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천안에서 공무원이 개입한 선거법 위반혐의가 발생했다. 그것도 현직 시장과 함께 한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이뤄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천안지부(이하 천안경실련)는 6일(목) 성무용 천안시장 예비후보와 유제국 천안기초의원 예비후보를 선거법 위반혐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조사의뢰했다. 또한 동남구청장을 비롯한 공무원을 함께 조사의뢰했다. 정확한 녹취근거까지 있고, 언론사들에도 공개해 향후 처리결과가 주목된다.
이같은 내용은 한 제보자가 2건의 공무원 모임에 대한 녹취파일과 녹취록을 천안경실련 내 유권자운동본부 부정선거신고센터에 제보한 데서 비롯됐다.
10일(월) 이규희·구본영 후보가 성무용 천안시장 후보 등을 공동고발조치하며, 시청 브리핑실을 찾았다.
어떤 일들이 벌어졌나
천안경실련이 공개한 녹취자료에 따르면 ‘천안시 공무원 수성향우회’와 ‘천안시청 은백양회 동문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4월7일 성정동 모 음식점에서 열린 수성향우회는 ‘수신·성남향우회’의 준말로, 40여 명이 참석했다.
이곳에서 성무용 천안시장은 유제국(현 시의원) 예비후보에게 “…청룡동, 병천 쪽에 이런 뭐, 연고가 있으면 많은 그런 세력을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고 유 후보는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이 같이 힘을 합해서 우리 성무용 시장님에게 다시한번 큰 힘을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유 후보는 “성무용 시장님을 위하여”라며 건배제의했고, 성 시장 또한 “유제국을 위하여”로 건배제의한 것이 녹취록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성 시장이 시장 사퇴 및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것이 4월30일(금)이니, 한참 그 이전 시장 자격으로 참석한 자리였다.
두 번째 사건은 4월23일 오후 7시 50여 명이 모인 ‘천안시청 은백양회(천안농고) 모임’에서발생했다. 여기에는 성무용 시장과 김재근 자치행정국장, 윤승수 동남구청장, 서장근 주민생활국장 등의 공무원이 참석했다.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문제의 발언이 터졌다. 김재근 국장은 “…6월2일 성무용 시장님의 당선과 더불어서 행운, 또 필승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겠습니다…” 했고, 성 시장은 “천안농고 논두렁 걷는 힘으로 뽑아주면 한번 더 하는 거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 힘을 좀 모아주시고 도와주세요”라고 인사했다.
윤승수 동남구청장은 “…, 시장님 당선을 위하여”라고 건배제의했고, 이어 서장근 국장이 “…우리 제일고(천안농고) 동문 103명은 모두 일당백이라는 각오로 이렇게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일당백을 위하여”라며 건배제의했다.
경실련 ‘위반시 강력처벌’ 주문
*사건 경과보고
4월1일(목)/ 충남지역 유권자운동본부신고센터 개설(041-554-1062)
4월28일(수)/ 공무원의 선거개입에 관한 최초전화제보 신고센터 접수
4월29일(목)/ 제보자측 제3자를 통한 녹취록 사본 접수
-성무용·유제국 사전선거운동혐의, 관련 공무원 선거법중립의무위반혐의 판단
4월30일(금)/ 유권자운동본부 본 사건 대응논의 시작, 제보자측으로부터 녹취 파일(사본) 접수
5월1일(토)/ 제보자 직접면담
-제보내용 진위여부 및 상황 재확인, 재보내용자료 공개여부 논의
5월6일(목)/ 중앙경실련과 함께 중앙선관위에 조사의뢰하기로 결정
원래 공무원의 선거개입은 선거법에 명백히 금지해놓고 있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의 줄서기와 관권선거 폐해는 단절되지 않고 있다.
이번 천안시장과 공무원들의 행위는 이같은 잔재가 남아있을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천안경실련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 공무원들의 선거운동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강력 처벌’할 것을 주문했다.
공무원의 선거개입 금지는 시장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부하직원을 선거운동에 동원할 염려가 있고, 또한 자신의 선거운동에 유리한 방향으로 직무를 집행하거나 관련 법규를 적용하는 등 관권선거로 부작용과 폐해가 선거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천안경실련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무너뜨리고 관권선거 논란을 초래하는 발언을 자행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과 본분을 심각하게 망각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즉각적인 진상조사와 빠른 조치를 통해 공정선거를 저해하는 요소들을 사전예방할 수 있는 좋은 전례를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공직선거법 제9조는 ‘공무원의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해놓고 있다. 또 제85조는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으며, 이 경우 공무원이 그 소속직원을 대상으로 한 선거운동은 그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선거법 제254조(선거운동기간위반죄) 2항은 지난 1월25일 개정된 것으로 ‘선거운동기간 전에 이 법에 규정된 방법을 제외하고 선전시설물·용구 또는 각종 인쇄물, 방송·신문·뉴스통신·잡지, 그 밖의 간행물, 정견발표회·좌담회·토론회·향우회·동창회·반상회, 그 밖의 집회, 정보통신, 선거운동기구나 사조직의 설치, 호별방문, 그 밖의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있다.
상대후보들 ‘불순한 의도’ 공동고발
경실련 발표소식을 접한 천안시장 후보들의 발길이 바빠졌다.
이규희 민주당 천안시장 후보와 후보자 일동은 ‘관권선거를 한 성무용 시장을 규탄한다’는 제목으로 곧바로 기자회견에 나섰다. ‘시장직을 이용한 부당한 선거개입’이라고 문제삼은 이들은 ‘성 시장의 관권선거와 공무원들의 선거불법행위를 법에 따라 엄중하게 조치할 것’을 주장했다.
구본영 자유선진당 천안시장 후보와 후보자 일동도 기자회견을 자처, ‘공직자들을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의 선거조직으로 이용한 행위로, 시장의 지위를 이용해 관권선거를 획책했다’고 지적했다.
한발 더 나아가 10일(월)에는 이규희·구본영 후보가 시청 브리핑실을 찾아 ‘성시장과 천안시청 공무원, 천안시의원 등 5명에 대해 사전선거운동 및 관권선거 혐의로 대전지검 천안지청에 수사의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무원을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에 동원하려는 천안시장과 이에 줄서기하려는 공무원들의 부정행위에 쐐기를 박아 공명선거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두 후보는 향응제공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당시 모임이 자발적 성격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개회 당시 성 시장을 지지하기 위한 자리라고 명시한 만큼 향응제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식사비용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규희 후보는 “부정선거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어서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온다”고 말했고, 구본영 후보는 “가장 깨끗하게 치러져야 할 시민축제에 일부 공무원들은 공직선거법 위반행위가 중대범죄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자치단체장의 노골적인 선거운동 요구에 동원되고 있다”고 문제삼았다.
이에 대해 성무용 후보측은 ‘덕담수준’으로 해명했으며, 유제국 후보측도 ‘관례적인 인사’로 오해없기를 바랐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 또는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단순한 의도로 받아들여 경고 정도로 넘어갈지, 아님 의도의 불순성에 문제를 삼아 심각한 상황으로 갈 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무원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업적을 홍보하거나 기부행위 등으로 선거법을 위반한 것은 28건에 이르며, 후원금을 기부한 행위로 11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