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 발표가 나자마자 충남권 정치인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머리띠를 동여매고 있다. 충청당을 자처하는 자유선진당과, 충청기반을 넓히고자 하는 민주당은 연일 성명서를 발표하며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설득에 나서는 사람과 탈당 등을 불사하며 정부와 여권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지역정치계를 들어내놓고 보면 세종시 ‘원안사수’와 ‘수정안’ 분위기는 사뭇 팽팽한 대립각을 보이고 있다. 지식인 수백명이 행복도시의 정상추진을 선언하는 반면 또다른 기업인 수백명은 수정안을 옹호하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찬·반 반응도 엇갈려 나타나고 있다. 수정론에 대해 부메랑효과로 양극화 심화를 우려하는 측과 오히려 연기군민에게 실익을 제공할 것으로 보는 측면이다.
자유선진당이 원안사수 투쟁사무소를 설치한 후 기자회견에 나섰다.
충남정치권들 ‘원안사수’ 앞장
지난 11일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가 나자마자 자유선진당 천안당원협의회는 ‘세종시가 서울의 세종구인가?’란 제목으로 긴급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수정안은 결국 세종시 백지화와 재벌 퍼주기용 특혜’라며 온 국민과 국토에 심각한 식중독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안당원협의회는 이같은 부정적 견해를 세가지로 압축했으며, 그중 첫 번째를 ‘서울발전은 커녕 서울과 수도권을 망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 외 지방의 산업공동화 초래와 신뢰의 붕괴를 지적했다.
다음날인 12일 자유선진당 충남도당도 ‘세종시 백지화, 독재정권도 할 수 없던 일’이라는 긴급성명을 내고 ‘수정안은 충청권 이남지역의 산업공동화를 넘어 국가발전전략으로 채택된 국토균형발
양승조 민주당 충남도당위원장이 당원들과 삭발식을 감행한 뒤 기자회견에 나서고 있다.
전 자체를 붕괴시키는 주범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자유선진당 소속 충남도의원 6명은 15일 도의회 정문에서 삭발식을 감행하기도 했다.
민주당 충남도당(위원장 양승조)도 11일 ‘사기꾼, 이명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강경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기꾼 대통령은 대선후보시절과 대통령 당선 직후 모두 20번이나 세종시 원안추진을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않았다는데 따른 것이다.
이들은 세종시 수정안이 백지화안이라는 점과 삼성특혜안, 국가균형발전을 포기하는 안이라고 주장했다. 세종시 탄생배경이 국가균형발전의 초석으로, 세종시는 충청인이 잘 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만든 도시임을 강조했다.
지난 11일 오전 11시 긴급회견을 가진 연기군청 광장에서 박수현 민주당 충남도당 행복도시 무산음모저지 특별위원장은 공주연기주민 총파업투쟁, 세종시 예정지주민 80% 이상 서명운동, 충청지역 소속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전원 탈당, 충청권 지역별 규탄집회, 충청권연대회의 투쟁위체제 전면전환 등 5가지 투쟁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15일 오후 2시 천안 웨딩코리아에서 별도의 규탄집회를 갖기도 했다.
민주노동당·농민회·민주노총·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이 주축이 된 ‘민주 민생 남북 지방 위기대응을 위한 충남시국회의’에서도 ‘행정도시 수정백지화는 이명박 정권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성명서를 냈다. 수정안은 이미 원에 포함된 내용으로, 행정기능이 빠진 도시는 기형적인 잡탕도시일 뿐이라는 주장인 것. 이들은 ‘이명박표 잡탕도시에 분노한 민심은 이미 정권에 등을 돌렸으며, 행정도시 백지화는 필연적으로 파멸을 불러올 것’이라고 문제삼았다.
몸집은 수정안이 훨씬 큰데…
정운찬 국무총리가 밝힌 ‘세종시 수정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정 총리는 11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존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는 대신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건설을 중심의 세종시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정 총리는 “국가 균형발전 측면에서 보더라도 세종시 수정안은 원안사수보다 훨씬 더 유리할 것”이라며 기업과 자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아니라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는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수정배경에는 “특별한 사유로 행정부를 통째로 옮긴 나라는 더러 있지만 일부 부처를 의도적으로 분산시킨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며 “우리나라도 행정부 분산시 매년 3~5조원의 비용이 낭비된다는 것이 전문기관의 연구결과”라고 설명했다.
세종시 수정안은 정치계 밖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내고 있다.
각계각층 지식인 794명은 지난 14일 서울 정동의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지역균형발전과 행복도시 정상추진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 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수정안으로 인한 행정기관 이전 백지화로 애초 목적인 수도권 과밀문제 해소와 지역균형발전 도모가 사라진 채 ‘용도불명의 변종사업’으로 전락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행복돋시 수정방안은 수도권 과밀해소와 균형발전이라는 목적에 맞게 검토돼야 하며, 행정부처 이전을 전제로 한 보완만이 이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며 행복도시의 정상추진을 주장했다.
반면 충청남도 이인화 도지사대행은 11일 ‘세종시 수정안 발표 관련 충남도 입장’에서 “긍정적 측면은 수정안이 그대로 성사될 경우 세종시는 주변지역 발전을 견인하는 새로운 성장거점도시로 부상이 가능하며 인구유입 촉진과 지역주민 일자리 창출로 지역경제활성화 및 국가균형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 “우려점으로는 원안추진을 주장하는 지역주민의 반발과, 기업유치 등 정부가 제시한 세종시 수정안의 이행여부, 관련법 개정 가능성에 대한 부분”이라며 제시된 일정에 따라 차질없이 이뤄지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함을 밝혔다.
충남도는 국가 백년대계의 입장에서 차분하게 세종시 수정안을 논의해 국익과 충청지역 발전에 도움되는 결론이 도출되길 요망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도 13일 청구동 자택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재는 “국가적 차원에서 행정력 분할은 안된다. 행정력이 집중된 곳이 수도니까 수정은 불가피하다. 정부가 그 이상 할 수 없을 정도의 안을 내놨다고 본다”며 “기대를 잔뜩 걸었던 사람들이 실망하는 것은 사실이다. 국민을 납득시키는데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천안시 자유선진당측이 최근 천안 지역민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한 결과 수정안 반대가 40%대인 반면 찬성이 30%대로 9% 포인트 격차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정가 외 일반시민들은 무관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주민은 “원칙적으론 신뢰를 따라야 한다고 보지만, 정말 무엇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될 건지는 잘 모르겠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옆에 있던 또다른 주민은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고, 실제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매스컴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각기 다르다. 일반 서민으로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김학수 기자>