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모난 돌은 수만번의 파도에 부딪치며 둥그러진다. 사람도 이와 같으니, 젊은 혈기는 자칫 비이성적 충동으로 자신은 물론 남에게까지 폐해를 끼친다. 나이만 먹는다고 둥그러지는 것은 아니며, 여기에는 ‘바른 생각’이 필요하다.
희수(喜壽)를 앞둔 이득주(76·수필가)씨는 이처럼 둥글러진 돌과 같다. 끊임없이 사색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헤맨 그. 그의 수필에는 그같은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1951년 경기중학교 2년때인가, 6·25전쟁을 겪었지만 그의 삶은 순항을 거듭했다. 52년 천안중학교를 졸업했고 천안농고, 고려대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재무부(현 재정경제부), 보험감독원(현 금융감독원), 천안시기업인협의회 상근부회장 등을 거쳤다. 수필가로도 입문했다
2006년 발간된 ‘함부르크의 에스컬레이터’에는 그의 대표적 수필집.
한 예로 수필 속에는 60년대 어느 날을 떠올린다. 한 직원이 상사의 부당한 뇌물요구에 회사를 그만둔다. 물론 신고를 해 정의가 살아있음을 알린다. ‘아! 나는 그럴 수 있었을까.’
수필을 쓰는 이유는 뭘까. ‘일깨워주는 것과 자성의 기회를 삼고자 하는 것?’
“송구하지만 한 시대 한 구석의 일부를 살펴보는 심정으로 대해주길 바랍니다.”
수필에는 “이놈아! 아빠가 들어오는데 누워서 눈만 껌벅거리느냐!” 호통치기도 하고, LA폭동사건과 관련해 “흑인을 무시한다든가 하는, 이유야 어떻든간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은 파괴된 터전을 재건함과 함께 잘못된 점을 반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한 사람이 올라타면 작동하는 함부르크의 에스컬레이터를 보며 최첨단 기계공학기술을 빨리 받아들이고, 좀 더 과학화하려는 의지와 자세를 촉구한다.
“다음 작품으로 6·25를 쓰려 합니다. 아직도 머리에 생생히 남아있는 그때 그 시절. 젊은이들이야 상상속에 있지만, 나에겐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이 아직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