝트처럼 지역과 외부의 작가를 선정해 레지던시 프로그램 같은 것을 운영한다면 거리의 회생과 예술의 활력,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지역문화활동에 대한 지원과 운영을 민간에 맡기기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기왕에 천안시는 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구상을 갖고 있다. 문화재단 설립을 조기에 매듭지어 이 기구 안에 지역예술지원센터를 만들면 된다. 이렇게만 되면 보다 계획적이고 보다 치밀하게 지역문화예술 활성화 역량을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유년의 상태에 머물고 있는 문예진흥기금도 하루 빨리 성장시켜야 한다. 모든 문화활동이 충분한 재정확보 없이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우리 지역은 그 정도의 재정부담 능력이 있다고 믿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