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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위례성 ‘축조시기 밝혀질까’

백제초도 13년… 위례성 발굴조사 자문위 열려

등록일 2010년04월07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천안 성거산 위례성(도기념물 제148호) 발굴조사 자문위원회가 2일 오전 10시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운용리 산 81번지 외 2필지 조사현장에서 개최됐다.

삼국유사 및 동국여지승람 등에 백제의 최초 도읍을 직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위례성이 ‘백제 초도’라는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학계의 논란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천안시가 막대한 발굴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것은 단지 백제유물에 대한 관심과 보전 이전에 백제초도임을 입증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이다. 하지만 기원전 18년경을 기원설로 삼고있는 백제초도 직산설은 겨우 13년간 유지돼 검증이 매우 어렵다.

시 문화관광과 전경아씨도 “답을 낸다는 생각보다는 일단 초도가능성을 비롯해 역사적인 곳으로 정밀조사가 필요해 시작했다”며 이번 발굴작업으로 혹 역사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남쪽정상부 성벽절개조사
성벽절개조사-서남부 우물지역-추정적심
5월, 1차조사 완료

그동안 서울대학교 박물관 및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에서 위례성에 대한 부분조사를 진행했으나 조사지역의 협소 등 단편적 조사로 위례성 및 관련 유적의 구체적 성격을 파악하기에는 미흡함이 있었다.

이번 조사는 그동안 조사하지 않은 성 내부와 성벽을 조사해 초축시기를 확인하고 우물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성내 유적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성벽의 상단부에서는 여장시설이, 우물지에서는 석렬유구 등이 확인됐으나 출토유물 등을 볼 때 고려시대 위례성을 사용할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구 및 유물로 보인다. 또한 우각형 파수부편, 삼족토기편 등 백제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조사진행에 따라 이 시기와 관련된 유구의 흔적이 확인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자문위원회에서는 백제사 및 성곽 관련 전문학자들이 참여해 그동안의 조사성과를 바탕으로 유적에 대한 성격을 검토하고 향후 발굴조사 및 연구방향에 대한 자문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그밖에 전문연구자 및 천안지역의 향토사학자, 천안시 관계공무원 등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례성 발굴조사는 모두 8억원의 예산으로 지난해 11월부터 2차에 걸쳐 추진하고 있으며, 금년 5월중 1차조사를 완료하고 하반기에 2차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조사기관인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은 조사과정에 4~5차례의 전문가 자문·조사설명회를 개최해 발굴조사의 진행성과에 대한 전문가 및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그때 그때 해소해주면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를 통해 위례성의 성격 및 역사적 의의를 규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사 진행중, 축조시점 파악 가능

우물지역-석렬시설 위례성은 시·발굴조사(1989·1995)를 통해 성벽 및 성내시설 일부를 확인한 바 있다.

성벽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파악됐다. 성내에서 한성시대까지 올려볼 수 있는 백제토기편이 출토돼 위례성의 초축시점을 4세기말~5세기 전반까지 내다봤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조선후기 편찬된 역대 지지류 및 지도에서 표기된 백제 초기 도읍지인 위례성 위치가 천안 입장면과 북면의 경계에 비정되고 있어 역사적인 관심이 더욱 고조됐다.

따라서 이번 조사는 그동안 미 조사된 성 내부와 성벽을 조사해 초축시기를 확인하고, 동시에 우물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성내 현황을 확인하는 것으로서 의미를 뒀다.

남쪽 정상부 지역에서는 시굴 트렌치를 조사를 통해 생활유적으로 확인되는 다짐토 일부를 확인했다. 다짐토는 황적갈색의 고운 사질점토로 이뤄져 있으며, 생토면 일부를 정지하고 평탄면 한가운데 넓은 범위에 걸쳐 조성됐다. 내부는 부속시설로 사용됐던 석재 일부와 불을 지폈던 불길 흔적이 부분적으로 확인됐다. 또한 정상부 주변으로 성벽을 절개조사 중에 있는데, 성벽의 상단부분에서 여장시설이 확인돼 성벽의 구체적인 현황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현재까지 조사에 따르면 성벽에서는 고려시대의 유물이 다수 확인되고 있으나 차후 조사결과에 따라 정확한 축조시기에 대해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물지역은 4개의 그리드를 설치한 후 전면 굴토작업을 했는데, 조사결과 추정적심 1기와 석렬유구 1기를 확인했다. 석렬유구는 성 내부 경사면을 따라 반원형으로 호를 그리며 확인됐고, 추정적심은 직경 약 140㎝로서 정연한 형태가 확인됐다.

확인된 적심과 연관된 시설이 주변에서 확인되지 않았지만 주변의 홈이 파여진 암반과 함께 건물지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석렬유구 및 추정적심은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고려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까지 조사진행결과 석렬유구 및 적심유구 등 고려시대 위례성을 사용할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구 및 유물이 확인됐다.

조사는 아직 진행중이며 추후 조사가 더욱 진행됨에 따라 현재 조사중인 성벽의 축성구조와 축조시점에 대해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조사중에 우각형 파수부편, 삼족토기편 등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다수 출토됐는데 추후 조사여부에 따라 이 시기와 관련된 유구의 흔적이 확인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학수 기자>

‘위례는 우리 것이야’

천안시의회… 위례명칭사용변경 촉구건의문 채택

천안시의회는 2일(금) ‘위례명칭사용변경 촉구건의문’을 채택, 국토해양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최근 서울 송파구 거여 신도시 명칭을 ‘위례 신도시’라는 명칭으로 변경한 것에 대해 천안시는 ‘천안이 700년 역사를 가진 대백제가 건국된 초도임을 부정하는 행위로, 56만 천안시민과 500만 충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결정’이라며 명칭사용의 재고를 촉구했다.

<위례 명칭사용변경 촉구건의문 요약>

현재 서울 송파의 위례신도시 명칭사용에 대해 깊은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위례는 백제의 첫 도읍지로서, 그 지역은 현재 충남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및 위례산 일대를 일컫는다.(조선왕조실록 5책 628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수많은 명문자료들은 백제 시조 온조가 이곳에 BC 18년 첫 도읍을 한 후 13년간 수도로 기능하다가 BC 5년 오늘의 경기도 광주지역으로 도읍을 옮긴 것으로 명백히 나와있다.

특히 조선 세종 초에는 위례성에 백제시조 온조왕 사당을 세우고 봄과 가을에 직접 향과 촉을 내려 제사를 지내도록 한 바 있다. 따라서 국토해양부에서 공표한 대로 역사적 명칭을 되살리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그 위치는 반드시 본래의 위례성 일대에 부활돼야 한다.

이유로는 첫째 백제 최초 건국이 천안이 아닌 송파·성남 일대에서 개국한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둘째 백제가 건국초기에 북방으로의 세력확장을 위해 한강유역으로 천도한 사실을 퇴색시켜 버리는 것이다. 셋째 백제의 두 번째 도읍인 송파, 성남, 하남 일대에 첫 번째 도읍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결정으로 보기에 아쉬움이 있다. 넷째 수도와 같은 국가의 역사적 중요성을 가진 고유명칭을 신도시 명칭에 쉽게 인용한다면 이 또한 경솔한 결정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같은 우리시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위례신도시 명칭을 계속 사용한다면 이는 천안시민, 나아가서는 충청도민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시의 간곡한 처지를 이해해 혜량있는 국토해양부의 결단을 기대한다.

2010년 4월2일 천안시의회 의원 일동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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